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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10 푸른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
- 2007.01.10 ‘서양인이 본 조선’ 에 대한 기록들
- 2007.01.10 1890년
- 2007.01.10 기독교의 전래
푸른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먼나라 꼬레…`사진전![]() 테니스와 여가활동 - 조선에 온 서양의 외교관들이나 선교사들이 여가활동에서 가장 선호한 것중의 하나가 테니스 시합이었다 ![]() 중흥사 - 고려 때 창건된 중흥사는 북한산성 안의 중심지인 노적봉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1904년 소실 ![]() 무악재에서의 휴식 - 공사관 관계자들이 영은문(迎恩門)을 지나 무악재 중턱을 오르다가 휴식을 하는 장면으로 추정된다 ![]() 명동성당 사제관 - 중앙의 서양식 건물은 명동성당 사제관. 1892년에 사제관의 오른쪽 공터에다 명동성당을 짓게 된다 ![]()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 1882년에 톈진의「양시태사진관」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원군 사진 ![]() 가마를 타고 가는 여인 - 가마 속의 여인은 따르는 몸종이 없는 것으로 보아 관청에 들어가는 기녀로 여겨진다 ![]() 포도주와 담배 - 공사관 관계자들이 서양식 의자에 앉아 프랑스산 붉은 포도주를 마시며 담배를 즐기고 있다 ![]() 별기군의 열병 - 광화문 옆의 군영에서 열병을 하고 있는 별기군 ![]() 프랑스 공사관 전경 - 프랑스 공사관은 1886년 조선과 프랑스 간의 수교 이후에 서소문 안에 자리를 잡았다 ![]() 조선 무관 한(韓) 장군과 프랑스 무관 드라브리 자작 ![]() ![]() 이폴리트 프랑뎅 - 이폴리트 프랑뎅은 1892년 4월부터 1894년 2월까지 조선 주재 제2대 프랑스 영사 및 전권공사를 역임 ![]() 조선의 대신들 - 프랑스 공사관 부근의 서울주재 외교관 클럽에서 조선의 대신들과 프랑뎅 등 공사관 관계자들이 자리 ![]() 조선 여인의 맵시 - 프랑스 공사관에 소속된 조선인 통역안내원의 부인으로 추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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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의 저자인 영국의 여성 여행가 비숍. 남장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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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hoto-media.hanmail.net/daum/featureOnly/200512/23/20051223194551.31.jpg)
온돌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
온돌은 한국 고유의 난방법으로 우리 민족의 생활습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온돌은 거의 모든 민가에서 사용한 방식이었다.
한지 제작술 ...
![](http://photo-media.hanmail.net/daum/featureOnly/200512/23/20051223194551.29.jpg)
전통적인 방법으로 한지를 제작하고 있는 모습.
한지는 닥나무 등의 섬유를 원료로 만든 우리 고유의 종이로 창호지·조선종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주요 수출품이었다.
이는 품질에 따라 백지(白紙)·장지(壯紙)·각지(角紙) 등으로 나뉜다.
또 용도에 따라 그 질과 호칭이 다른데, 문에 바르면 창호지, 족보·불경·
고서의 영인(影印)에 쓰이면 복사지, 4군자나 화조(花鳥)를 치면 화선지(畵宣紙),
연하장·청첩장 등에 쓰이는 솜털이 일고 이끼가 박힌 것은 태지(苔紙)라고 불렀다.
전통 한선 ...
![](http://photo-media.hanmail.net/daum/featureOnly/200512/23/20051223194551.35.jpg)
전통 한선의 모습.
한선은 배 밑바닥이 평평한 '평저선형(平底船形)' 구조를 갖고 있어
다른 나라의 선박과 뚜렷이 구별됐다.
평저선형 구조는 물 속에 잠기는 뱃전의 깊이가 낮아 얕은 수심의 연안과 강을
항해하는데 적합했다.
이같은 구조는 만조 때는 물에 떠 있다가 썰물 때에는 개펄에 그대로 안착할 수 있기 위해 고안됐다.
첨성대 ...
![](http://photo-media.hanmail.net/daum/featureOnly/200512/23/20051223194551.30.jpg)
현존하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첨성대.
