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하여'에 해당되는 글 30건

  1. 2009.06.02 마음의 平靜
  2. 2009.06.01 사르트르를 생각하며-Jean Paul Sartre
  3. 2009.06.01 소위 `글쟁이 들`에게
  4. 2009.06.01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2009. 6. 2. 04:24

말을 하되 침묵 지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고,

남을 비판하되 아량 베푸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욕심을 부리되 만족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화를 내되, 온순함을 잊지 말아야 하고,

도움을 받음에 도움을 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성급히 서두르되 여유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일을 하되 휴식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고,

기쁨을 누리되 슬픔을 잊지 말아야 하며,

권위를 부리되 겸손하게 행동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풍족함에 부족함을 잊지 말아야 하고,

쾌활하되 정숙함을 잊지 말아야 하며,

권리를 주장하되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한다.


먼 곳을 보되 가까운 곳 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고,

부(富)를 누리되 빈(貧)을 잊지 말아야 하며,

자유를 누리되 타락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친구를 사귀되 적(敵)을 잊지 말아야 하고,

단 것을 먹되 쓴 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꾸지람을 하되 격려해 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별함을 취하되 보편함을 잊지 말아야 하고,

지혜로움에 어리석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내리막길을 걸음에 오르막길을 잊지 말아야 한다.


편안함에 고통을 잊지 말아야 하고,

승리를 맛보되 패배를 잊지 말아야 하며,

진실을 듣되 거짓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기를 누리되 무명(無名)을 잊지 말아야 하고,

만남에 이별을 잊지 말아야 하며,

결혼함에 이혼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외모를 꾸미되 가꾸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하고,

고상함을 취하되 하찮은 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깨끗함을 취하되 불결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화려함을 추구하되 추함을 잊지 말아야 하고,

청(請)을 받아 주되 거절을 잊지 말아야 하며,

경쟁을 하되 화합을 잊지 말아야 한다.


먼저 말을 하되 경청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고,

대범하되 사소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소유함에 잃어버림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즈음 너무 흥분했던 같다.

담배도 늘고

잠도 잘 오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배려란 그런 것이다.

상대방의 실수를 용서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수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물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설령 상처를 주었더라도,

상대방이 상처가 아님을 믿게 하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배려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것에 집착하지 말라


행복한 사람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나간 시간에

마음쓰지 않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순간순간을

풍요로운 시간으로 만든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야말로

끝이 없는 유일한 시간인 것이다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늘 자신의 못난 점을 먼저 본다.하지만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자신의 장점을 먼저 살핀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긍정하고, 마침내는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남이 가진 것과 내 것을 비교하지 말라.

많이 가진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혹은 신으로부터

많은 빚을 떠안고 있는 사람일뿐이다. 대개 부자의 만족이란

가난한 자의 눈물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언젠가 그가 흙으로 돌아갈 때는

그는 당신보다 훨씬 많은 것을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부자인 셈이다


행복해진다는 것은

모든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단 하나라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있다면,

그의 영혼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불행할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하다는 것은

더이상 욕망하는 것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물론 원하는 것을 모두 소유할 수 있다면

그보다 커다란 행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행복은

우리가 갖고 있는 않는 것에 대해 더이상 원하지 않는 것이다.

욕망의 존재들은 결코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


행복이란 정신적인 기쁨과

마음의 평안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용범의 "마음의 평정" 중에서 >


Posted by qlstnfp
2009. 6. 1. 18:24

무신론자들은 말한다.

"이 세상이 요따위냐고? 우리를 창조한 신은 어디 있느냐고?"


어느 강연에서 청중이 브레히트에게 물었다. 신이 존재하는 것이냐고. 이에 대해 브레히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 대답을 듣기 전에 먼저 생각해보시오. 내 대답여하에 따라 당신의 생각이 달라지는가 아닌가. 만약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질문은 불필요한 것이요. 그리고 내 대답 여하에 따라 당신의 생각이 달라진다면 이미 당신은 신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요.”

아인슈타인은 신의 존재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당신이 먼저 신의 개념을 설명한다면 답하겠다.”라고.


하이덱거는 ‘내팽개쳐진 존재’ das geworfene Dasein 라는 말로 인간존재를 표현하였다. 인간은 이 우주공간에 그 어떤 기준이나 근거도 없이 우연하게 내팽개쳐진 존재라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무신론적 세계관은 바로 여기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말한다.

종이칼은 그 용도를 미리 염두에 두고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존재에 앞서 본질이 주어진다. 제작된 물건들은 모두 본질이 존재에 앞서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에 쓰려고 만든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본질은 백지 상태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실존에서 필연적으로 타인과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불어 사는 대상이 사물이라면 문제는 간단하다.

인간이 멋대로 사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해도 사물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상이 인간인 경우에는 문제가 생긴다.

다시 말해 내가 타인을 사물처럼 멋대로 의미를 부여하면 상대방 역시 나를 의미화한다.


