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2. 12:33

두개의 동형적 관계- 처세 - 세상사는 법

왕에게 보여선 안 될 편지를 읽고 있는 왕비의 방에 갑자기 왕이 들어온다. 똑똑한 왕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편지를 슬며시 테이블에 내려놓고 왕을 맞이한다. 왕은 다행히 사태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 거기에 왕을 찾던 모 장관이 들어온다. 눈치 빠른 그는 사태를 직감하고 두 사람의 면전에서 구겨진 종이를 이리저리 흔들다 편지와 바꿔치기 한다. 물론 왕비는 그것을 보았지만 제지할 수 없었다. 장관은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키워간다.

다음, 왕비의 부탁으로 파리 경찰청장은 엄청난 경찰들을 동원해서 장관의 집을 샅샅이 뒤지지만 편지를 찾지 못했다. 그의 부탁을 받은 탐정 뒤팽은 쉽사리 그의 집에서 그 편지를 찾아다 준다. 경찰이 뒤질 것을 안 장관은 약간의 변형을 가해서 눈에 띄기 쉬운 곳에 별 것 아닌 편지처럼 꽂아두었던 것이고, 뒤팽은 이를 알아채고 비슷하게 생긴 다른 편지로 바꿔놓고는 편지를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장관이 있는 자리에서.

첫째 장면에서 왕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자고, 왕비는 그것을 알고 편지를 눈에 보이게 두지만, 다른 사람이 그것을 알아보리라는 것을 생각지 못해서 편지를 빼앗긴다. 장관은 그런 사태를 알고 편지를 유유히 가져가는 자다.

둘째 장면에서도 이런 관계는 반복되어 나타난다. 경찰은 눈이 있어도 눈앞의 편지를 보지 못하는 자다. 장관은 그런 사태를 예견하고 편지를 눈에 보이게 두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알아보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해서 결국 편지를 빼앗긴다. 뒤팽은 그러한 사태를 잘 알고 눈앞에서 편지를 유유히 가져가는 자다.


서로 다른 두 장면에서 우리는 세 사람의 관계가 동일한 삼각형으로 표시될 수 있는 양상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편지(letter)를 둘러싸고 만들어지며, 편지에 대한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반복이다. 그렇다면 편지(letter는 문자라는 뜻도 있다)가 바로 이런 반복적인 관계를 만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가령 장관은 동일한 사람이지만 두 경우에 다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즉 관계 속의 다른 자리에 있으며, 다른 구실을 한다. 다른 사람이 다시 등장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는 그의 몸이 갖는 생물학적 동일성이 아니라, 어느 자리에 있는가, 다시 말해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사진출처 http://windshoes.new21.org/novel-poe.htm

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