국보 제31호. 첨성대의 상단부로서 우물정자 모양의 돌은 동서남북의 방위를 가리킨다.
석단 하나하나가 12달, 24절기를 나타낸다고 한다.
도자기 ...
![](http://photo-media.hanmail.net/daum/featureOnly/200512/23/20051223194551.32.jpg)
도자기를 제작하고 있는 장인의 모습.
도자기 이외에 옹기도 상고시대부터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때는 와기전(瓦器典)이라 하여 옹기를 굽는 직제까지
두었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도 서울과 지방에 100여 명의 옹기장을 두었다고 한다.
에밀레종 ...
![](http://photo-media.hanmail.net/daum/featureOnly/200512/23/20051223194551.34.jpg)
봉덕사 성덕대왕 신종.
한국 최대의 종으로, 에밀레종 또는 봉덕사(奉德寺)에 달았기 때문에 봉덕사종이라고도 한다.
성덕대왕의 아들인 경덕왕(35대)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아버지의 이름을 붙여 만든
종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덕왕은 종의 완성을 끝내 보지 못했고 20여 년이 더 지난 혜공왕(36대) 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종이 완성됐다.
이 에밀레종은 소리의 여운이 유난히 긴 것으로 유명하다.
종을 치면 그 은은한 여운이 끊어질 듯 작아지다가 다시 이어지곤 하는 현상이 1분 이상 지속되며,
특히 가슴을 울리는 저음역의 여운은 3분까지도 이어진다.
이렇듯 반복되는 여운 소리가 '에밀레~ 에밀레~' 하며 마치 어린아이가 어미를 탓하며
우는 소리 같다고 해서 에밀레종이란 별명이 붙었다.
태극선 ...
![](http://photo-media.hanmail.net/daum/featureOnly/200512/23/20051223194551.33.jpg)
전통 부채(태극선)를 만들고 있는 모습.
태극선은 바퀴살 모양으로 배열된 약 100여개의 살대 위에 태극문양이 아로새겨진
비단헝겊을 입혀 선면(扇面)을 만들고 사북 장식으로 손잡이를 고정시킨 형태의 부채이다.
오랜 세월동안 양반층에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폭넓게
애용됐고 나라의 상징인 태극 문양이 사용되어 한국적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내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육받는 선비들 ...
![](http://photo-media.hanmail.net/daum/featureOnly/200512/23/20051223195015.38.jpg)
개항 이후 근대식 교육을 받고 있는 선비들의 모습.
일제 강점기 이전으로 서울의 한 고등학교 물리시간 풍경이다.
1903년경으로 추정된다.
근대식 학교 ...
![](http://photo-media.hanmail.net/daum/featureOnly/200512/23/20051223195015.37.jpg)
개항 이후 종교적 목적으로 입국한 선교사들이 근대식 학교를 다수 세웠다.
어린 소녀들이 이같은 학교에서 수학을 배우고 있다.
서당 ...
![](http://photo-media.hanmail.net/daum/featureOnly/200512/23/20051223195015.36.jpg)
서당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
평소에도 선비와 학자들은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는 공자의 말에 따라
독서와 집필활동에 매진했다.
독립신문 제작 ...
![](http://photo-media.hanmail.net/daum/featureOnly/200512/23/20051223195015.39.jpg)
독립신문을 제작하고 있는 사람들.
1896년 4월 7일에 서재필(徐載弼)이 창간한 신문으로 한글전용과 띄어쓰기를 단행하여
그 후의 민간신문 제작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신문은 민중계몽과 자주독립사상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초기 의병들 ...
![](http://photo-media.hanmail.net/daum/featureOnly/200512/23/20051223195015.40.jpg)
독립운동 초기 의병들의 모습.
근대 한국의 의병은 일제 침략에 대항한 무력 항쟁의 대표적 세력으로 주로 유생,
전직 관료, 해산 군인 등이 지도부로 구성됐고 농민, 하급 군인, 도시 빈민층 등이
그 하부 구성원이었다.
