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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2.16 우리나라 프로 선수....
- 2006.12.16 까마귀 고기를 먹었느냐?
- 2006.12.15 으랏차차 여러분!
- 2006.12.15 잡초와 함께 사는 법
'비단 바지 입은 젊은이(紈袴子弟.환고자제)'라는 말은 중국에서 돈 많은 젊은이를 일컫는다. 송대(宋代) 때 처음 사용해 줄곧 돈 있고 힘 있는 집 자녀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여 왔다. 권력이 한데로 뭉치는 왕조시대에 자연스레 나타나 사회를 어지럽혔던 속물들이다.
새 중국이 건립된 뒤에도 이 문제는 없어지지 않았다. 공산당 혁명 원로들의 자제가 거의 예외 없이 거드름을 피우고 나타났다. 부친의 권력을 등에 업고 치부를 했던 이들은 1980년대 '태자당(太子黨)'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전면에 부상해 중국 일반 백성들의 거센 반감을 사기도 했다. 무능하고 환락만 좇는 환고자제의 해악을 뼈저리게 경험한 중국 사회의 자경(自警)의식은 요즘에도 높다.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카타르 도하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은 자괴감에 젖어 있을 것이다. 이른바 돈 많이 버는 스포츠의 대중 스타들, 한국판(版) 환고자제들이 내보이는 형편없는 조락(凋落) 현상 때문이다. 호화진용을 자랑했던 야구는 대만과 일본에 연패했고, 축구는 전쟁을 치르는 이라크에 덜미가 잡혔다.
선수촌 집단 합숙을 두고서는 비인기 종목 선수들과 마찰까지 빚었다니 정말 걱정이다. 스포츠맨으로서의 승부근성은 고사하고 단체의식마저 실종된 것으로 봐야 할까. 하지만 아시아권에서도 맥을 못 추는 우물 안 개구리들의 주머니에 돈을 채워 준 우리의 의식이 진짜 문제다. 앞으로 방송국 스튜디오를 훈련장처럼 찾는 거짓 스타들을 외면하자. 대신 비인기 종목에서 분투하는 진짜 영웅들에게 더 주목해 보자.
중앙일보 유광종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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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차사 본풀이'라는 서사무가(敍事巫歌)에 까마귀가 염라대왕의 심부름꾼으로 나온다. 수명이 적힌 적패지(赤牌旨)를 인간들에게 전하는 일을 한다. 하루는 말을 잡는 광경을 본 까마귀가 고기를 얻어먹을 욕심에 돌담 위에 앉았다. 백정이 말발굽을 던지자 깜짝 놀라 날개 밑에 꽂아둔 적패지를 잃어버렸다. 마을에 도착한 까마귀는 제멋대로 수명을 불렀다. 어른과 아이의 죽는 순서가 뒤집히고, 뒤죽박죽이 됐다. 그래서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까마귀 고기를 먹었느냐'고 묻게 됐다고 한다.
차사 본풀이와 비슷한 설화는 전국에서 발견된다. 함경도의 '짐가제굿', 충북 보은의 '영동이 유래담', 전북의 '흥덕현감 설화'…. 그러니 '까마귀 고기'라는 말이 전국에서 쓰였을 법하다.
까마귀는 오랫동안 우리 조상과 친구로 살아왔다. 그래서 까마귀 고기를 먹지 않아도 잘 잊어버리는지 모르겠다. 괴로운 일을 잊지 않고 곱씹는 건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너무 쉽게 잊어버리면 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된다. 정치판이 대표적이다. 쉽게 달아올랐다가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정치꾼의 장난에 휘둘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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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받는 날을 빼고 나면 일생이 며칠이랴.’
언젠가 중국 고전 번역본 시리즈 중에서 이런 제목을 마주한 때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옛날이나 21세기나, 도(道)의 경지에 올랐거나 일상에 파묻혀 살거나,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의 버거움을 얘기하는 듯해서입니다.
한평생으로 넓힐 것도 없이, 올 한 해 고통 받은 날을 다 빼고 나면 우리에게 온전히 남은 날은 며칠이나 될는지요. 괜스레 발걸음이 빨라지는 12월입니다. 해 놓은 일 없이 또 한 해가 가는구나, 뒤돌아보며 마음이 스산해지는 때입니다.
올 한 해도 다들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마다 할당받은 삶의 무게만으로도 어깨가 휘어지는데, 북핵이니 집값이니 해서 국민 노릇하느라 고생했습니다. 많은 것을 누리고 살면서도 자신과 남을 격려하기는커녕 대놓고 투정하는 지도자를 보면서 참 어처구니없어 하기도 했습니다.
