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2. 15. 22:34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압록강을 건너 연경(북경)을 거쳐 황제의 행궁이 있었던 열하까지 여행한 기행문이다. 이 책에서 압록강은 ‘마자수’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그 근원이 말갈의 백산(백두산)으로부터 출발하며, 물빛이 오리의 머리빛깔과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압록강은 분명 물빛에서 나온 이름이다. 그런데 압록강을 왜 ‘마자수’(馬紫水)라 불렀던 것일까?
흥미로운 사실은 ‘마자’가 용(龍)을 뜻하는 토박이말 ‘미르’와 관련이 있다는 황윤석의 해석이다. 황윤석은 영조 때의 실학자로 〈이제속고〉라는 문집으로 유명하다. 이 책의 잡저에는 ‘화음방언자의해’라는 글이 실려 있다. 말 그대로 중국의 한자음이 우리말에서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설명하는 글이다. 여기서 곧 ‘마자’와 ‘미르’는 같은 소리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압록강을 ‘마자수’ 또는 ‘용만’(龍灣)이라 불렀고, 또 압록강 가까이 있는 ‘의주’를 ‘용만’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땅이름 가운데 미르 ‘용’자가 들어간 곳도 비교적 많다. 유래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연변에는 ‘용정’(龍井)이 있고, 서울에서 ‘용산’이 있다. 서울의 용산은 백제 기루왕 때 한강에서 두 마리 용이 나타났던 까닭으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처럼 땅이름은 어원보다는 설화 속에서 전승되는 경우가 많지만, ‘마자수’에 ‘미르’가 남아 있듯이 풍요로운 우리말의 창고 구실을 한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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