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1910'에 해당되는 글 117건
- 2007.01.10 청일전쟁(삽화)
- 2007.01.10 신미양요
- 2007.01.10 1908~1910년대 우리 모습 - 내쇼널지오그래픽誌에서
- 2007.01.10 100년전
* 이 화보는 프랑스의 르 몽드 일뤼스트레(1894)에 실린 것으로 평양 전투 후 의주로를 따라 패주하는 청군을 뒤쫓아 북상하는 일본군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주의를 끄는 것은 노변에 앉거나 서서 이들 모습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처량한 모습이다. 상체를 벗은 채 발을 뻗고 있는 소년, 또 엄마의 치마를 붙들고 벌거벗은 채 서 있는 아기의 모습이 일본군의 구둣발과 대조되어 가슴에 와닿는다. |
* 이 그림은 영국 [그래픽]지 1895년 3월 9일자에 실린 그림으로, 이 잡지 종군 기자이자 화가였던 후리프가 청일전쟁 당시 조선에서 목격한 장면을 스케치한 것이다. 그는 이 그림과 함께 기사를 통해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 군인들이 조선 백성에게 저지른 각종 만행에 대해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힘 없고 불운한 조선인들에 대한 청나라의 태도는 대단히 고압적이었다. 그들은 조선인들을 마치 정복국의 주민을 대하듯 위협하고 있었다. 특히 청일전쟁 개전 초기에는 무지비한 강간과 약탈을 자행하였다..... 당시 청군의 병참부는 조직 등 모든 것이 매우 낙후되어 병사들로 하여금 조선 주민들로부터 식량 등 필요한 물자를 자체 조달토록 하였다. 이를 거부하거나 반항하는 소유주들은 즉시 총살하는 등 무지막지하게 다루었다. 삽화에서 보듯이 그들의 약탈에 반항하는 소 주인을 무참히 총으로 쏘는 장면은 당시의 참혹했던 현장을 일깨워준다...... 당시 청군들은 그들의 일상 양식인 쌀, 배추 등을 현지에서 조달하고 요리하는데 매우 숙달되어 있었다....청군들은 오합지졸이었고 기강도 해이했으며 전쟁에 대한 관심도 부족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일본에 대한 적개심은 증폭했으나 그들이 전투에서 보여준 전투력을 보잘 것 없었다. " |
* 이 삽화는 청일전쟁 당시 평양 감영에서 청군이 일본군 포로들을 심문하고 처형하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러일전쟁 중 러시아 측에 정보를 제공하였다하여 일본군이 한국인을 체포하여 총살형을 집행하고 잇다. 나무에 묶인 한국인을 향해 여섯명의 군인이 총구를 겨누었고 장교가 지휘하고 있다. 뒤 편에 갓쓰고 두루마기 입은 한국인들이 서 있다. 이 충격적인 장면은 일본인 종군 화가가 스케치한 것을 보고 스튜어트(Allan Stewart)가 그렸다. |
* 지볼트가 그린 그림이다. 지볼트는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독일인 의사로 1823년부터 1829년까지 6년간 일본에 머물면서 일본 연구에 심취했다. 이 과정에서 1823년 3월 조난으로 나가시키에 체류 중이던 조선인 어부와 상인들을 만나 조선에 관한 지식을 수집하였다. 이 삽화는 수용소 내에 모여있는 조선인들의 모습을 담았다. 커다란 검은 갓과 겨울용 난모를 쓴 조선인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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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고종 8) 미국이 1866년의 제너럴셔먼호(號) 사건을 빌미로 조선을 개항시키려고 무력 침략한 사건.
1871년 5-6월. 미국 함선에 승선한 한 한국인. 빈 맥주병과 미국 신문인 [Every saturday] 한 부를 들고 있다. 사진 설명으로 보아 신미양요 당시 포로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 사진은 강화도를 침공했던 군함 중 한척인 콜도라도호의 해군 제독과 수행원들. 제복으로 미루어 중앙에 앉은 사람이 로저스 제독으로 추측되며, 책상 위에 펼쳐 놓은 종이는 지도이고, 장소는 선상이다.
로저스 미 해군 제독과 수행원들
로저스의 작전회의. 1871년 5월. 두 명의 중국인이 보이는데 이들은 아마 안내자나 통역관일 것이다.
초지진에 상륙한 미 해병대. 뒤에 이들은 광성진에서 조선군과 백병전을 벌인다.
초지진 포대를 점령한 미 해병. 초지진을 점령한 부대는 킴벌레이 중령 이하 장병들이며 그 수는 약 450명이었다
덕진진을 점령한 미군들. 1871년 6월 2일
1871년 6월 2일. 광성보에서 결사 항전을 하다 전사한 조선군.
"조선군은 용감했다. 그들은 항복 같은 건 아예 몰랐다. 무기를 잃은 자들은 돌과 흙을 집어 던졌다. 전세가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되자 살아남은 조선군 1백여 명은 포대 언덕을 내려가 한강물에 투신 자살했고 일부는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앨버트 가스텔)
"남북전쟁때에도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포화와 총알이 쏟아진 적은 없었다." (블레이크 중령)
"이 전투는 동양에서 미국 해군의 위신을 손상시키고 외교의 실책을 폭로한 최고의 사건이다" (미 국무장관 포스터)
"서울에 있는 미국인 학교에서는 반드시 이 전적지에 수학여행 오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 사는 미국인이나 여행자는 반드시 이곳을 찾아보고 그들 조상을 추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규태의 [역사산책] 중)
옥쇄한 조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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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들은 1910년 내쇼날지오그래픽지 11월호에 실린
William W. Chapin이 쓴 기사 'Glimpses of Korea and China'
에서 옮긴 당시 사진들입니다.
1910년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서울 여인네들
1910년 서울의 짐꾼들
1910년대 서울 주민들
1910년의 조선 승려들
1910년대 서울 신사들
1910년대일거리를 기다리는 짐꾼들 - 서울
가금류 행상인
지게에 돼지를 지고 팔러 가는 사람들
떡 만드는 사람들
소에 싣고 팔기 위해 기다리는 목재
목재를 나르는 소
볏짚으로 만든 우의 그리고 삿갓
빨래하러 가는 아낙과 아이
상류층 부인을 태운 가마
1910년대의 상여
옹기를 진 사람
지게로 옹기를 나르는 사람
일하는 부녀자들
일하는 조선인들의 모습
장작 팔러 나온 사람들
젓을 물린 아낙들
짐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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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들은 1908년 7월호 National Geographic誌에 실린
'Notes and scenes from Korea' 기사 중의사진을 옮긴 것임.
한문 공부를 위해서당에 모인 서동들
영변 약산의 정상-멀리서 이름을 바위에 새기기 위해 몰려 온 곳으로 소개 - 사진:Chas E. Morris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를 당한 고종의 조카와 두 딸
물지게로 물 퍼 나르는 사람
돼지 팔러 가는 사람
길 옆의 칠성당-1908년 평양부근- 사진: J.Z Moore
양반댁 마나님과 가마꾼
상류층 부인과 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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