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트리(Çavitri)와 죽음의 신 야마
고대인도 서사시 《마하바라타》제3권 277∼283장에나오는 이야기의 하나.
사비타르(Savitar)라고도 한다.
태양이 만물을 비추어 그 성장을 북돋우는 작용을 신격화한 신으로, ‘자극, 고무하는 자’라는 뜻의 이름이다.
온몸이 금빛으로 빛나는 그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 악마와 병고와 죄악을 떨쳐내어 행운 ·장수와 지혜를 준다고 믿어졌다.
“우리는 사비트리 신의 드높은 영광을 생각하나니, 우리의 생각을 복돋우어 주소서”라는 《가야트리 찬가(讚歌)》는 《리그 베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찬가로서, 지금도 브라만교 신자는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왼다.
《아타르바 베다》 이후는 수리야가 수많은 태양신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기 때문에, 태양신으로서의 성격으로부터 점차 멀어져 단순히 자극을 주는 신에 머물렀다.
2대 서사시 시대부터 인도 신화에 세계창조신으로 등장하는 중요한 신인 브라마[梵天]의 제전을 사비트리제(祭)라고 한다.
아쉬와파티 왕과 왕비 사이에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다가 뒤늦게 예쁜 공주를 낳았다.
그들은 태양의 신인 사비타르가 기도를 들어주어 아이를 얻었다고 생각하여 공주의 이름을 사비트리라 지었다. 사비트리는 매우 사랑스럽고 아름다웠으며, 현명하고 지혜롭게 자라났다.
공주가 성장함에 따라 왕과 왕비는 그녀의 결혼 상대자로 어울리는 훌륭한 왕자를 찾지 못해 걱정스러웠다. 더구나 공주는 신랑감의 외모나 부와 권력에는 조금의 관심조차도 갖고 있지 않았다.
어느날 왕의 친구 나라다는 세상물정도 익히고, 마음에 맞는 신랑감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 공주를 성밖으로 여행을 보내는 것이 어떠냐고 왕에게 권유하였다. 왕도 그럴 듯하게 생각하여 공주는 시녀들과 함께 성 밖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공주는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고, 그들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성 안에서는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공주는 숲속을 지나다가 마차 커튼 사이로 남루한 옷차림의 한 청년을 보게 되었는데, 그를 보는 순간 그가 바로 자신의 결혼 상대자임을 알았다.
그 청년의 이름은 사트야반으로, 큰 왕국을 다스렸던 다이유 마타세나 왕의 아들이지만 왕의 실정으로 인해 이웃 나라로부터 왕국이 점령당해 지금은 이 숲속으로 도망쳐 그의 늙으신 부모를 모시고 나뭇꾼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사비트리는 여기서 여행을 끝내고 궁궐로 돌아와 부모님께 사트야반과 결혼하리라 결심한 것을 말씀드렸다. 왕과 왕비는 유랑민이 된 왕족에게 자신들의 소중한 딸을 시집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주의 마음을 돌리려 하였으나 공주의 대답은 늘 한결 같았다.
"저는 이미 그를 선택했고, 이미 제 마음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왕은 더 이상 공주를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매우 걱정스러웠지만 결혼을 허락하게 되었다. 그래서 점성가와 예언자들을 불러 사트야반의 운세를 점쳐보게 하였는데 불행히도 사트야반은 앞으로 1년 밖에는 살 수 없는 운세를 지니고 있었다. 왕은 사비트리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포기하기를 권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비트리는 사트야반과 결혼하겠다는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왕은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승낙했고 마침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사비트리는 숲 속의 오두막집으로 떠났고 이전과는 정반대의 생활 속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사트야반은 사비트리가 궁궐에서의 화려하고 편안한 생활에서 벗어나 시종도 없이 숲 속의 힘든 일들을 해나갈 수 있을지 매우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사비트리는 무슨 일이든지 즐거운 마음으로 잘 해나갔으며 그녀로 인해 가족 모두 사랑스럽고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사비트리는 점성가들이 예언한 남편의 죽음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데 정성을 들였다. 그녀는 기도를 통해 죽음마저도 뛰어 넘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날 사비트리는 부모님께 기도를 마무리할 3일 동안의 고행을 허락 받아, 숲 속에서 음식은 물론 물도 마시지 않고 결가부좌한 채로 기도를 올렸다. 3일을 보낸 후 오늘이 바로 남편의 죽음에 대한 예언이 실현될 날이라는 것을 알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숲으로 떠날 준비를 하자 사비트리도 함께 갈 것을 청하고 부모님의 양해를 구했다.