해결방법은 두 가지

힘을 가진 내가 상대를 사물처럼 내 입맛데로 이름 붙이고 대상화 시키고 즉자화 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힘 가진 상대방에 굴복하여 나 자신을 상대의 입 맛데로 사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가능성은 모두 실패로 끝난다. 의식을 지닌 인간을 내 마음데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재론적 여건은 타인의 지옥에서 투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드러나고 그에 대한 해결책 역시 인간 스스로 창조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실존은 사물의 존재와 다르다.

라이프니츠처럼 미리 설정된 인간의 개념은 부정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은 왜 우리를 만들었느냐고 책임을 지울 대상이 없다. 인간 스스로 존재에 대해 책임을 지는 수 밖에 없다. 스스로 본질을 완성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바로 자유이다. 우연히 내팽개쳐진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 나가는 과정, 즉 본질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자유는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르트르가 역사의 변혁기 마다 노선을 바꾸고 개인이건 집단이건 끊임없이 적으로 돌리고 투쟁했지만 인간의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과 맞서 싸워왔다는 입장은 일관된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 부르주아지를 자유에 대한 위협세력으로 여기고 공산당과 유대하여 싸웠지만 헝가리 자유화운동 이후에는 공산당과도 결별했다. 좌우 어느 진영에 소속되지 않은 채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권력과 싸웠다는 일관성을 그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그가 주관한 잡지 <현대>에서도 자유의 문제에 대한 그의 끝없는 열정은 이어진다.


<침묵의 공화국>에서는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에게도 자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처절한 고문과정에서 동지들에 대해 침묵할 수 있는 자유, 전적인 고통 속에서 전적으로 책임을 걸머지는 것, 바로 이것이 자유의 실현이라는 것이다. 단편 <벽>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설정되고 있다. 지하 감방에 갇힌 주인공은 나찌 장교에게 불려나가 동지들의 아지트에 대해 발설할 것을 강요받는다. 주인공은 견디다 못해 엉뚱한 곳을 지목한다. 물론 인간존재의 우연성으로 인해 마침 그 시각에 주인공이 지목한 장소로 옮겨간 동지들은 체포되지만 그 고통의 극단상황에서 말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사르트르는 말한다. ‘어떤 극한상황에서도 자유는 있고 자유는 선택이며 선택은 전 인류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스스로 걸머지는 것‘이라고.


그러나 나는 신이 있음을 믿고 싶다.


자유를 주어도 거대한 힘에 맞설 용기가 없기에

한 조각의 적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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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
2009. 6. 1. 12:04

明朝見晛消 靑者能靑白不白


내일 아침 햇빛 받아 눈 녹으면

푸른 대는 푸르고 하얀 눈은 사라지리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사안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는 '경향성'이다.

'사실과 의견' '참과 옳음'을 구분하지 못하는 순간 그 것은 보호할 가치 있는 언론이 아니다.

사실을 선택함에서 불균형, 불공정도 문제 이지만,아주 너그럽게 생각해서

사실의 선택 자유를 준다해도

윤색적 표현 ,전제된 가치를 강제하기 위한근거 없는 의견을 사실로 호도하는 것은 죄악이다.

"스스로가 우월한 자라는 생각에서 무지 몽매한 자들?을 향해

계몽적 목적을 위해, 자신들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하여행하는 경향적 보도는 결국, 독자들에겐 제한된 정보와 편향된 해석만 접하도록 하는 부정적 결과를, 언론사엔 신뢰와 독자를 잃도록 하는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다.

“태국 욕 잘 알아들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한국 욕은 알아 듣느냐?"고 물을 수 있어야 보호할 가치 있는 언론이다.


Posted by qlstnfp
2009. 6. 1. 11:27

君之來兮從何來

봄 그대는 올 적에 어디로부터 왔고

君之去兮亦何去

떠날 적엔 또다시 어디로 떠나가나

去來皆自無何有

오고 감을 아무것도 없는 데로부터 하니

不知無何是何處

아무것도 없는 그곳 어디인지 모르겠네

逢君昔日見花開

지난날에 그대를 꽃필 적에 보았는데

送君今朝飛柳絮

전송하는 이 아침엔 버들개지 흩날리네

滔滔歲月流如波

쉬지 않고 가는 세월 물 흐르듯 흐르나니

人間幾日停神馭

인간 사는 이 세상에 며칠이나 머무르리

洛陽城中九十日

낙양성 성중에서 구십 일을 머무르니

神功每入詩人譽

신묘한 공 번번이 시인 칭송 받았다네

功成此日忽然歸

공 다 이룬 오늘 아침 홀연히 돌아가니

一樽香醪爲誰醑

한 주전자 향기로운 술 누구와 마시리오

乘空冉冉去無蹤

허공 타고 훌쩍하니 떠나 자취 없으매

欲往從之歸路阻

그댈 따라 가고프나 돌아올 길이 없네

登高回首舊遊處

산에 올라 예전에 노닐던 곳 돌아보니

緣樹陰陰黃鳥語

짙푸른 녹음 속에 꾀꼬리가 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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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