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5. 09:58



고려말 일연 스님 저작으로 알려진 삼국유사는 조선 중종시대인 1512년 경주에서 간행한 목판본인 이른바 ’중종 임신본(中宗 壬申本)’이 완전한 형태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이다. 그 이전에는 언제, 누가, 어디에서 찍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었다. 


다만 빠르면 고려말, 늦어도 조선 초기에는 찍었을 판본이 최근 들어 발견

 낙장 없이 완벽한 상태로, 출판상태로 보아 조선 초기에 간행된 것이 확실한 삼국유사 1책 목판인쇄본 공개.


 1책은 신라ㆍ고구려ㆍ백제ㆍ가야의 역대 왕에 대한 간략한 족보 기술 모음집인 ’왕력편’과 삼국시대 각종 기이한 이야기를 모은 ’기이편(紀異篇)’ 권1과 권2로 구성된다. 전통시대 서적은 단행본 1권으로 엮인 묶음을 책(冊)으로, 그것을 구성하는 각 챕터를 권(卷)으로 일컫는다. 


특히 삼국유사를 구성하는 여러 편 중에서도 오직 왕력편만큼은 유독 글자의 탈락이나 오류가 심한 데다, 중종 임신본 이전으로 올라가는 판본이 발견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손보기 소장본 왕력편은 그 가치가 ’국보급’으로 평가된다. 

예컨대 기존 중종 임신본을 통해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은 죽은 뒤에 받은 이름인 시호가 문정(文貞)이라 했지만 이번 조선초기본에서는 문진(文眞)으로 쓰였다. 신라 진덕여왕 아버지는 국기안(國其安)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자료에서는 국진안(國眞安)으로 드러났다. 

또한 진덕여왕의 어머니 아니부인은 아버지가 기존 자료에는 이름이 ’奴’이며 사후에 ’○○갈문왕(葛文王)으로 추봉되었다고 했지만 이번 자료에서는 기존에 탈락한 갈문왕 이름이 ’만천(滿天)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임신 정덕본에서는 김춘추의 아버지를 ’용춘탁문흥갈문왕’(龍春卓文興葛文王)이라 했지만, 이번 손보기 소장본에는 ’용춘 각간 문흥갈문왕’(龍春角干文興葛文王)이라 했다. 그의 아버지가 생전 이름이 용춘으로 최고 관위는 각간(角干)이었다가 그의 사후에 김춘추가 즉위하면서 문흥갈문왕으로 추봉되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해주고 있다. 

서지학자인 신승운 성균관대 교수는 “귀중한 왕력편 판본을 손보기 선생이 소장하고 계셨다는 사실은 이 분야 전문가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선생이 생전에 공개하지 않아 그 전모를 알 수가 없었다”면서 “이번에 공개한 자료는 임신 정덕본 이전에 나온 유일한 왕력편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고대사 전공인 서영대 인하대 교수는 “왕력편은 왕들의 족보라는 점에서 글자 한 글자 한 글자가 다른 책보다 더없이 중요한데 이번에 조선 초기 판본이 마침내 공개됨으로써 기존에 품은 한국고대사의 의문점 상당수가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보통 판본이 오래일수록 그 책의 원래 모습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이번에 공개된 왕력편은 그런 측면이 많지만 후대 판본에 비해 문제가 있는 구절도 발견된다. 

예컨대 진흥왕의 어머머 지소부인(只召夫人)은 기존 임신 정덕본에서는 ’모량이 영실 각간의 딸’(牟梁里英失角干之女)이라 했지만, 손보기 소장본에는 ’모량리 영실 백구의 딸’(牟梁里英失伯口之女)이라 해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게 돼 있다. 

한편 연세대는 오는 16일 오전 11시30분 본관 2층 소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 자료를 공개할 예정이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Posted by qlstnfp
2012. 9. 29. 22:55

국보 제21호. 높이 10.4m.석가탑(釋迦塔)

.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에서 따 무영탑(無影塔)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 다보탑과 상대하여 위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751년(경덕왕 10년)경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수할 무렵에 세워졌다고 추정하고 있지만, 742년에 완성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이 탑은 고려 초에 일어난 지진 때문에 1024년과 1038년에 중수.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대표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가 있는데 각 부분의 체감비율이 적당하며 간결하다. 상·하 기단의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각각 2개씩 새겨져 있고 다른 조각은 없다. 

