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의 시비, 정책의 당·부당, 죄의 유무를 따지는 데 토론만큼 유효한 수단은 없다고들 한다.
고대 그리스에선 시민들이 토론으로 정책·가치·위법 여부를 가렸다.
당시 토론엔 엄격한 원칙이 하나 있었으니, 토론자에겐 계급장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전통은 로마로 이어졌다.
그러나 기원전 1세기에 제정으로 바뀌면서 사라졌다.
자신의 생각, 행위에 시비를 거는 것을 권력자가 좋아하지 않음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았다.
기원전 3세기 인도의 서북부 지역을 통치하던 그리스계 밀란다 왕은 원래 논리적 언변과 기개가 뛰어나 누구든 토론으로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자랑으로 삼았던 이였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나가세나 만큼은 당할 수 없으리란 게 세평이었으니 그의 심기가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왕은 어느날 나가세나를 불러들여 일갈하기를 “네가 담론에서 나를 이기지 못하면 살아서 이 궁을 나갈 수 없을 것이다”고 하였다
나가세나는 성난 말의 거친 숨을 가라앉히듯 이렇게 말했다 한다.
“담론에는 제왕의 담론과 현자의 담론이 있습니다.
제왕의 담론은 상대에게 기선을 제압 당하거나 토론에서 밀리면 힘과 권위로 상대를 위협하려 듭니다.
그러나 현자의 담론은 설명이 있고, 해설이 베풀어지며, 시정이 있고, 다시 시비 구별이 이루어지며, 의견이 서로 반박되고 비판되어도 성내는 일이 없습니다.
왕께서는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쓴소리는 귀막고 단소리만 취사선택해 들으려하는 제왕의 속성,
한 발짝도 밀려선 안 되는 상황에서
현자의 논리는 자칫 오해를 낳을 사치라 여겼을 법한데 왕은 현자의 담론을 택했다.
두 사람은 윤회 무아 업 등 불교의 핵심 사상을 두고 격의없이 토론했고, 그 내용은 밀란다왕문경으로 남았다.
듣건대, 옛날 편작은 병을 치료할 때에 칼로 뼈를 찔렀으며,
성인이 위태로운 나라를 구제할 때에는 충성된 말로써 귀에 거슬리게 하였다고 한다.
뼈를 찔렀으므로 조금 아프기는 하였으나 장구한 이로움이 몸에 있는 것이다.
귀에 거슬리게 말하였으므로 조그만 거슬림은 마음에 있어도 장구한 복은 나라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한 병에 걸린 사람의 이는 아픔을 참는 데 있고,
용맹하고 의젓한 임금은 귀에 거슬리는 말을 복으로 삼았다.
고통을 참았기 때문에 편작이 의술을 다할 수 있고,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오자서는 충언을 다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몸을 장수하게 하고 국가를 편안하게 하는 방법이다.
병들어 치료의 아픔을 참지 못하면 편작의 오묘한 의술을 놓치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 귀에 거슬리는 충언을 듣지 않으면
성인의 의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한비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