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10. 15:23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인 1894년 12월3일 뉴욕의 이브닝 월드는 ‘세기의 인터뷰’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은둔의 왕국(Hermit Kingdom)’ 조선의 왕궁에 들어가 고종(1852∼1919)을 알현하고 인터뷰한 것이다.

고종만이 아니다. 고종의 아버지인 대원군(1820∼1898)과도 만나 별도의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어’는 이브닝 월드의 ‘세계특파원(world correspondent)’ 제임스 크레블맨.

 이 기사의 톱 제목은 ‘조선의 왕이 말하다(Korea's King Talks)’이다.








그는 고종을 인터뷰하는 내내 왕의 뒤에서 병풍 너머로 바라보던 명성황후(1851∼1895)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묘사했다. 또한 고종 옆에 왕세자(crown price)가 배석했다고 기술했다. 당시 20살의 이척(순종 1874∼1926)으로 추정된다.

이 기사엔 고종과 왕자, 명성황후, 대원군의 이미지와 고종을 알현한 근정전과 일본 공사관, 그리고 자신과 일본인 통역관 및 조선인 하인을 그린 것 등 총 7개의 삽화가 함께 게재됐다.

이브닝 월드의 보도는 고종과 실질적인 지배자 대원군의 흥미진진한 인터뷰 내용은 물론, 경복궁 등 서울과 왕궁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고 궁중의 음모와 암투, 일본과 중국, 러시아, 미국의 4대 강국 틈바구니에 놓인 조선의 상황을 기자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기사는 톱 제목 아래 모두 7개의 부제들이 달려 있다.

 ‘세계특파원, 호소 요청받아’

 ‘미국의 도움 모색’,

 ‘미국민에게 직접 호소’, 

‘동방(조선)의 쓰라린 고통’, ‘미국은 (조선의)첫 조약국, 보호 기대’, 

‘고적함으로 뒤덮인 서울’,

 ‘은둔의 왕국, 전쟁과 음모로 유린되고 위협받아’ .

제목들만 일별해도 당시 조선이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국가적인 존망의 위기 속에 직면해 있음이 잘 드러난다.


삽화 속의 크레블맨 기자는 덥수룩한 수염의 당당한 체구로 모자와 부츠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으로 한국에 있는 유일한 미국인 특파원이라고 소개됐다. 함께 있는 일본옷 차림의 사나이는 통역관, 삿갓을 쓴 흰 옷 차림은 조선인 하인으로 명시했다.

기사의 첫머리는 

“왕국을 뒤덮은 위기와 생명을 위협받는 와중에 조선의 왕은 오늘 미국 국민들에게 도움을 직접 호소했다”고 전한다. 


고종은 미국과 조선 간에 (1882년)조인한 우호협약에 따라 미국이 전쟁 등의 위기에 처한 조선을 보호해 주기로 한 내용을 환기시켰다. 그는 “조선은 더 이상 은둔의 나라가 아니다. 개화로 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크레블맨 특파원은 조선이 3000년 이상 독립된 나라로 있었다고 미국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그가 고종을 알현할 때 헨리 알렌 미대표단 단장과 동행했으며 “멋진 가마를 타고 입궐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그는 “궁 안에는 4000∼500채의 주택들이 방사형으로 위치했고 3000명 정도 살고 있다”면서 “적청황백색의 지붕과 연못, 커다란 담장으로 둘러싸인 곳을 지났다. 엄청나게 큰 홀(근정전)의 700∼800년은 된 듯한 나무로 된 문을 통해 들어가자 시종들에 둘러싸인 왕을 볼 수 있었다”고 묘사했다.

“유럽식 의자에 앉은 한국의 통치자와 대면했을 때 그는 행복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불안한 듯 손을 허리띠에 모은 작고 갸날픈 사나이는 친절한 입 모양과 여성처럼 깊고 그윽한 눈을 갖고 있었다. 그는 악수를 하지 않았다. 왕의 몸에 손을 대면 죽음이 선언된다. 사람들은 길에서 그를 바라보는 것도 안 된다.”

