'세상에는...'에 해당되는 글 727건

  1. 2009.11.22 잘 봐라!
  2. 2009.11.22 나도 모른다.
  3. 2009.11.20 제왕의 담론
  4. 2009.11.20 카를 슈미트의 생각
2009. 11. 22. 02:04

http://www.telegraph.co.uk/travel/picturegalleries/signlanguage/6605761/Sign-Language-week-75.html?image=11

햇갈리지?

왜 그러느냐고?

내 맘이다.

맘에 안들어?

딴데 가 봐!

왔다 간 놈 내가 다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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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
2009. 11. 22. 01:40

“내 시가 출제됐는데, 나도 모두 틀렸다”


“언젠가부터 내 시가 교과서나 각종 수능 모의고사에서 나오고 있다더라. 그런데 나는 다 틀린다. 그래서 지금은 안 풀어 본다.”


“작가의 의도를 묻는 문제를 진짜 작가가 모른다면 누가 아는 건지 참 미스터리”


“그냥 미스터리로 남겨 두고 싶다. 나도 생각하지 못한 정답이 어떻게 나오는지 정말 궁금하다. 내가 바보라서 모르는 건지…. 그렇지만 문제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거 같다. 나는 감정과 예술의 자리에서 얘기하고, 수능은 이론과 논리의 자리에서 얘기하는 것일 뿐이다.”


-그럼 시 교육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나.


“웃는 것, 안목을 높여 주는 것이다. 더 좋은 작품을 감상해 나갈 수 있는 능력, 그래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안목을 길러 주는 것이다. "


-학생들도 시를 쉽게 쓸 수 있나.


“시인은 언어의 요리사고 작품은 음식이다. 독자는 미식가고, 맛을 음미하면 된다. 나는 쉽게 언어를 물감처럼, 음표처럼 사용한다. 시 ‘숫소’는 증기기관차처럼 콧김을 뿜는 수소가 빼빼 마른 백정에게 맞아 쓰러지는 얘기다. 의미에 연연하지 말고 더 많은 작품을 즉물적으로 감상하고, 생각을 많이 하면 누구든지 쓸 수 있다.” 



◆최승호 시인은=1983년 출간된 첫 시집 『대설주의보』 이후 『세속도시의 즐거움』 『그로테스크』 『고비』 등 문제작들을 내놓으며 오늘의 작가상과 김수영문학상·이산문학상·현대문학상·미당문학상 등을 받았다.


http://people.joins.com/news/people_read_200605.asp?cloc=home|people_article|people&total_id=3885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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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
2009. 11. 20. 18:25

주장의 시비, 정책의 당·부당, 죄의 유무를 따지는 데 토론만큼 유효한 수단은 없다고들 한다.


고대 그리스에선 시민들이 토론으로 정책·가치·위법 여부를 가렸다.

당시 토론엔 엄격한 원칙이 하나 있었으니, 토론자에겐 계급장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전통은 로마로 이어졌다.


그러나 기원전 1세기에 제정으로 바뀌면서 사라졌다.


자신의 생각, 행위에 시비를 거는 것을 권력자가 좋아하지 않음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았다.

기원전 3세기 인도의 서북부 지역을 통치하던 그리스계 밀란다 왕은 원래 논리적 언변과 기개가 뛰어나 누구든 토론으로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자랑으로 삼았던 이였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나가세나 만큼은 당할 수 없으리란 게 세평이었으니 그의 심기가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왕은 어느날 나가세나를 불러들여 일갈하기를 “네가 담론에서 나를 이기지 못하면 살아서 이 궁을 나갈 수 없을 것이다”고 하였다


나가세나는 성난 말의 거친 숨을 가라앉히듯 이렇게 말했다 한다.


“담론에는 제왕의 담론과 현자의 담론이 있습니다.

제왕의 담론은 상대에게 기선을 제압 당하거나 토론에서 밀리면 힘과 권위로 상대를 위협하려 듭니다.

그러나 현자의 담론은 설명이 있고, 해설이 베풀어지며, 시정이 있고, 다시 시비 구별이 이루어지며, 의견이 서로 반박되고 비판되어도 성내는 일이 없습니다.

왕께서는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쓴소리는 귀막고 단소리만 취사선택해 들으려하는 제왕의 속성,


한 발짝도 밀려선 안 되는 상황에서

현자의 논리는 자칫 오해를 낳을 사치라 여겼을 법한데 왕은 현자의 담론을 택했다.


두 사람은 윤회 무아 업 등 불교의 핵심 사상을 두고 격의없이 토론했고, 그 내용은 밀란다왕문경으로 남았다.




듣건대, 옛날 편작은 병을 치료할 때에 칼로 뼈를 찔렀으며,

성인이 위태로운 나라를 구제할 때에는 충성된 말로써 귀에 거슬리게 하였다고 한다.

뼈를 찔렀으므로 조금 아프기는 하였으나 장구한 이로움이 몸에 있는 것이다.

귀에 거슬리게 말하였으므로 조그만 거슬림은 마음에 있어도 장구한 복은 나라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한 병에 걸린 사람의 이는 아픔을 참는 데 있고,

용맹하고 의젓한 임금은 귀에 거슬리는 말을 복으로 삼았다.

고통을 참았기 때문에 편작이 의술을 다할 수 있고,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오자서는 충언을 다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몸을 장수하게 하고 국가를 편안하게 하는 방법이다.


병들어 치료의 아픔을 참지 못하면 편작의 오묘한 의술을 놓치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 귀에 거슬리는 충언을 듣지 않으면

성인의 의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한비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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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
2009. 11. 20. 14:18

독일 정치철학자 카를 슈미트(1888~1985)는

“정치적 다툼은 모든 다툼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 곧 최고의 다툼이다.”

“정치인은 병사보다 더 깊이 전투에 관여한다. 병사는 단지 예외적으로만 싸울 뿐인데, 정치인은 평생을 싸우기 때문이다.”


병사의 싸움은 상대의 목숨을 빼앗음으로써 끝나지만,

정치인의 싸움은 한방에 끝나지 않는다.

정치의 장은 칼을 거두고 말로써 싸우자고 합의한 공간이다.

정치가 노리는 것은 상대방의 상징적 죽음이다.

경쟁자를 무력화시켜 영원히 매장해 버릴 때에야 정치적 싸움은 끝난다.

정치에서 죽음이 상징적 죽음이라는 사실에 정치의 사악성이 똬리를 틀고 있다.

언제나 자신을 정의의 편으로 세우고 상대를 불의의 편으로 몰아붙여 상징적 목숨을 틀어쥐어야 한다. 정의를 독점하려는 싸움에 온갖 사술과 협잡과 기만이 동원된다.


슈미트는 정치가 사악한 이유를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서 찾는다.


정치는 사악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사악한 것이라 해도 그 사악성이라는 독을 견뎌낼 때에만 정치인은 비로소 정치가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다.

위대한 정치는 그 독을 견딜 뿐만 아니라 독을 빨아들여 약으로 바꾸는 정신의 힘에서 태어난다.



카를 슈미트(Carl Schmitt, 1888년 6월 11일 ~ 1985년 4월 7일)는 독일의 법학자이자 정치학자이다.

슈미트는 나치 체제에서 유력한 지위를 누렸으며, 나치의 권력 강탈에 대해 사법적 외관(façade)을 제공해 준 인물이기도 하다.

슈미트는 명백하게 심지어 독재적 권력까지 가진 강력한 권력을 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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