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밑에서
아이가 울고 있다.
아이가 흘리는 눈물 속에
할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얼마나한 사람은 죽어서 못 넘었다
코리아의 보릿고개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미터…
황금찬은 ‘보릿고개’가 에베레스트보다도 높다고 했다.
맨 먼저 보이는 것은 세조실록 11권 4년(1458) 2월 7일의 춘기(春饑)인데 “봄의 가난한 때”라는 뜻입니다. 또 명종 11권, 6년(1551) 1월 18일의 “궁춘(窮春)”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 "궁춘‘이 가장 많이 나옵니다. 그밖에 명종 32권, 21년(1566) 2월 23일의 “춘빈(春貧)”, 현종 5권, 3년(1662) 3월 14일의 “춘기(春飢)”, 숙종 8권, 5년(1679) 3월 6일의 “춘기근(春飢饉)”, 숙종 58권, 42년(1716) 8월 8일의 "춘궁(春窮)", 고종 3권, 3년(1866) 5년) 3월 26일의 "궁절(窮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특히 “보릿고개”라는 이름으로 딱 들어맞는 “맥령(麥嶺)"은 정조 12권, 5년(1781) 11월 29일 등 정조 때만 세 번 나옵니다. 또한, 일제강점기 기록에도 보이는데 1931년 6월 7일 자 동아일보의 “300여 호 화전민 보리고개를 못 넘어 죽을지경"이라는 기사가 그것입니다.
따라서 ”보릿고개“는 50~60년대에 생기거나 그때 처음 불린 것이 아니라 이미 조선시대 부터 쓰이던 말인 '맥령'을 우리말 '보릿고개'로 바꾼 것입니다. 어떠세요? '맥령'보다는 '보릿고개'가 훨씬 뜻이 분명하고 이해가 쉽지 않나요? 그나저나 살이 쪄서 살빼기가 이야깃거리인 요즘에도 여전히 굶는 사람이 있다는 기사가 보이는데 굶는 이들이 어서 사라지고 '보릿고개'란 말이 옛말로만 남게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1970년대 초반까지도 쌀은 물론 보리와 밀가루도 부족해
너나없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식량안보의 적(敵)’ 쥐 잡기 운동도 벌였던 쌀은
80년대부터 남아돌기 시작했다.
외국 쌀까지 들어오면서 갈수록 재고가 불었고
정부는 이제 남는 쌀 처리에 고민이 많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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