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15. 17:02

카르네아데스의 판자’(Plank of Carneades)


난파선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카르네아데스는 작은 판자 조각에 기대어 겨우 바다 위에 떠 있는데, 의지할 곳 없이 허우적대던 한 남자가 여기 함께 매달린다. 두 사람이 매달리기엔 턱없이 작은 판자였기 때문에 카르네아데스는 둘 다 빠져 죽을까 염려해서 그 남자를 밀어낸다. 이 경우에 카르네아데스는 살인자로 비난받아야 하는가?


기원전 2세기경의 스토아파 철학자 카르네아데스가 만들어 낸 이 사고 실험은 훗날 영국 법정에서 실제로 구현된다. 1884년 더들리와 스테픈스 사건(The Queen v. Dudley and Stephens)은 망망대해에서 살아남기 위해 잡무원이었던 고아 리처드 파커를 살해하고 먹어버린 난파선 미뇨넷호의 세 선원에 대한 재판이었다. 한 명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생사의 기로에서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파커를 죽인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당시 법정은 살인과 식인에 대해 일단 유죄를 선고했으나 선원들이 처했던 절박했던 상황을 감안, 특별사면으로 풀어준다. 법과 규율 이전에 생존을 추구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요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에서다. 당장 내 목숨 구하기가 급한 판에 체면이나 법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절체절명의 위급한 상황에서 품위를 지키거나 거룩한 희생정신을 발휘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그야말로 허공에 뜬구름 잡는 소리일 것이다. 상황이 그러니 도리가 없다고 할 수밖에.

그런데 문제는 미뇨넷호가 겪었던 급박한 상황이 어느덧 우리의 일상으로 운위되는데 있는 듯하다.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6945&yy=2017


http://wikivisually.com/wiki/Plank_of_Carneades

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