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 10. 04:51
온돌...



온돌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
온돌은 한국 고유의 난방법으로 우리 민족의 생활습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온돌은 거의 모든 민가에서 사용한 방식이었다.






한지 제작술 ...



전통적인 방법으로 한지를 제작하고 있는 모습.
한지는 닥나무 등의 섬유를 원료로 만든 우리 고유의 종이로 창호지·조선종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주요 수출품이었다.
이는 품질에 따라 백지(白紙)·장지(壯紙)·각지(角紙) 등으로 나뉜다.

또 용도에 따라 그 질과 호칭이 다른데, 문에 바르면 창호지, 족보·불경·
고서의 영인(影印)에 쓰이면 복사지, 4군자나 화조(花鳥)를 치면 화선지(畵宣紙),
연하장·청첩장 등에 쓰이는 솜털이 일고 이끼가 박힌 것은 태지(苔紙)라고 불렀다.








전통 한선 ...



전통 한선의 모습.
한선은 배 밑바닥이 평평한 '평저선형(平底船形)' 구조를 갖고 있어
다른 나라의 선박과 뚜렷이 구별됐다.
평저선형 구조는 물 속에 잠기는 뱃전의 깊이가 낮아 얕은 수심의 연안과 강을
항해하는데 적합했다.
이같은 구조는 만조 때는 물에 떠 있다가 썰물 때에는 개펄에 그대로 안착할 수 있기 위해 고안됐다.






첨성대 ...



현존하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첨성대.
국보 제31호. 첨성대의 상단부로서 우물정자 모양의 돌은 동서남북의 방위를 가리킨다.
석단 하나하나가 12달, 24절기를 나타낸다고 한다.






도자기 ...



도자기를 제작하고 있는 장인의 모습.
도자기 이외에 옹기도 상고시대부터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때는 와기전(瓦器典)이라 하여 옹기를 굽는 직제까지
두었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도 서울과 지방에 100여 명의 옹기장을 두었다고 한다.






에밀레종 ...



봉덕사 성덕대왕 신종.
한국 최대의 종으로, 에밀레종 또는 봉덕사(奉德寺)에 달았기 때문에 봉덕사종이라고도 한다.
성덕대왕의 아들인 경덕왕(35대)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아버지의 이름을 붙여 만든
종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덕왕은 종의 완성을 끝내 보지 못했고 20여 년이 더 지난 혜공왕(36대) 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종이 완성됐다.

이 에밀레종은 소리의 여운이 유난히 긴 것으로 유명하다.
종을 치면 그 은은한 여운이 끊어질 듯 작아지다가 다시 이어지곤 하는 현상이 1분 이상 지속되며,
특히 가슴을 울리는 저음역의 여운은 3분까지도 이어진다.
이렇듯 반복되는 여운 소리가 '에밀레~ 에밀레~' 하며 마치 어린아이가 어미를 탓하며
우는 소리 같다고 해서 에밀레종이란 별명이 붙었다.







태극선 ...



전통 부채(태극선)를 만들고 있는 모습.
태극선은 바퀴살 모양으로 배열된 약 100여개의 살대 위에 태극문양이 아로새겨진
비단헝겊을 입혀 선면(扇面)을 만들고 사북 장식으로 손잡이를 고정시킨 형태의 부채이다.

오랜 세월동안 양반층에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폭넓게
애용됐고 나라의 상징인 태극 문양이 사용되어 한국적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내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육받는 선비들 ...



개항 이후 근대식 교육을 받고 있는 선비들의 모습.
일제 강점기 이전으로 서울의 한 고등학교 물리시간 풍경이다.
1903년경으로 추정된다.






근대식 학교 ...



개항 이후 종교적 목적으로 입국한 선교사들이 근대식 학교를 다수 세웠다.
어린 소녀들이 이같은 학교에서 수학을 배우고 있다.






서당 ...



서당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
평소에도 선비와 학자들은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는 공자의 말에 따라
독서와 집필활동에 매진했다.





독립신문 제작 ...



독립신문을 제작하고 있는 사람들.
1896년 4월 7일에 서재필(徐載弼)이 창간한 신문으로 한글전용과 띄어쓰기를 단행하여
그 후의 민간신문 제작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신문은 민중계몽과 자주독립사상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초기 의병들 ...



독립운동 초기 의병들의 모습.
근대 한국의 의병은 일제 침략에 대항한 무력 항쟁의 대표적 세력으로 주로 유생,
전직 관료, 해산 군인 등이 지도부로 구성됐고 농민, 하급 군인, 도시 빈민층 등이
그 하부 구성원이었다. .

'1900년 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쉬박사가 본 한양1890년초1  (0) 2007.01.11
제주의 옛모습  (0) 2007.01.11
기독교의 전래  (0) 2007.01.10
단원의 풍속도  (0) 2007.01.10
독립문  (0) 2007.01.09
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