존엄한 왕은 그러나 미국 기자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겠다는듯 절박한 호소를 이어나갔다. “짐은 물론, 백성들도 완전히 독립된 문명국의 일원으로 나갈 것이오. 미국과의 우정을 믿고 있소. 당신의 나라는 항상 우리와 우정을 나누기로 약속했소. 미국에 대한 신뢰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겠소.”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22대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두 번째 임기 2년차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조선에 큰 관심이 없었고 외교를 책임진 그레샴 국무장관은 일본에 우호적이었다.

고종이 미국의 기자를 만나 미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식을 택한 것은 일종의 정공법이었다. 국민이 주인인 미국식 민주주의를 고종이나 측근들이 상당 부분 이해하고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크레블맨 특파원은 고종에게 “미국은 자주권을 가진 나라를 간섭하지 않는 정책을 갖고 있다. 그런 미국이 어떻게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냐?”고 돌발적인 질문도 던졌다.


“왕은 당황한 듯 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아서 속삭이는것 같았다. 보필하는 신하들 앞에서 행동이 부자유스러워 보였다. 마침내 그의 입에선 ‘미국이 약간의 군인들만 보내서 우리 왕궁만 지켜줘도 상황은 바뀔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미국의 군인들을 원한다고?(Want a Yankee Guard?) 왕의 요청에서 일본이 얼마나 그에게 압박을 가하는지 알 수 있었다.”

고종은 “이미 미국의 장관에게도 말을 전했다. 우리는 미국이 조선에 진심어린 우정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실질적인 희망의 증거들을 기대한다. 미국 대통령이 조선의 독립을 보호해주길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인터뷰하면서 크레블맨 특파원은 자신을 응시하는 여인의 시선을 느꼈다. 명성황후였다.

“왕이 이야기하는 동안 반짝이는 눈을 한 왕비가 병풍 뒤에 난 공간 사이로 듣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로 그녀였다. 10년 전 적들을 속이기 위해 젖가슴을 드러낸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이렇게 소리쳤다. ‘보아라. 조선의 왕비가 이런 짓을 할 수 있느냐? 그러느니 차라리 죽을 것이다’라고 속였다.”


크레블맨 특파원이 거론한 이 에피소드는 명성황후가 대원군과 허욱의 임오군란 때에 암살 음모를 알아채고, 변장한 채 궁궐을 벗어나 여주에서 한동안 은신한 사건을 시사한다. 당시 명성황후는 발각될 위기에서 홍계훈의 누이로 연기를 하여 도성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때 명성황후가 왕비의 신분을 속이기 위해 평민 여성처럼 가슴을 드러내 보이는 행동을 했다는 것은 크레블맨 특파원의 기사를 통해 처음 등장한 내용이다.


크레블맨 특파원은 “왕비는 위험에 처한 요즘 왕을 자기 눈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녀는 대원군과 그의 일파들이 왕을 퇴위시키고 손자를 대신 올리려 한다고 생각한다. 왕세자는 유럽의 신사와도 같은 똑똑한 청년이었다”고 덧붙였다.

왕과의 알현을 마치고 나온 크레블맨 특파원은 자신을 기다리던 또 한 명의 통치자를 만난다. 회색 지붕 별채에서 회동한 대원군 역시 미국 특파원의 힘을 알고 있었다. 조선의 실질적인 군주인 그는 미국 언론을 통해 자신이 섭정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려 애썼다.

크레블맨 특파원은 대원군이 7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트럼펫처럼 우렁찼고 웃음도 호탕했다고 묘사했다.

“조선은 세계에 문을 열 준비가 되어 있소. 더 이상 외국인에게 빗장을 걸지 않을 거요. 다만 이변이 너무 급격하면 혼란이 생기지요. 수천 년 간 유지한 문화와 관습은 하루에 바뀔 수 없소. 변화는 점진적이어야 하고 백성들이 질서를 회복하고 법령을 준수하도록 하는 게 우리의 임무요.”

크레블맨 특파원은 대원군이 중간중간 농담을 하는 모습에서 “저 사람이 30년 전 서양의 야만인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무고한 기독교인들 수백 명의 목을 베었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대원군이 “일본 정부가 자신에게 선물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시계를 보여주며 값이 얼마나 될 것 같냐고 묻기도 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고종은 크레블맨 특파원 일행이 궁을 빠져나올 때 사람을 보내 “미국의 우정을 믿는다. 꼭 도와달라”는 전갈을 다시 한 번 보내왔다.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1009_0013220333&cID=10104&pID=10100

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