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2949건
- 2007.01.10 신미양요
- 2007.01.10 1908~1910년대 우리 모습 - 내쇼널지오그래픽誌에서
- 2007.01.10 100년전
- 2007.01.10 일제강점기
1871년(고종 8) 미국이 1866년의 제너럴셔먼호(號) 사건을 빌미로 조선을 개항시키려고 무력 침략한 사건.
1871년 5-6월. 미국 함선에 승선한 한 한국인. 빈 맥주병과 미국 신문인 [Every saturday] 한 부를 들고 있다. 사진 설명으로 보아 신미양요 당시 포로로 보이지는 않는다.
![]() |
이 사진은 강화도를 침공했던 군함 중 한척인 콜도라도호의 해군 제독과 수행원들. 제복으로 미루어 중앙에 앉은 사람이 로저스 제독으로 추측되며, 책상 위에 펼쳐 놓은 종이는 지도이고, 장소는 선상이다.
로저스 미 해군 제독과 수행원들
로저스의 작전회의. 1871년 5월. 두 명의 중국인이 보이는데 이들은 아마 안내자나 통역관일 것이다.
초지진에 상륙한 미 해병대. 뒤에 이들은 광성진에서 조선군과 백병전을 벌인다.
![]() |
초지진 포대를 점령한 미 해병. 초지진을 점령한 부대는 킴벌레이 중령 이하 장병들이며 그 수는 약 450명이었다
덕진진을 점령한 미군들. 1871년 6월 2일
1871년 6월 2일. 광성보에서 결사 항전을 하다 전사한 조선군.
"조선군은 용감했다. 그들은 항복 같은 건 아예 몰랐다. 무기를 잃은 자들은 돌과 흙을 집어 던졌다. 전세가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되자 살아남은 조선군 1백여 명은 포대 언덕을 내려가 한강물에 투신 자살했고 일부는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앨버트 가스텔)
"남북전쟁때에도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포화와 총알이 쏟아진 적은 없었다." (블레이크 중령)
"이 전투는 동양에서 미국 해군의 위신을 손상시키고 외교의 실책을 폭로한 최고의 사건이다" (미 국무장관 포스터)
"서울에 있는 미국인 학교에서는 반드시 이 전적지에 수학여행 오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 사는 미국인이나 여행자는 반드시 이곳을 찾아보고 그들 조상을 추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규태의 [역사산책] 중)
![]() |
![](http://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옥쇄한 조선군
'1900-19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 조선을 차지할까?(1900-) (0) | 2007.01.11 |
---|---|
청일전쟁(삽화) (0) | 2007.01.10 |
1908~1910년대 우리 모습 - 내쇼널지오그래픽誌에서 (0) | 2007.01.10 |
100년전 (0) | 2007.01.10 |
푸른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 (0) | 2007.01.10 |
아래 사진들은 1910년 내쇼날지오그래픽지 11월호에 실린
William W. Chapin이 쓴 기사 'Glimpses of Korea and China'
에서 옮긴 당시 사진들입니다.
1910년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서울 여인네들
1910년 서울의 짐꾼들
1910년대 서울 주민들
1910년의 조선 승려들
1910년대 서울 신사들
1910년대일거리를 기다리는 짐꾼들 - 서울
가금류 행상인
지게에 돼지를 지고 팔러 가는 사람들
떡 만드는 사람들
소에 싣고 팔기 위해 기다리는 목재
목재를 나르는 소
볏짚으로 만든 우의 그리고 삿갓
빨래하러 가는 아낙과 아이
상류층 부인을 태운 가마
1910년대의 상여
옹기를 진 사람
지게로 옹기를 나르는 사람
일하는 부녀자들
일하는 조선인들의 모습
장작 팔러 나온 사람들
젓을 물린 아낙들
짐꾼들
===============================================================================
아래 사진들은 1908년 7월호 National Geographic誌에 실린
'Notes and scenes from Korea' 기사 중의사진을 옮긴 것임.
