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7. 13:23



상감령은 강원 철원의 오성산(해발 1062m) 동북방에 이어진 고지군(群). 


강원 김화군 김화읍 계웅산 북쪽 2㎞에 있는 해발 598m의 나지막한 야산이다. 


지금은 북한 땅인 이곳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사람치고 상감령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상감령 전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상감령은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삼각고지와 저격능선 일대를 부르는 중국식 지명이다. 중국 공산당은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돕는다)를 내걸고 6·25전쟁에 참전했다. 51년 7월 휴전 협상이 시작되자 중공군은 상감령에 땅굴 진지를 구축했다. 협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전략 요충지 사수에 나선 것이다. 52년 10~11월 43일간 백병전 42회, 고지의 주인이 12차례 바뀌는 일진일퇴 끝에 중공군은 삼각고지와 저격능선의 한 개 고지를 점령했다. 


952년 10월14일부터 43일 동안 하루 평균 30만발씩 포탄이 떨어졌을 정도로 치열한 전투에서 국군 제2사단과 미 육군 제7사단 공격을 막아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저격능선 전투와 삼각고지 전투를 합쳐 중국은 상감령 전투라고 한다. 


미군 7사단과 함께 공방에 나선 국군 2사단은 도중에 미군이 빠지자 이 전투를 도맡아 저격능선 일대의 2개 고지를 탈환했다. 





중국은 ‘상감령 전투’를 “지원군이 조선전쟁에서 거둔 최대의 승리”라고 선전한다.


중국은 이 전투를 항미원조를 대표하는 전투로 포장했다. 며칠 안 됐지만 미군과 맞붙었고 북한의 전략 요충지를 피 흘려 지켰다는 점에서 항미원조의 개념에 맞아떨어졌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의 주제가 ‘나의 조국’은 대형 국가 행사 때마다 연주되며 혈맹의 기억을 재생산했다.


이 ‘상감령’ 전투의 승패는 ‘지하만리장성’이 갈랐다. 

중국군은 1951년 8월부터 기막힌 전법을 펼친다. 임진강 하구부터 강원도 동쪽 끝 간성까지…. 전체길이 250~287㎞(폭 20~30㎞)에 이르는 갱도를 지하에 건설한 것이다. 갱도(9519개)와 엄·채·교통호(3683㎞) 등을 합하면 총연장 4000㎞에 이르는 거대한 단일요새였다. 중국은 ‘지하만리장성’이라 했다. 2층 구조인 지하장성은 식당과 강당, 병원까지 갖추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어떤 사단도 3개월의 식량을 보급할 지하공간을 갖췄다”고 자랑했다. 특히 상감령 일대에는 총연장 8.8㎞에 이르는 갱도를 구축했다. 미국 군사전문가들도 “원자폭탄을 터뜨렸다 해도 점령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유엔군은 이 지하장성 때문에 모든 전선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0192101545&code=990000&s_code=ao10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3212128545&code=990201


http://www.vietnamwar.co.kr/technote6/board.php?board=gesipan12&page=3&command=body&no=615



Posted by qlstnfp
2014. 12. 7. 12:48

<화랑세기>는 540~681년 사이 활약한 풍월주(대표 화랑) 32명의 전기다. 


한학자 박창화(1889~1962)가 일제강점기에 일본 궁내청에서 일하다가 <화랑세기>의 원본을 보고 베꼈다는 것<화랑세기> 발췌·필사본


그내용은 


“태자(동륜)가 아버지(진흥왕)의 후궁(보명궁주)을 연모했다. 태자는 궁주의 담을 넘어 관계를 맺었다. 그러다 밤중에 보명궁의 담장을 넘다가 큰 개에게 물려 죽고 말았다.”

끝모를 ‘어색(漁色·엽색행각)’…. 그리고 근친혼과 사통 등 난잡한 성행위…. 



 미실이 어머니에게 교태를 부리는 방법(방중술·房中術)을 배웠고 임금 3명(진흥·진지·진평)과 태자(동륜), 풍월주 4명(사다함·세종·설화랑·미생랑) 등을 사랑의 포로로 삼았다. 

 남편(세종 풍월주)이 ‘거동도 하지 못할 정도’로


“신국(神國)에는 ‘신국의 도(道)’가 있다. 어찌 중국의 도로 하겠는가.”(<화랑세기> ‘양도공조’)


 이런 ‘망측한 내용’을 담고 있었으니 전문가들은 ‘가짜’의 낙인을 찍었다.

그런데 일본 궁내청에 보관돼 있다는 <화랑세기> 원본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141901295&code=990000&s_code=ao102

Posted by qlstnfp
2014. 12. 7. 12:31
어쭙잖은 지도자가 왕위에 오르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폼’ 잡는 것이다. 진나라 2세 황제(BC 210~BC 207)가 아방궁과 만리장성을 완성하려 했다. 그러자 “제발 그만하라”는 상소가 빗발쳤다. 황제가 쏘아댔다. 

“내가 천하를 얻은 까닭은 내 맘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무슨 헛소리냐.”(<사기> ‘진시황본기’) 

<사기(史記)>는 “사람의 머리로 짐승의 소리를 내뱉는다(人頭畜鳴)”고 장탄식했다. 결국 진나라는 대륙을 통일한 지 15년 만에 붕괴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171934305&code=990000&s_code=ao102



'세상에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감령(上甘嶺)  (0) 2014.12.07
김대문(金大問)의 <화랑세기>  (0) 2014.12.07
타이타닉호의 책임자 3명의 엇갈린 운명  (0) 2014.09.02
철면피(鐵面皮)와 박면피(剝面皮)  (0) 2014.08.22
고갱  (0) 2013.07.09
Posted by qlstnfp
2014. 9. 2. 18:51

http://m.nocutnews.co.kr/news/4011242



스미스 선장은 끝까지 배에 남아 조타실에서 방향키를 잡고 있다 최후를 맞았다. 

배에 점점 물이 차오르자 스미스 선장은 남은 선원들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제군들아~ 수고했다. 
자네들은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그것도 아주 잘... 
나는 자네들에게 더 이상의 것을 요구할 수 없구나. 
자네들의 임무는 이제 완전히 끝났다. 
바다가 얼마나 험한 곳인지 잘 알 것이다. 
이제 자네들의 살 길을 찾아라. 
신의 가호가 있기를..." 


선장을 잘 만난 덕에 타이타닉호에 탄 여성의 74%, 어린이는 51%가 살아난 반면, 남성은 20%만 생명을 건졌다. 

승무원의 경우 여성은 87%가, 남성은 22%만 구조되었다. 

이 배를 설계한 토마스 앤드류스는 승객들의 탈출들 돕다가 침몰 직전 흡연실에 조용히 들어가 최후를 맞았다. 

미관이 나쁘다는 이유로 36개의 구명보트를 장착해야 하는데 20개로 줄이는 등 설계상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은 그가 조용히 벽에 걸린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편 마지막 구명보트가 내려질 때 두 사람이 몰래 탔다고 한다. 

한명은 먼저 가족을 무사히 탈출시킨 승객이고, 나머지 한명은 이 배의 주인이었던 브루스 이스메이였다. 

배의 주인이 배와 승객,그가 고용한 선원, 비서와 하인까지 내팽개치고, 도주길에 나선 것이다. 

그는 자기만 살겠다며 도망치고도 기자들에게 "갑판 위에 남은 사람이 더 이상 없었다"고 변명해 공분을 샀다. 

남은 인생동안 그의 삶은 '왕따'와 '조롱', '손가락질'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