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삶이 괴롭다는 것을 한번도 느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삶 자체를 오토-데스트뤽시옹(Auto-destruction), 즉 스스로 자기를 파괴하는 작업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오토-데스트뤽시옹의 터널을 빠져나오거나 그 수렁을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드나들면서도 꿋꿋이 살아남는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베르나로스의 말처럼 '인간적인 신음소리'를 내면서 끝내 자살로 마무리 진 사람들도 있다.
사연이야 어떻든 연예인의 자살이 입방아에 한동안 오르더니 일반적인 '자살'을 신문 방송이 경쟁적으로 쏟아 놓는다.
'인터넷 포탈'만 문제 삼지 그 구체적 원인에 대해서는 일언 반구가 없는 것도 특징이다.
문제가 되었던 젊은 연예인의 자살도 같은 맥락에서 보라는 것인지 씁쓸하기만하다.
자살의 어원은 라틴어의 sui(자기 자신을)와 cædo(죽이다)의 두 낱말의 합성어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자살이란 그 원인이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당사자가 자유의사(自由意思)에 의하여 자신의 목숨을 끊는 행위를 말한다.
자살의 시비(是非)에 관한 윤리관과 종교관에 따라 다르다.
과거 일본 군대의 ‘가미카제[神風] 특공대’나 이른바 ‘육탄용사(肉彈勇士)’, 전태일의 분신 처럼 자진해서 죽음으로 뛰어드는 경우를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칭송하는 경우도 있다.
자살긍정론자(自殺肯定論者)는, 인간은 누구든지 자기의 생명에 관해서 절대적인 권리를 가진다는 윤리적 입장에서 긍정해왔다.
자살부정론자는, 자살은 신과 국왕에 대한 의무를 포기하는 행위로서 비난한다.
종교적 관습에서도 긍정론과 부정론이 엇갈린다.
인도의 사티(satī)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남편을 잃은 아내가 남편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기원하여 뒤따라 자살하는 경우가 있었다. 한국에도 옛날에는 임금의 죽음에 대하여 신하가 순사(殉死)하는 관습이 있었으며, 근세 이후의 문예작품이나 연극 중에는, 자살을 동정하고 정사(情死)를 미화하는 사상이 드러나는 작품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 자살은 신을 모독하는 행위라 하여 이를 죄악시하고, 종교적 제재를 가하였다. 가톨릭에서는 오늘날에도 자살을 죄악시하는 사상이 강하다.
불교에서는 열반사상(涅槃思想)의 입장에서 자살을 경계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종교자살이 없지는 않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은 자살의 원인을
이기적 자살(利己的自殺)·애타적 자살(愛他的自殺)·아노미(anomie:無規制狀態)적 자살로 분류한다.
이기적 자살은 개인이 사회에 결합하는 양식(樣式)서 과도한 개인화를 보일 경우, 즉 개인과 사회의 결합력이 약할 때의 자살이다.
애타적 자살은 그 반대로 과도한 집단화를 보일 경우, 즉 사회적 의무감이 지나치게 강할 때의 자살이다.
아노미적 자살은 사회정세의 변화라든가 사회환경의 차이 또는 도덕적 통제의 결여(缺如)에 의한 자살이다.
말장난은 그만두고
통계에 의하면 신경쇠약·실연·병고(病苦)·생활고·가정불화·장래에 대한 고민·사업실패·염세(厭世) 등 을 자살의 원인으로 들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염세·병고·신경쇠약·실연·가정불화가 두드러지게 많다.
개인과 사회, 실추된 명예와 암울한 미래, 과거의 영예로운 삶과 중압감에 시달리는 현재의 삶 속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해 극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결국 역경의 고통에 순응하고 곤경을 참아내는 능력이 '자살의 충동'을 억제 할 수 있는 열쇄이다.
그 능력은 한동안 유행하던 극기훈련으로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그 것도 못참느냐고 비난할 일만은 아니다.
희망이다. 미래에 대한 꿈이 있고 실현의 가능성이 보일 때 참을 수 있는 것이다.
희망을 주려 노력하자.
도와 주지는 못해도
내가 살기 위해, 내 즐거움을 위해서, 내 잘못을 감추기 위해서 남의 삶을 파괴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자.
'우리는 은연 중에 남의 자살을 권하고 잇지 않은지를.....'
죽음 이후를 경험해 본자는 없다.
이승보다 저승이 더 나은 세상이라고 누가 말하던가?
하루 두끼 먹어도, 좁은 방에 끼어 살더라도 사는데까지 구차한 삶이라도 내 스스로 연명해보자.
사지육신 움직이지 못해 남을 괴롭힌다 생각될 때 그 때가서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해 보자.
자살도 삶의 한 방편이며 극히 인간적인 행위이며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법정에서 주장했던 프랑수와즈 사강의 생각에 '인간적인 행위'임은 동조하지만,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는 결코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는 경우가 없을 것이기에 자살은 극히 이기적임을 스스로 드러 내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이 글을 쓴 중에 '연예인이 직접 마약 밀반입해 투약 '이란 기사가 신문 방송에 보도되고 있다. 연예인들 한동안 숨죽이고 살아야겠다. 입조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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