한문 공부를 위해서당에 모인 서동들
영변 약산의 정상-멀리서 이름을 바위에 새기기 위해 몰려 온 곳으로 소개 - 사진:Chas E. Morris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를 당한 고종의 조카와 두 딸
물지게로 물 퍼 나르는 사람
돼지 팔러 가는 사람
길 옆의 칠성당-1908년 평양부근- 사진: J.Z Moore
양반댁 마나님과 가마꾼
상류층 부인과 규수
'1900-19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일전쟁(삽화) (0) | 2007.01.10 |
---|---|
신미양요 (0) | 2007.01.10 |
100년전 (0) | 2007.01.10 |
푸른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 (0) | 2007.01.10 |
‘서양인이 본 조선’ 에 대한 기록들 (0) | 2007.01.10 |
|
|
|
|
|
|
|
|
|
|
|
|
|
|
'1900-19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미양요 (0) | 2007.01.10 |
---|---|
1908~1910년대 우리 모습 - 내쇼널지오그래픽誌에서 (0) | 2007.01.10 |
푸른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 (0) | 2007.01.10 |
‘서양인이 본 조선’ 에 대한 기록들 (0) | 2007.01.10 |
1910 결혼식 (0) | 2007.01.08 |
△ 부산 순시에 나선 순종황제
순종황제는 이등박문을 대동하고 경성을 출발, 대구·부산·마산 등을 순시했다.
도로 주변에 서있는 시민들과 일장기의 모습이 보인다.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의 이명화 박사는
“순종의 서도 순시를 촬영한 사진은 공개된 바 있지만 남도 순시는 이 사진이 처음인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1909. 1. 7)
나랏님이 구중궁궐 속에 쳐 박혀 국사를 잊고 있지는 않았지만 침략군의 호위(?)를 받으며
팔도를 순시한다는 것이 허울뿐인 있으나 마나지.
![](http://www.chungdong.or.kr/middroom/syshim/한국사/Images/russia3.jpg)
△ 일본군이 조선인을 짐꾼으로 부리며 여유롭게 웃고 가는 모습.
강제로 징병된 학도병
![](http://art.chosun.com/site/data/img_dir/2004/02/18/2004021800003615.jpg)
△ 출전하는 학도병
일본은 전쟁 장기화로 물자와 군인들이 부족해지자 학병제를 실시했다.
이 사진은 ‘10월 27일 입단 장도중’이라고 학도병 이름이 기록된 기념사진.
장도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글이 담긴 일장기를 들고 있는 모습에는 아직 학생티가 남아 있다.(1944)
![](http://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일제, 백두산 우리민족의 정수리에 쇠말뚝 박다
![](http://art.chosun.com/site/data/img_dir/2004/02/18/2004021800003211.jpg)
‘한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쇠말뚝을 박고, 그 앞에 마련한 제단에서 무속인을
포함한 일본인들이 천황(텐노)의 시조신이자 일본인의 조상신으로 알려진
‘아마테라스 오미가미(天照大神)’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1943)
윤봉길 선생 의거 직후의 국내 미공개 사진
윤봉길 의사가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의거 직후 모자를 쓴 채
일본 헌병에 연행되는 모습(X자 표시가 있는 사람이 尹의사).-김상기 충남대 교수 제공-
![](http://www.chosun.com/media/photo/news/200402/200402170338_03.jpg)
△ 일본도로 처형하는 일본군인 일본 군인이 중국인 옷을 입은 사람의 목을 자르고 있다.
독립군은 신분 위장을 위해 중국인 복장을 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복장으로만 보면
중국인과의 구별이 쉽지 않다. 국민대 국사학과의 장석흥 교수는 “사진의 각도가 다른
것으로 미뤄, 3명 이상이 동시에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가 독립군이라고
무조건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잔악한 처형의 순간...
칼로 목을 칠 때 몸이 넘어가지 않도록 팔을 뒤로 묶어 목을 내리치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다.
(Arrested prisoner is being executed by a sword. The Japanese soldiers are pulling back the cord
that bound the victim so that the body will stand upright when the sword hit the victim's neck.
This photo was taken at the exact moment of the head being cut off.)
광대뼈 등의 외부 윤각이 많이 닮았다고 해서 박정희(다카기 마사오)라는 주장도 일부 있었으나
그렇게 믿을 만한 근거는 부족하다.
