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이 신의 존재와 구원의 문제를 다룬 대표작이다.
14세기 후반, 성지 탈환과 악에 대한 심판을 명분으로 전개된 십자군 원정이 피와 죽음만을 남기고 끝날 무렵이었다. 신의 부름이라고 생각해 나섰던 원정길이었지만, 10년간의 맹목적인 살육 속에서 신의 존재와 구원에 대한 주인공 블로크의 의문은 깊어졌다.
주인공 블로크 앞에 ‘죽음’이란 이름의 사자가 나타난다.
그는 신을 확인할 시간이 필요하다 요청했고‘죽음’은 선선히 집행을 유예했다.
어차피 죽을 텐데…. 돌아온 고향은 흑사병이 휩쓸고 있었다. 온통 죽음뿐이었다. 교회는 악마 탓으로 돌리며 마녀사냥에 나섰다. 그러나 마녀로 몰려 화형을 기다리는 무죄한 소녀 곁에도, 신의 징벌을 앞세워 협박을 일삼는 근본주의 성직자 집단 곁에도 신은 없었다. 신의 침묵에 고통스러워하던 블로크는 결국 확인을 포기한다. 그리고 ‘죽음’이 이끄는 대로 미련없이 세상을 떠난다.
존재의 부조리나 한계상황 앞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욥의 경험을 기억하며 이렇게 묻는다.
왜 무고한 저에게 고통을 주시는가. 고통 속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당신의 뜻은 무엇인가. 이렇게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간절히 호소한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구원의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숨막힐 듯한 침묵만 계속된다.
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침묵해 왔다.
교회의 마녀사냥에 무고한 딸들이 불태워질 때 십자군의 무참한 살육전 앞에서 그리고 종교의 이름으로 인종청소가 자행될
때 문제는 신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
중세의 교황처럼 현대사에서 신권을 행사하는 무리가 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어제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탈레반에게) 어떠한 보상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들은 골프 카터에 올라, 보도진에게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것이 죽음 앞에 서 있는 한국인 인질에게 의미하는 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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