탑신을 받치는 갑석은 4매의 돌로 되어 있는데 아래에는 부연(附椽)이 있고, 윗면은 경사가 져 있으며 2단의 탑신 굄이 있다. 탑신부의 옥신석(屋身石)과 옥개석(屋蓋石)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옥신에는 우주가 새겨져 있을 뿐이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5단이며 그 위에는 2단의 옥신받침이 있다. 상륜부는 노반(露盤)·복발(覆鉢)·앙화(仰花)만 남아 있었는데 1973년 실상사백장암3층석탑의 상륜부를 모방해 결실된 부분을 보충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 탑의 특이한 점은 탑 주위에 장방석을 돌려서 형성한 탑구(塔區)에 연꽃무늬를 조각한 팔방금강좌(八方金剛座)가 있는 것과 탑의 기단부를 자연석이 받치고 있는 것 등은 유례가 드문, 주목할 만한 예이다. 

1966년 9월 도굴 사건으로 탑이 훼손되어 

10월 탑을 보수하면서 

2층 탑신 내부에서 무구정광다라니경, 은으로 만든 사리함같은 국보급 문화재가 쏟아져 나왔다. 

무구정광다라니경 (無垢淨光大陀羅尼經) 은 일본이 세계 최고(最古) 목판 인쇄본이라고 주장하던 백만탑다라니경보다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석가탑이 대대적인 해체·보수 작업에 들어갔다. 1000년 만의 본격적 해체인 만큼 이번에는 탑의 밑바닥도 파보게 된다. 다른 신라 석탑처럼 불상이나 귀걸이 팔찌같은 보물이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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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
2012. 9. 11. 22:09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기 전인 19세기 강화도의 군사적 방어 태세를 살펴볼 수 있는 문서가 발견됐다. 


 ‘강화부 부상각진보상각돈대상 각양군기잡물수목(江華府 府上各鎭堡上各墩臺上 各樣軍器雜物數目)’으로, 1854년(철종 5년) 2월13일 강화부 각 진보(포대기지) 및 돈대(포대)의 각종 군기 현황을 강화유수의 책임 아래 정리한 것.


 강화부 전체의 군기 상황뿐 아니라 각 진보 및 돈대 등에 배치된 무기 및 군수 물자 현황 등이 자세히 정리돼 있었다. 화약, 소총, 장총, 활과 화살, 대포인 불랑기 등의 종류별 수량이 적혀 있으며 전등사 등 관할 소재 사찰과 암자의 솥 개수도 파악돼 있었다. 


출처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9111101361&code=9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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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
2011. 5. 11. 13:53
러시아 와 한국은 1884 년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그 후 얼마 안있어 서울의 도심지에 러시아 황제 외교 공사관의 장엄한 건물이 건축되었다. 그 공사관 건물의 위치와 모습 자체는 한국에서의 러시아 역할및 권위와 커다란 영향 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19 세기 말 20 세기 초에 걸쳐 러시아와 조선은 아주 긴밀하고도 밀착된 외교관계를 맺게 된다. 이것은 고종황제가 러시아 대사관에서 1년이상 체류하면서 러시아 대사관의 보호를 받았던 사실(아관파천)만으로도 충분히 알수있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 후 러시아 공관의 지위가 영사관으로 바꿔졌다. 러시아 총영사관 , 그후에 소련 총영사관이 1945 년까지 서울에 있었다.

1950 년에 시작된 한국전쟁(6.25) 기간 동안 주한 러시아 공관 부지에 있었던 건물들이 거의 다 파괴되었다. 서울시민들이 잘 아는 백탑만이 아직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으며 한국내에서의 러시아 역사를 상기 시켜주고 있다. 구 러시아 공관부지는 한국의 역사 문화재로 보존 되어있는것이다








인천 러시아 영사관


인천 러시아 영사관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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