임진왜란 중(1594) 한국에 온 최초의 서양 신부 세스페데스가 상륙한 곳으로 추정되는 경남 웅천
1883년 민영익(앞줄 가운데)을 단장으로 한 견미사절단장으로 한 견미사절단이 미국을 방문
광혜원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최초로 내한(1884년 9월)한 알렌이 고종의 윤허를 얻어 설립한 국내 최초의 서양식 병원으로 오늘의 세브란스병원 전신이 되었다
1884년 6월 29일 황해도 장연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교회 1895년 기와 지붕의 한식교회 건물로 개축한 소래교회
아펜젤러(좌)와 언더우드(우) : 1885년 4월 5일 함께 내한한 두 선교사는 한국 개척교회의 개척자였으며 절친한 동역자였다
배재학당
한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신교육 기관으로 1885년 8월에 설립되었다. 1887년에 건축된 교사는 한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서양식 벽돌 건물이기도 했다
이화학당
1886년 스크랜톤부인에 의해 시작된 이화학당은 한국 여성교육의 요람이 되었다
서울에 1886년 설립된 구세학당 학생들로 1893년 경의 교사와 학생들이다
새문안교회
1887년 조직교회로서는 최초로 한국에 세워진 교회로 정동에서 시작되었다
정동제일교회
한국최초의 감리교회로 1887년 창립되었다.
보구여관
한국 최초의 부인병원으로 미감리회에 의해 1887년 정동에 개설되었다
1890년 한국선교를 시작한 영국 성공회는 서울 정동에 대성당을 설립(1891)하고 로마네스크식 건물을 마련(1926)하여 성공회 선교의 중심이 되었다
1890년대 개화전 제물포항
1891년경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들이 서북지방 순회전도광경이다. 마펫, 게일, 베어드 등의 모습이 보인다
장대현교회
1893년 평양에 살립된 장로교회로 사진의 ㄱ 자 예배당은 1900년 건립된 것이다
1893년부터 시작된 성공회의 강화 선교 결과로 1900년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을 채용한 성당을 건축하였다
1893년 대구에서 시작된 동산병원은 1931년 현대식 건물을 마련하여 의료선교에 큰 공을 남겼다
1898년 러시아 공사관 안에서 암브로시 신부에 의해 교회가 시작되었으나 노일전쟁(1904-5)이후 교세가 악해졌다. 사진은 1896년경 정동의 러시아 공사관 경내를 주고 있다.
1905 평북 의주군 영평교회
사진은 1938년 12월 25일 유년부 졸업생(앞줄)과 함께한 제직들이다. 앞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고봉상 시무전도사이며 여기에 함께 있던 조만용, 조의룡, 박국준이 순교
개척 선교사 호가드(중앙의 말탄 이)의 전도 광경(1912년)이다
1915년 선천에 설립된 고아원으로 주현축,장규명,장인환,김석창 등 교인들이 운영하였다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 김범우의 집이 있던 명래방자리에 1887년부터 10여년에 걸친 공사끝에 완성되었다. 사진은 1920년대의 모습이다.
해주결핵요양원
2세 선교사 홀(S.Hall) 에 의해 설립된 결핵전문 요양원으로 1928년 설립되었다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일본교회(특히 조합교회)는 한국 선교를 시작하였는데 이는 일본의 한국 침략과 병합과 그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사진은 해방전까지 일본인교회로 사용되다가 해방후 덕수교회 예배당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서울 정동에 소재.
1930년대 기독교 학교는 농촌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숭실전문학교에서는 루츠 같은 농업전문가를 초빙하여 농촌개량을 서둘기도 했다.
1931년 기독교조선감리회 제1회 연합연회에서 14명의 여자목사가 배출되었다. 이들은 모두 선교사들이었
한국 최초의 오순절교회의 서빙고교회가 1932년에 창립되었다
한석진 목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설립(1930년) 된 금강산 기독교수양관으로 초교파적 수양관이었다.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당하였는데 사진은 1936년 개최된 제1회 장로교목사 수양회이다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을 전후하여 선교사들이 강제로 본국에 송환
일본에 가선 신사참배를 한 조선교회 교역자 대표들(1943년)
8.15 해방과 함께 출옥한 옥중 성도들이 평양의 주기철 목사 사택에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