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7. 16:28

오감(五感)이 있고

오장육부가 멀쩡한데

사람이 살면서 어찌

갈등이 없다 할 수 있으며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 있으랴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가질 것인지 버릴 것인지

삼킬 것인지 뱉을 것인지

품을 것인지 내칠 것인지

유지할 것인지 끊을 것인지


오정방의 '갈등(葛藤)'의 앞부분이다.


굴신(屈身)의 역사인 아부(Flattery)는

그리스시대에서부터 중세까지는 비난과 조롱거리였지만 르네상스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 경멸의 농도는 점점 옅어진다. 조직사회로 이뤄진 현대에 이르면 아부는 남의 환심을 사려는 치사한 애교쯤으로 치부된다.


아부는 거짓으로 들통나도 벌을 받지 않는다.

‘아부는 나쁘지만 아부 받는 것은 기분 좋다’는 말이다.


아부는 윗사람의 눈에 들기 위한 수단이다. 약간의 비굴을 무릅쓰면 조직에서 빠른 성공으로 가는 처세 요령이기도 하다. ‘권력이 있는 곳에 아부가 있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2000여년 전에 쓰인 <사기>의 ‘영행열전’ 첫머리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아무리 힘들여 농사를 짓더라도 풍년이 든 것만 못하고, 아무리 힘들여 일을 하더라도 임금의 눈에 드는 것만 못하다.”


우둔한 군주에겐 아부가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은유다.

우화 한 토막 소개한다..


어떤 나라의 현자(賢者)가 누더기를 입고 읍내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친구가 이를 발견하고 은근히 나무랐다.

“옷이 그게 뭔가. 자네는 창피하지도 않나?”

그러자 현자가 말했다.

“무슨 소리, 여기는 나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니 괜찮다네.”

다음날이었다. 현자는 자기 마을에서 역시 누더기를 입고 활보하고 있었다. 이를 본 친구가 참지 못하고 또 한 마디 해댔다.

“뭐야, 자네 마을에서도 그런 옷차림으로 다니나?”

현자가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여긴 누구든 나를 다 아니까 괜찮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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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