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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2.16 까마귀 고기를 먹었느냐?
- 2006.12.15 으랏차차 여러분!
- 2006.12.15 잡초와 함께 사는 법
- 2006.12.15 사교육을 보는 두 시각(사교육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사교육 없애는 게 능사인가 )
제주도의 '차사 본풀이'라는 서사무가(敍事巫歌)에 까마귀가 염라대왕의 심부름꾼으로 나온다. 수명이 적힌 적패지(赤牌旨)를 인간들에게 전하는 일을 한다. 하루는 말을 잡는 광경을 본 까마귀가 고기를 얻어먹을 욕심에 돌담 위에 앉았다. 백정이 말발굽을 던지자 깜짝 놀라 날개 밑에 꽂아둔 적패지를 잃어버렸다. 마을에 도착한 까마귀는 제멋대로 수명을 불렀다. 어른과 아이의 죽는 순서가 뒤집히고, 뒤죽박죽이 됐다. 그래서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까마귀 고기를 먹었느냐'고 묻게 됐다고 한다.
차사 본풀이와 비슷한 설화는 전국에서 발견된다. 함경도의 '짐가제굿', 충북 보은의 '영동이 유래담', 전북의 '흥덕현감 설화'…. 그러니 '까마귀 고기'라는 말이 전국에서 쓰였을 법하다.
까마귀는 오랫동안 우리 조상과 친구로 살아왔다. 그래서 까마귀 고기를 먹지 않아도 잘 잊어버리는지 모르겠다. 괴로운 일을 잊지 않고 곱씹는 건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너무 쉽게 잊어버리면 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된다. 정치판이 대표적이다. 쉽게 달아올랐다가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정치꾼의 장난에 휘둘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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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받는 날을 빼고 나면 일생이 며칠이랴.’
언젠가 중국 고전 번역본 시리즈 중에서 이런 제목을 마주한 때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옛날이나 21세기나, 도(道)의 경지에 올랐거나 일상에 파묻혀 살거나,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의 버거움을 얘기하는 듯해서입니다.
한평생으로 넓힐 것도 없이, 올 한 해 고통 받은 날을 다 빼고 나면 우리에게 온전히 남은 날은 며칠이나 될는지요. 괜스레 발걸음이 빨라지는 12월입니다. 해 놓은 일 없이 또 한 해가 가는구나, 뒤돌아보며 마음이 스산해지는 때입니다.
올 한 해도 다들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마다 할당받은 삶의 무게만으로도 어깨가 휘어지는데, 북핵이니 집값이니 해서 국민 노릇하느라 고생했습니다. 많은 것을 누리고 살면서도 자신과 남을 격려하기는커녕 대놓고 투정하는 지도자를 보면서 참 어처구니없어 하기도 했습니다.
살다 보면 개인이든 나라든 고통과 시련이 닥칠 때 스스로를 단련하고 성숙해지는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겠죠. 개인적인 얘기라 망설였지만, 얼마 전 잠시 병원 신세를 졌을 때 도전을 헤쳐 나가는 용기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병원의 X선 검사실 앞은 오전 6시경이면 늘 북적댑니다. 걸어서, 혹은 보호자와 함께 휠체어를 타고 하나둘 나타난 환자들이 금세 대기실의 50여 개 의자를 채우고도 남습니다. 마치 사이보그처럼 온몸에 주렁주렁 줄을 매단 환자들이 단체 사열이라도 받듯 한자리에 모인 모습을 보니 처음엔 낯설다 못해 서글프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입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오전 6시가 기다려집니다. 몸의 자유를 잃어버린 환자들을 통해 삶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링거에다 코와 배에 매달거나 소변을 배출하는 줄까지 합쳐 예닐곱 개 줄을 매단 이들도 잠시 일어설 힘만 있으면 어떻게든 한 걸음이라도 더 걸어 보려고 갖은 애를 씁니다. 하루라도 빨리 낫기 위해 온 힘을 쥐어짜 몸을 움직여 봅니다. 그러다 보면 줄은 하나씩 줄어들고 휠체어에 앉아서도 고개조차 가누지 못했던 환자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늘 자신이 욕심 부린 일을 성취하지 못했다며 아등바등합니다. 한데 병원에 가 보고서야 많은 사람에겐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삶의 무거움을 견뎌 내는 일 자체가 빛나는 성취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걷고 밥 먹는 사소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눈물겹게 노력하는 일, 부실하고 빈약한 존재 자체를 날마다 보듬고 살아가는 일이 모두 경이롭고 아름답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니 해 놓은 일 없어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에겐 서로 격려와 응원이 필요합니다.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고 하지만 거친 파도가 강한 어부를 만든다고도 하지요. 고만고만한 고뇌와 좌절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 올 한 해 겪은 고통과 시련도 우리를 더 나아지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계 상황에 처한 인간을 탐구한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말대로 ‘처음에는 실패한다. 다시 덤벼 보지만 또다시 실패한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조금씩 나아진다’고 믿으면서요. 그런 점에서 오늘은 한번, 스스로를 위해 또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인생응원가를 외쳐 보면 어떨까요.
