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3. 08:49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11197.html





휴일 낮 대민지원을 나선 군 장병들이 추수가 끝난 논을 샅샅이 살피며 벼 이삭을 줍고 있다. 1982년 가을 경기도 포천 들녘의 풍경이다. 이제는 트랙터가 들어가 순식간에 추수를 끝내고 만다. 그 뒤 누구 하나 논에 들어가 벼 이삭을 줍는 풍경을 볼 수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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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
2015. 9. 26. 22:15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4326&yy=2015

http://tw.imaeil.com/54325/2015


"그때는 폭음탄 터뜨리고, 권총으로 총싸움하며 놀았지.


1974년 추석 다음 날인 10월 1일 자 매일신문 6면

'아동 폭음탄 위험'이란 제목의 기사가 나온다. '추석을 전후하여 안동시내는 골목마다 어린이들이 폭음탄을 마구 터뜨리고 있어 단속이 아쉽다'는 게 기사 첫 문장이다. 다음 문장에서는 '이 폭음탄은 시내 구멍가게에서 상표도 없이 1개 5원씩 팔고 있는데 어린이들은 골목에 숨어 있다가 부녀자들만 지나가면 폭음탄을 마구 터뜨려 놀라게 하고 있다'


1975년 9월 20일 자 매일신문 4면

 '추석 낀 황금연휴 1박 2일 캠핑도'라는 기사가 보인다. 그해 추석 연휴는 금요일~일요일까지 2박 3일이었다. 그래서인지 기사에는 "대부분 사람들은 고향을 찾아 성묘길에 오르지만, 현재 거주하는 곳이 고향인 사람 중 등산광들은 일찍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온 후 1박 2일의 등산 일정을 짜기에 여념이 없다"





1972년 9월 19일 자 5면

'주부메모'라는 코너에 '꼬마 추석 옷 장만'

"추석 명절에 입는 꼬마들의 때때옷은 추석 하루가 지나면 별로 입을 기회가 없는 옷이라 때때옷을 새로 마련할 비용이 있으면 꼬마를 달래서 될수록 평상시에도 입을 수 있는 옷을 사도록 한다"


1977년 9월 25일 자 매일신문 5면


"우리 집은 추석 준비 때 아무 유별난 게 없다. 나는 우리 집 두 꼬마에게 때때옷을 장만하는 것으로 추석 준비를 마쳤다. 하필 꼭 추석에 장만할 이유는 없지만 어릴 적 명절이면 엄마가 내주던 새 옷이 그렇게 기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추석에 주고받는 선물에는 당시의 경제상황과 생활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전쟁을 겪었던 1950년대에는 사고파는 물건의 종류가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겠지만 사람들은 추석에 주로 식료품을 주고받았다. 고기류와 계란, 쌀, 밀가루와 같은 음식 재료는 먹을 것이 귀한 시기에 최고의 선물이었다. 


1960년대는 설탕, 비누, 조미료, 통조림, 라면과 같이 어느 집에서나 필요한 생필품 및 가공식품이 인기 품목이었다. 특히 '색이 하얀 세 가지'라는 삼백(三白)식품(설탕, 조미료, 밀가루)의 인기가 높았다. 산업화가 시작된 


1970년대에는 생활에 비교적 여유가 생기면서 치약, 식용유, 와이셔츠, 화장품, 내의 세트뿐만 아니라 과자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기호식품이 새로운 인기 선물로 등장했다. 이 무렵 여성을 대상으로 한 스타킹, 속옷, 양산 등이 추석 선물 목록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또한 라디오와 카세트, 믹서기 등은 특히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선물이었다.


1972년 9월 21일 자 2면 보도에 따르면 

서문시장의 한 상인은 "과자류는 경기를 타지 않는다"며 "시골로 나가는 것은 '비스킷' 류가 많고 대구 시내에 팔리는 것은 종합선물세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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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
2015. 9. 26. 21:59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4083&yy=2015&utm_medium=twitter&utm_source=twitterfeed


8월 한가위는 그저 1년 중 하나의 저녁일 뿐이지만 우리에게 ‘저녁’ 이상의 의미가 담긴 날


40년전 서울 구로공단에서 새벽 열차로 내려온 동네 형들의 손엔 설탕, 정종병이 들리고, ‘빤타롱 바지’로 한껏 멋을 낸 누나의 손엔 내의, 종합선물세트가 쥐여 있었다.


딱총 연기 자욱한 골목은 막 추석빔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의 병정놀이로 부산하고, 손자를 업은 할머니 얼굴엔 세상을 업은 듯 행복한 웃음이 배어났다.

마을 뒷동산으로 보름달이 떠오르면 하나둘씩 모인 마을 계집애들은 둥근 대형을 지어 강강술래를 돌았다.

손자의 재롱에 할머니는 바삐 과방(果房)을 드나들고 조카의 춤 자랑에 삼촌은 지갑을 열었다. 지금이야 아이패드를 보면서 차례상을 차리고, 마트에서 사온 송편을 올리지만...



 명절이면 가족`친구들과 시내로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이 가장 즐거운 일 중의 하나였다. 당시엔 소림권법 위주의 무협, 전쟁영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Posted by qlstnfp
2015. 9. 24. 20:22



http://www.segye.com/list.jsp?seriesId=1000096&page=5



천하를 다스리는 이는 법도 없이는 안 되는 것이니(天下從事者 不可以無法儀) 

법도가 없으면서 그의 일을 이룩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無法儀而其事能成者無有也)- ‘묵자’


선생께서 천 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오셨으니 그것은 내 나라를 이롭게 해주시려고 그런 것 아닌지요(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양혜왕

오직 인의만을 말씀하실 것이지, 하필 이익만을 따지십니까(亦曰仁義而已矣 何必曰利)-맹자


사람은 하지 말아야 할 게 무엇인지 안 뒤에야 비로소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깨닫게 된다(人有不爲也而後 可以有爲) -‘맹자’


악행은 꿀처럼 달콤하다. 그러나 악행이 무르익으면 죄과를 받아 재앙을 당하게 된다

(過罪未熟 至其熟時 自受大罪)-불교 ‘법구경’


군자는 정의에 밝지만 소인배는 이익에 밝다(君子 喩於義 小人 喩於利)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해 행동하면 원망을 많이 산다(放於利而行 多怨)-공자 ‘논어’


이익에 눈이 멀면 지혜를 어둡게 한다(利令智昏)-사마천 ‘사기’


제일 귀한 것은 국민이고, 다음은 사직(社稷) 즉 나라와 정권이며, 군주는 중요하지 않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맹자’


 나라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만들고 그 후에 나머지 정치를 한다(國者 必先富民 然後治之)-관자


‘관자’는 목민(牧民) 편에서 

나라를 유지하는 데는 예의염치(禮義廉恥) 즉 예의, 정의, 청렴, 염치 등 네 기둥(四維)이 필요하다며 

예의는 절제를 넘어서게 하지 않고, 의로움은 혼자 나가는 게 아니며, 청렴은 자기 잘못을 감추지 않는 것이고, 부끄러움은 잘못된 바를 따르지 않는다

(禮不逾節 義不自進 廉不蔽惡 恥不從枉).


군자는 보지 않는 곳에서 삼가고(戒愼乎 其所不睹), 들리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두려워해야 한다(恐懼乎 其所不聞)

숨겨져 있는 것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은 없고(莫見乎隱), 아주 작은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은 없다(莫顯乎微)- ‘중용’


홀로 걸을 때 그림자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고, 홀로 잠잘 때에도 이불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獨行不愧影 獨寢不愧衾) -‘송사(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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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