숲에 도착해 남편은 나무를 베고 사비트리는 풀밭에 앉아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는데, 사방이 어두워지더니 어렴풋한 물체가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남편이 힘없이 쓰러졌고 곧 숨이 멈추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볼 수 없었지만 오랜 명상과 기도로 그녀의 눈엔 보이는 물체의 형상은 바로 진실과 죽음의 신 야마였다.
야마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 저승으로 데려가는 밧줄을 사트야반의 목에 걸었다. 사비트리가 막으려 하였으나 야마는 남편과의 이별을 고하고 남편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이승과 저승을 구분하는 다리를 지나 저승의 성안으로 들어갔을 때 야수들이 맹렬히 짖는 것을 듣고 뒤돌아보니 사비트리가 서 있는 것이었다. 남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사비트리에게 삶과 죽음 사이에는 결코 뛰어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으며, 죽음은 모든 것을 떠나서 함께 갈 수 없다고 야마는 냉정히 말했다.
그러나 사비트리는 "당신을 따라 오는 동안 어떠한 벽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죽음도 삶의 연장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라고 말하며,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야마에게 그가 자연의 섭리 중 어떤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며 자신은 결코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야마는 사비트리가 자신의 무서운 외모보다도 깊숙한 곳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잠시 마음의 동요가 일었으나 단호히 잘라 말하고 대신에 사트야반의 목숨을 제외하고 한가지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그녀는 시아버지의 시력을 되찾게 해달라고 소원했다. 야마는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가벼운 발자국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사비트리가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야마는 인간들이 죽음을 마음대로 조절한다면 자연의 질서는 파괴될 것이라고 말하며 이번에도 소원을 들어주고 되돌려 보내기로 하였다. 그녀는 두번째로 시부모님의 잃었던 왕국과 부를 되찾게 해달라고 빌었다. 소원을 들어준 야마는 사트야반을 황소의 등에 매단 채 다시 길을 떠났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사비트리가 여전히 따라오고 있는 것을 알고는 이번에는 송곳같은 돌과 가시가 있는 곳으로 유인했다. 사비트리의 발에서는 피가 나고 폭풍우가 몰아쳤으나 그녀는 어떤 고통도 참아내며 야마의 뒤를 따라왔다. 이제 야마도 지쳐 한가지 소원을 더 들어주겠노라고 제안하며 제발 돌아가 달라고 얘기하자 그녀는 친정 아버님께 대를 이을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소원했다.
야마는 이 사랑스러운 여인이 자신을 위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한 소원만을 부탁하자 더욱 갸륵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기에 이번에는 온갖 무섭고 고통스러운 곳을 보여주며 돌아갈 것을 권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떠한 것에도 변함이 없이 남편을 떠나 살 수 없다고 완강히 말하는 것이었다. 한참을 생각한 후에 이번에는 여인에게 가장 큰 행복인 아이를 선물로 주겠다고 하자 사비트리는 "사트야반 없이 어떻게 아이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아이의 아버지는 당연하 사트야반이어야 합니다." 라고 웃으며 말하고는 남편의 목에서 밧줄을 풀어 줄 것을 청했다.
야마는 그 순간 한 여인의 사랑의 힘 앞에 무릎을 꿇고는 생전 처음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그의 눈가엔 사랑과 자비의 눈물이 고였고 사트야반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주었다. 사비트리는 이렇게 해서 남편을 죽음에서 구해냈고, 야마는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엔 사비트리의 밝은 미소와 진실된 사랑이 항상 함께 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사비트리는 모든 소원이 이루어 진 것을 알았다. 그 이후로 사비트리는 모든 것들이 평화롭고 행복한 날들이었으며,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야마가 그들을 데리러 왔을 때 조용히 웃으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옛날의 그 저승길을 다시 걸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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