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15. 14:44
[판]조조는 왜 ‘적벽대전’에서 패했나
김태훈|팝칼럼니스트
“나는 당신과 생각이 다르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당신이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는다면, 내가 대신 싸워주겠다.”

사상가 볼테르의 이야기다.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논쟁은 허락하되, 다수 혹은 권력에 의한 침묵의 강요를 거부하는 민주주의의 신념이 담겨 있는 철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18세기 프랑스의 한 사상가가 남겨 놓은 이 이야기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선 그다지 유효한 것 같지 않다.

미네르바의 구속은 이 나라가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바로미터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의 표현처럼 대한민국은 정치적 비판에 대한 관용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 인터넷 논객의 구속은 민주주의와 그 근간을 이루는 다양한 논쟁에 대한 현 정부의 태도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이미 ‘최진실법’이란 용어를 사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철학을 드러낸 바 있는 여당과 정부는 미네르바 사건을 통해 기어이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야 말았다.

백성의 지지없이 힘에만 의존

허위사실 유포가 미네르바의 구속 근거이다. 인터넷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아마추어 경제 전문가의 글이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글 몇 편으로 휘청거린다는 것은 임기 5년을 보장받은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신뢰가 미네르바라는 정체도 모호했던 한 논객의 주장만큼도 설득력을 지니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개봉을 앞둔 영화가 한 편 있다.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 2>. 나관중의 소설을 원본으로 하고 있는 영화다. 군사적으로 절대 열세이던 유비와 손권이 조조의 백만 대군을 상대로 혁혁한 전과를 올렸던 <삼국지>의 사실상 하이라이트이다. 제갈공명과 방통, 주유라는 당대 최고의 모사들이 등장해 현란한 지략을 펼쳐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외적으로 드러난 부분일 뿐이다. 극단적인 실용정책을 추진해 오직 군사적 우위로 전쟁에 나섰던 조조를 상대로 백성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유비와 손권이 어떻게 승리를 얻어냈는가 보여주는 일화이다.

장판교를 건너기 전 두 명의 아내를 잃으면서도 우직하리만큼 백성들의 피난 행렬과 함께 했던 유비의 진심은 언제나 그에 대한 무한신뢰를 이끌어냈고,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반대파들을 설득하며 손권이 전쟁에 나설 수 있었던 것 역시 선대부터 강동에서 선정을 베풀며 쌓았던 백성들의 전폭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현재의 경제위기 속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증시의 폭락이나 실업의 문제가 아니다. 난관을 헤쳐나가는 조타수의 역할을 해야 할 정부와 여당이 심각하다는 표현을 사용해야 될 정도로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의 결과를 근거로 들 필요조차 없다. 앞서 거론했듯 미네르바의 구속을 통해 이미 스스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네르바 사태 ‘신뢰 상실’ 탓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갈공명과 주유의 현란한 진법을 담은 정책이 아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쟁터에 국민들이 기꺼이 자진해 동참할 수 있는 지지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설득하는 진심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때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민주주의가 강한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인다. 조조에게도 제갈공명과 주유 못지않은 수많은 모사들이 있었지만, 왜 적벽대전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 곰곰이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김태훈|팝칼럼니스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41753045&code=990000에서 퍼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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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