으랏차차 여러분!
고미석 문화부장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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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텃밭에는 작물만큼 잡초가 자라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보기엔 영락없이 잡초 밭입니다. 눈곱 반만 한 밭 한 뙈기도 제대로 못 돌보느냐는 핀잔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귓등으로 들은 지도 몇 해가 되어 갑니다.
이 마을로 내려와서 처음 텃밭을 가꾸기 시작할 무렵에는 이 사람도 텃밭에 잡초가 자라는 꼴을 못 봤습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식으로 잡초를 뽑고 또 뽑았습니다. 그 덕분에 한동안은 여느 농부네 밭처럼 깔끔하였답니다. 그러나 여름이 오고 장마철이 지나면서 전세가 서서히 역전이 되어갔습니다. 땡볕 아래서 잡초를 뽑을 때마다 천하에 쓸모없는 것이 왜 이리 목숨이 질기냐고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제풀에 지치고 말았습니다. 제초제 안 치고 비료 안 뿌리기로 작정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잡초란 놈이 꼭 방에 들어와 설치는 파리나 모기처럼 귀찮았습니다. 마당에 불쑥 찾아와 자리를 펴고 앉은 불청객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에게 잡초를 텃밭에서 몰아내는 일은 집 안팎을 단속하고 깨끗이 하는 일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마당 한구석에 있는 텃밭에 잡초가 무성하다, 이건 몇 마지기씩 농사를 짓는 마을 노인들 보기에 민망한 일이었지요.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나고 자라는 잡초의 생명력을 이겨낼 만큼 독한 사람이 못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백기를 펄럭이며 잡초와의 공생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밭일은 대충대충. 잡초가 너무 자랐다 싶을 때만 낫으로 베거나 손으로 대충 뽑아 작물 주위에 놓아두었습니다. 작물에 비료가 되겠다 싶었거든요. 죽으면 썩어서 다른 생명의 양분이 되는 게 자연의 이치,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먹으니까 잡초가 자라는 모습이 부담스러운 대신 고마워졌습니다. 작물 역시 먹고 남는 부분은 밭에 뿌려 잡초의 양분이 되게 하였습니다.
잡초에 마음을 열기 시작하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등기부상으로는 이 사람의 텃밭이 틀림없지만 법적인 효력이 잡초에까지 미칠까요. 인위적으로 구분지어 밭이라 이름 지었어도 그 땅은 본래 잡초가 살아 온 자연의 한 조각일 따름이지요. 잡초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땅에 뛰어들어 자기를 내몰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인간이 가소로웠을 겁니다. 농법이 과학화되면서 잡초도 얼마간 긴장을 하였겠지만요.
요즘 이 사람의 텃밭에서는 잡초와 작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개입이 없으면 잡초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잡초는 악하고 작물은 선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선과 악은 이익에 따른 가치 기준일 뿐이니까요. 잡초가 자라는 텃밭에라야 지렁이도 살고 곤충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잡초는 작물과 함께 먹이사슬의 한 부분을 이루었습니다. 내다팔기 위해 작물을 키우지 않는 이상, 수확에 대한 욕심도 없습니다. 욕심이 있다면 잡초가, 잡초같이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바탕이고 세상을 지탱해 나가는 힘으로 제대로 대접받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진우 소설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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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학교 아이들은 학습과외를 안 하는 것일까. 아이들은 무엇이든지 흠뻑 빨아들인다. 그럼 아이들 마음밭에 어떤 씨앗을 심어 주어야 할까. 학교 공부를 마치고 또 다른 곳에서 억지로 공부를 하며 다른 아이를 이기는 마음을 키워야 할까. 아니면 아이들과 놀면서 서로 아껴주는 마음을 배우고 엄마 아빠랑 지내며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자리를 가져야 할까.