살다 보면 개인이든 나라든 고통과 시련이 닥칠 때 스스로를 단련하고 성숙해지는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겠죠. 개인적인 얘기라 망설였지만, 얼마 전 잠시 병원 신세를 졌을 때 도전을 헤쳐 나가는 용기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병원의 X선 검사실 앞은 오전 6시경이면 늘 북적댑니다. 걸어서, 혹은 보호자와 함께 휠체어를 타고 하나둘 나타난 환자들이 금세 대기실의 50여 개 의자를 채우고도 남습니다. 마치 사이보그처럼 온몸에 주렁주렁 줄을 매단 환자들이 단체 사열이라도 받듯 한자리에 모인 모습을 보니 처음엔 낯설다 못해 서글프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입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오전 6시가 기다려집니다. 몸의 자유를 잃어버린 환자들을 통해 삶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링거에다 코와 배에 매달거나 소변을 배출하는 줄까지 합쳐 예닐곱 개 줄을 매단 이들도 잠시 일어설 힘만 있으면 어떻게든 한 걸음이라도 더 걸어 보려고 갖은 애를 씁니다. 하루라도 빨리 낫기 위해 온 힘을 쥐어짜 몸을 움직여 봅니다. 그러다 보면 줄은 하나씩 줄어들고 휠체어에 앉아서도 고개조차 가누지 못했던 환자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늘 자신이 욕심 부린 일을 성취하지 못했다며 아등바등합니다. 한데 병원에 가 보고서야 많은 사람에겐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삶의 무거움을 견뎌 내는 일 자체가 빛나는 성취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걷고 밥 먹는 사소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눈물겹게 노력하는 일, 부실하고 빈약한 존재 자체를 날마다 보듬고 살아가는 일이 모두 경이롭고 아름답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니 해 놓은 일 없어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에겐 서로 격려와 응원이 필요합니다.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고 하지만 거친 파도가 강한 어부를 만든다고도 하지요. 고만고만한 고뇌와 좌절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 올 한 해 겪은 고통과 시련도 우리를 더 나아지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계 상황에 처한 인간을 탐구한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말대로 ‘처음에는 실패한다. 다시 덤벼 보지만 또다시 실패한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조금씩 나아진다’고 믿으면서요. 그런 점에서 오늘은 한번, 스스로를 위해 또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인생응원가를 외쳐 보면 어떨까요.
으랏차차 여러분!
고미석 문화부장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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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텃밭에는 작물만큼 잡초가 자라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보기엔 영락없이 잡초 밭입니다. 눈곱 반만 한 밭 한 뙈기도 제대로 못 돌보느냐는 핀잔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귓등으로 들은 지도 몇 해가 되어 갑니다.
이 마을로 내려와서 처음 텃밭을 가꾸기 시작할 무렵에는 이 사람도 텃밭에 잡초가 자라는 꼴을 못 봤습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식으로 잡초를 뽑고 또 뽑았습니다. 그 덕분에 한동안은 여느 농부네 밭처럼 깔끔하였답니다. 그러나 여름이 오고 장마철이 지나면서 전세가 서서히 역전이 되어갔습니다. 땡볕 아래서 잡초를 뽑을 때마다 천하에 쓸모없는 것이 왜 이리 목숨이 질기냐고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제풀에 지치고 말았습니다. 제초제 안 치고 비료 안 뿌리기로 작정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잡초란 놈이 꼭 방에 들어와 설치는 파리나 모기처럼 귀찮았습니다. 마당에 불쑥 찾아와 자리를 펴고 앉은 불청객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에게 잡초를 텃밭에서 몰아내는 일은 집 안팎을 단속하고 깨끗이 하는 일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마당 한구석에 있는 텃밭에 잡초가 무성하다, 이건 몇 마지기씩 농사를 짓는 마을 노인들 보기에 민망한 일이었지요.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나고 자라는 잡초의 생명력을 이겨낼 만큼 독한 사람이 못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백기를 펄럭이며 잡초와의 공생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밭일은 대충대충. 잡초가 너무 자랐다 싶을 때만 낫으로 베거나 손으로 대충 뽑아 작물 주위에 놓아두었습니다. 작물에 비료가 되겠다 싶었거든요. 죽으면 썩어서 다른 생명의 양분이 되는 게 자연의 이치,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먹으니까 잡초가 자라는 모습이 부담스러운 대신 고마워졌습니다. 작물 역시 먹고 남는 부분은 밭에 뿌려 잡초의 양분이 되게 하였습니다.
잡초에 마음을 열기 시작하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등기부상으로는 이 사람의 텃밭이 틀림없지만 법적인 효력이 잡초에까지 미칠까요. 인위적으로 구분지어 밭이라 이름 지었어도 그 땅은 본래 잡초가 살아 온 자연의 한 조각일 따름이지요. 잡초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땅에 뛰어들어 자기를 내몰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인간이 가소로웠을 겁니다. 농법이 과학화되면서 잡초도 얼마간 긴장을 하였겠지만요.
요즘 이 사람의 텃밭에서는 잡초와 작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개입이 없으면 잡초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잡초는 악하고 작물은 선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선과 악은 이익에 따른 가치 기준일 뿐이니까요. 잡초가 자라는 텃밭에라야 지렁이도 살고 곤충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잡초는 작물과 함께 먹이사슬의 한 부분을 이루었습니다. 내다팔기 위해 작물을 키우지 않는 이상, 수확에 대한 욕심도 없습니다. 욕심이 있다면 잡초가, 잡초같이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바탕이고 세상을 지탱해 나가는 힘으로 제대로 대접받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진우 소설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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