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26. 21:59

Underwood of Korea

Lillias H. Underwood, M.D.

Fleming H. Revell Company


1918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Horace Grant Underwood, 1859.7.19~1916.10.12]


한국명 원두우(元杜尤).

언더우드는 1859년 7월 1일 영국 런던에서 출생하고 13세 되던 때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1881년 뉴욕 대학을 졸업하고 뉴저지 주에 있는 뉴 브른스위크 신학교에 입학하여 1884년 동 신학교를 졸업하였다. 이 신학교는 미국 화란계 개혁교회에서 경영하는 학교로 일본 개척 선교사 페어벡 등 유명한 선교사들을 배출한 신학교다.


1885년 H.G.아펜젤러 목사와 함께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가 되어 4월 5일 제물포항에 도착하였습니다.

한국에 와서 광혜원(廣惠院)에서 물리·화학을 가르쳤다.

1886년에 한국의 첫 고아원을 세웠고, 이어 고아학교를 창설. 이 학교가 발전하여 서울의 경신고등학교가. 1887년 9월 27일, 집. 사랑채에서 14 명이 참석하여 첫 예배를 드리는데 이 교회가 새문안 교회의 첫 예배. 서상륜과 백홍준이 그 교회 첫 장로가 되고,

총각 선교사 언더우드는 28세가 되던 해 자기 보다 8 살 연상인 릴리아스 홀톤과 결혼.

1889년에는 기독교서회(基督敎書會)를 창설. 성서번역위원회를 조직, 그 회장 등을 역임하며 성서의 번역사업을 주관하는 한편, 1890년에 《한영사전》 《영한사전》을 출판하고, 1897년에는 주간지 《그리스도신문》도 창간하였다.


1900년 기독청년회(YMCA)를 조직하였으며, 1915년에는 경신학교(儆新學校)에 대학부를 개설, 연희전문학교로 발전시켰다. 1916년 신병으로 귀국, 애틀랜틱시티에서 죽었다. 한국 개화기에 종교·정치·교육·문화 등 여러 분야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그는 한국에서 31년간 사역을 하면서, 종교, 교육, 문예, 자선 등 다방면에 걸친 봉사를 하다가 발진티푸스 병이 악화되어 1916년 4월 요양차 미국으로 떠나게 되는데,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뜨게 됩니다.


H.G. Underwood의 1916년 逝去후 婦人 Lillias H. Underwood 이 재입국하여 1918년 醫療 宣敎활동 하면서 쓴 Horace Grant Underwood 傳記 이다. 29년 結婚 생활을 토대로 文學적 소지를 살려 쓴 정확한 傳記 이다.

Yonsei University Press 에서 1983년 A Series of Reprints of Western Books on Korea로

出販 되었다.

온라인http://j.mp/ey4A7E 에서 책 모두를 읽을 수 있다.








徐相崙 장로 가족이다

Severance 병원, 좌상에 明洞 聖堂이 보인다.

세부란스 병원, 우편에 南大門



國內 최초 정시그로 洗禮 바든 [노춘경],
Dr. Allen 語學 선생으로 HGU에게 세례 밧따.


퍼 온곳 http://j.mp/fDARIi

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