내 아이를 사랑하듯이 이웃 아이들을 아끼고 섬기는 마음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 바로 모든 사교육을 없애야 한다. 아이들은 놀면서 배운다
지금 아이들을 보라. 학교 공부가 끝나고 이곳저곳 다른 배움터를 다니다가 밤 9시 넘어 들어오고 밤 12시가 넘어야 잠자리에 든다. 그렇게 많이 배운 아이들이 세상을 맑고 밝게 하는가. 그렇게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그만인가. 그 다음에는 또 좋은 직장을 찾으러 공부해야 하고 일자리를 얻으면 거기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또 이를 악물고 살아야 한다. 그런 삶이 행복할까. 왜 끝없이 행복을 뒤로 미루며 힘든 삶을 살아야 하나.
설사 돈 많이 벌고 이름나고 힘 있는 자리에 올라서야 행복하다고 해도, 그런 삶을 사는 동안 그가 느끼는 행복으로 다른 사람들이 아프고 죽음을 맞는다면 그것이 진정한 행복일까.나도 지난날에는 어른들이 말하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선생님이 말하는 대로 대학에 가고 돈 잘 버는 일터에 다니는 것이 세상을 맑고 밝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내가 이렇게 누리는 삶으로 가난한 아이들이 아파하고 죽어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깨끗한 물을 못 먹어 설사나 전염병으로 죽는 아이들이 지구에서 한 해에 18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하루에 5만명 가까운 아이들이 더러운 빗물이나 버려진 물을 먹고 죽어간다. 이 일이 나랑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 이것을 어떻게 막아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가난한 아이들을 살릴 수 있나.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있음을 기쁘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저 혼자만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살맛 나는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 내 아이를 사랑하듯이 이웃 아이들을 아끼고 섬기는 마음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 바로 모든 사교육을 없애야 한다. 끝없이 서로를 죽이는 공부 지옥을 없애야 한다. 아이들은 놀면서 배운다. 아이들은 학교 공부를 마치면 집에 가방을 던져 놓고 길에서 뛰어놀고 친구 집에서 뒹굴며 놀고 엄마 아빠랑 눈을 맞추며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린다.
사교육 홍수 속에서 아이는 영어·수학 공부는 처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세상을 맑고 밝게 하는 힘은 자란다. 그런 삶은 큰 기쁨이고 용기다. 이런 즐거움이 퍼져 내가 살고 있는 마을 곳곳에 스며들어 가난하고 외로운 아이들을 보듬는 슬기로 자랐으면 좋겠다.
은종복
사교육을 없애자는 주장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현실 교육의 여건이 그렇게 쉽게 사교육을 폐기해도 좋을 만큼 탄탄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현행 교육제도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글쓴이처럼 모든 학원을 끊고 대안학교에서 열심히 자연과 뛰어놀도록 아이들을 배려한 점은 정말로 본받을 만하다. 하지만 대안학교에 갈 수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상당수 대안학교는 부모의 자본력이 탄탄해야 선택할 수 있어 오히려 가난한 아이들이 들어가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사교육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교육을 통해서도 우리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을지 좋은 대안을 찾아서 이롭게 활용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처사일 것이다.
솔직히 말해보자. 글쓴이처럼 그렇게 아이들을 놀리면서 교육하고자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자면 나름대로 교육철학이 뚜렷해야 하며 수시로 변하는 교육정책에도 초연해야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볼 때 무조건 사교육을 없애야 한다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발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교육을 무조건 비난할 것이 아니라 사교육의 순기능을 찾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방안이 아닐까? 당장, 공교육이 한 달에 두 번 쉬는 토요일을 사교육이 대신 메우고 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만약에 공교육이 발빠르게 현실의 변화에 대응을 했더라면 오늘날처럼 이렇게 거대한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사교육을 없애자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지금으로선 없어질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사교육을 통하여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사교육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글쓴이의 말처럼 살맛 나는 마을을 만들고, 신명나는 세상을 만든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마치 사교육 때문에 아이들이 불행하고 사교육 때문에 사회가 이렇게 혼란스럽게 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더구나 미래 사회는 ‘지식경쟁 시대’가 되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사실이다. 자원도 부족하고 지리적 공간마저 부족한 우리 자녀들에게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아직도 공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강대국과 겨루어서 이길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두뇌이다. 그래서 공부가 중요한 것 아닌가? 글쓴이는 마치 공부란 개인의 성공과 명예만을 추구하기 위해서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이는 지나친 감정의 산물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출세하고 명예를 얻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다만 그런 지위를 악용하여 개인의 영달을 꿈꾸는 것이 나쁜 것 아니겠는가?
어떤 제도이든 장단점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사교육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교육을 통해서도 우리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을지 좋은 대안을 찾아서 이롭게 활용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처사일 것이다. 교육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을 새기면서, 모두가 지혜를 모아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홍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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