그러나 다카기 소위가 일본 본토의 마쓰야마 제 14연대에 처음 배속되었다가 곧 만주 제8연대의
소대장으로 임명되고, 이어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활동하던 영안지방의 보병 제8군단에 배속되어
열성적으로 항일부대를 토벌한 공로를 인정받아 소위로 임관한지 1년만에 중위로 진급했다는 것은
역사의 비극 중에 비극이다. 항일독립군 토벌작전에 110회나 참가했다는 박정희가 앗아간 목은 몇이나
될까? 나는 위의 사진이 박정희라고는 믿지 않지만 그가 직접 자른 독립군의 목의 수효가 최소한
10명은 넘을 거라는 생각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
![](http://www.chungdong.or.kr/middroom/syshim/world/6.25.jpg)
1952년 한국 전쟁 때 촬영한 것으로 한홍구 교수는 [한겨레21/한홍구의 역사이야기] 우리는 무덤 위에 서있다
(2001년04월10일 제354호, or 대한민국사)에서 "한국전쟁 기간 중 생포된 게릴라의 잘린 목을 보며 웃는 남한 병사"
라는 설명을 달고 있다.
![](http://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우리가 우리 내부의 이성을 잃은 광기를 다스리지 못하면서 일본의 만행만을 규탄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인, 중국인, 나아가 전세계를 상대로 반인류적인 만행을 저지른 것이나
우리가 같은 민족의 목을 잘라 들고 희희낙락거리는 만행에서의 차이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이완용의 여편네의 모습??
![](http://women.or.kr/herstory/WomenArt/photgrph/image/phtga28.jpg)
△ 호사는 친일부역자들이 누리고
▽ 수난은 죄없는 민초들의 몫이다.
![](http://www.chungdong.or.kr/middroom/syshim/한국사/Images/russia3.jpg)
△ 일본군이 조선인을 짐꾼으로 부리며 여유롭게 웃고 가는 모습.
![](http://www.ihs21.org/photo/124.jpg)
1951년 6월 부산, 이기붕이 국방장관에 취임했을 때 그의 집에 초대된 미국인들의 기쁨조로
특별히 초대된 이화여대생들이 문밖에서 노래를 불러 주고 있다. 오른쪽부터 무초 주한 미국대사,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 콜트 장군의 모습이다. 지금은 전쟁중이라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맹목적인 반일반미도 경계해야 하지만 뻔히 두 눈을 뜨고도 아무 생각없이 친일이 친미로 그냥
이어져 내려간다면 우리는 역사를 상실한 국민이 될 것이다. 원조보수를 자처하는 한나라당 등이
친일진상규명법에 반기를 드는 것은 그들이 친일후손이 아니고는 이해할 방법이 없다.
보수라는 정체성의 대의를 외세에 의한 침탈이나 그 지배를 배격하고 민족자아의 창달을 널리
주창하는 걸로 인식한다면 친일잔재청산을 거부하는 보수그룹은 사기꾼집단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난다. 보수를 빙자하여 자신의 존재조차 스스로 부정하는 수구꼴통인 것이다.
박영효 태극기 보다 앞선 최초의 태극기일까??
'박영효 태극기'보다 최소 2개월 여 앞선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 사진이 발견됐다.
1882년 7월 미국 해군성 항해국이 출간한 '해상 국가들의 깃발(Flags of Maritime Nation)'이라는
제목의 책에 태극무늬와 4괘(卦) 등 현재 태극기 형태를 갖춘 태극기 사진이 실려 있는 것으로 26일 밝혀졌다.
![](http://women.or.kr/herstory/WomenArt/photgrph/image/phtga28.jpg)
일제강점기에 99%의 우리민족은 죽음에 이르는 수난을 당하고 극소수의 친일부역자만은
개같은 영화를 누렸다. 국권은 회복했으되 친일의 무리들을 단죄하지도 못했고 이제는
그 굴절된 역사만이라도 바로 잡자는 노력도 친일파 후손들의 벽에 부딪혀 난관에 봉착했다.
나는 위에 적시한 낡은 사진들이 합성했거나 조작된 증거가 아니라면 친일진상규명법에 반대하는
한나라당 등 친일파들의 무리를 개, 돼지보다 못한 매국노요, 인류의 공적이라고 규정한다. (The End)
'1910-19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미관 [優美館]-김두환 (0) | 2010.02.18 |
---|---|
1920 장터 (0) | 2010.02.14 |
1920 어느 결혼식 (0) | 2010.02.14 |
1920 풍경 (0) | 2010.02.14 |
일제시대 풍물8 (0) | 2007.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