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많이.
널리 알려진 게 '수호지'의 무대 스토리다. 여기서 죽은 무대의 뼈는 독살의 증거물이다. 무대의 시체를 염(殮)했던 장의사 하구숙은 몰래 뼛조각 몇 개를 빼돌렸다. 그는 형의 의문사를 추적하는 동생 무송에게 시커멓게 변한 무대의 뼈 몇 개를 건네준다. 무송은 이를 증거 삼아 공범 서문경과 반금련을 단죄(斷罪)한다.
당시 독살에는 주로 비소(砒素)가 쓰였는데, 비소는 몇 백 년 동안 머리카락이나 뼈에 남는다. 덕분에 방사선으로 오래전에 수수께끼의 죽음을 맞은 사람의 사인을 규명할 수 있게 됐다.(시부사와 다쓰히코 '독약의 세계사')
뼛조각은 유명 인사들을 무덤에서 깨우기도 했다. 독살 설이 나돌던 나폴레옹에서부터 프랑스 배우 이브 몽탕, 나치의 학살자 요제프 맹겔레,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등의 유골이 신원 확인이나 사망 원인 규명차 다시 파내졌다. 조지 워싱턴에서 베토벤에 이르는 영웅들의 뼛조각도 DNA검사를 거쳤다.(도로시 넬킨 '인체시장')
인류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한 것도 몇 개의 뼛조각이다. 1997년 페보 교수는 그때까지 인류의 조상으로 알려진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에서 DNA를 뽑아냈다. DNA 분석 결과,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는 조상이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이인식 '제2의 창세기')
말 많이 하기론 사람 뼈 못지않은 게 소뼈다. 은(殷)나라 사람들은 소뼈의 주술적 힘을 믿었다. 당시 소뼈는 인간의 운명까지 결정했다. 갑골문자가 그것이다. 갑(甲)은 거북의 등딱지, 골(骨)은 소뼈를 뜻한다. 은나라의 제사장은 소 뼈를 불에 구워 갈라지는 금을 보고 점을 쳤다. 임금은 점괘에 따라 나라의 대소사를 집행했다. 나중엔 소뼈 대신 거북의 등딱지가 주로 쓰였다.
소 뼛조각이 요즘 또 일을 냈다. 지난달부터 최근까지 세 차례나 미국산 쇠고기 상륙을 막았다. 발끈한 미국 정부와 업계는 '뼛조각 쇠고기'도 수입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올 1월 '살코기'만 수입하기로 우리 측과 협상했던 미국 측 실무자는 협상을 잘못했다며 본국에 돌아가 혼이 났다고 한다.
미국으로선 약도 오르고 화도 날 법하다. 광우병 때문에 금지된 지 3년 만에 어렵게 다시 연 수출 길이 '그까짓' 손톱만 한 뼛조각 몇 개 때문에 막힌대서야. 그러나 어쩌랴. 소뼈의 주술적 힘이 통해서인지, 아직은 미국 쇠고기가 한국 식탁에 오를 때가 아닌가 보다
중앙일보 이정재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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