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18. 22:35
[여적]지도자의 허언(虛言)
김태관 논설위원
  • 임오군란(1882년 6월)이 일어나자 고종은 크게 자책한다. 한달 뒤 그는 사죄의 글을 팔도의 백성들에게 내린다. 요즘 말로 하면 대국민 사과 특별성명인 셈이다. 고종실록 19년 7월20일의 기록이다.

“아, 부덕한 내가 외람되게 왕위에 오른 뒤 정사는 그릇되었고 백성들은 흩어졌으며, 위로는 죄가 쌓이고 몸에는 재앙이 모여들었다. 이 모두가 내탓이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고종은 이렇게 운을 뗀 뒤 자신의 실정을 조목조목 나열한다.

“토목공사를 크게 벌여 백성의 재물을 탕진했으니 나의 죄다. 화폐를 자주 고치고 무고한 사람을 많이 죽인 것도 나의 죄다. 사원을 철폐해 충현한 이를 안 모신 것도 나의 죄이며, 상벌에 절도가 없었으니 이것도 나의 죄다.” 고종의 자책은 이어진다. 사람을 널리 등용하지 않은 것, 대궐을 엄히 단속하지 못한 것, 국고가 비어 시정 상인들이 폐업할 지경에 이른 것, 이웃 나라의 신망을 잃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 것 등등 모두가 ‘나의 죄’다.

두렵고 부끄럽다며 고개를 숙인 고종은 새출발을 다짐한다. “앞으로는 전날의 과오를 교훈으로 삼겠다. 군란의 주동 외에 나머지 무리는 용서해 다 함께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고종의 이런 자책은 결국 허언이 되고 말았다. 정사를 바르게 하기는커녕 군란에 동조한 이들을 추적해 처벌하기에 바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41840405&code=9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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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