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르트(Ernst Jacob Oppert- Dec. 5, 1832; died Sept. 19, 1903)는 독일 함부르크 출신으로 중국 상해에서 일을 하고 있던 상인이었다.
그는 아직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있는 조선과 통상을 하여 일확천금을 얻고자 몇 차례 내항하였다. 고종 3년(1866) 2월 영국 상인의 도움으로 영국 상선 토니호를 이용하여 해미현 서면 조금진 근처에 정박하였으나 통상에 실패하고 상해로 돌아갔다. 이처럼 1차내항에 실패한 오페르트는 그해 6월 26일 엠페리호를 타고 조금진에 이르렀으나 또 실패하였다. 두 차례에 걸친 조선 항해가 실패로 돌아간 뒤 2년 후 (1868) 고종 5년에 제 3차 항해를 계획하게 된다.
1868년 4월 제3차 한반도답사를 계획, 한때 상하이 미국영사관에 근무한 미국인 모험가 F.젠킨스를 자본주로 하고, 프랑스 선교사 페롱을 통역관 겸 보좌관으로 대동하여 차이나호(號)에 백인 8명, 말레이시아인 20명, 한국 천도교인 약간 명, 청국인 승무원 약 l00여 명을 태우고 상하이를 출항, 충청도 홍주군 행담도에 도착하였다.
행담도에 도착한 오페르트는 북독일연방(北獨逸聯邦)의 국기를 게양하고 소증기선 그레타호에 옮겨타고 삽교천으로 올라와 덕산군 고덕면 구만포에 상륙하였다.
덕산 군수 이종신등이 침입의 이유를 물어도 답하지 않고 러시아 군병이라 자칭하면서 함부로 총칼을 휘둘러 지방관헌조차도 접근하지 못하게 한 다음, 덕산 관아를 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였다.
이어 어둠을 타서 덕산 가동(伽洞)에 있는 남연군의 무덤을 파헤치기 시작. 덕산군수 이종신(李鍾信)과 묘지기 및 몇몇 주민이 이를 제지하려 하였으나 무장한 서양인을 당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날이 밝아 주민들이 몰려오며 내하(內河)의 퇴조(退潮)시간이 임박해지자 이들은 관곽(棺槨)까지 파낸 것을 그대로 버려두고 구만포로 퇴각하였다.
2일간에 걸친 이 사건이 관찰사 민치상(閔致庠)에게 알려지자 즉시 군관 100여 명을 출동시켜 추적하였으나 찾지 못하였다.
한편, 오페르트는 경기도 영종진 앞바다로 북상하여 영종도에 상륙하려 했으나 그곳 주민과 군인들의 저항으로 2명의 시체를 남기고 퇴각해 버렸다.
곧 충청도 관찰사 민치양은 이사건을 대원군에게 보고하였고, 이 보고를 접한 대원군은 크게 격분하여 서양 세력을 추격 궤멸하라는 엄명을 내리게 되었고 천주교도들과의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천주교도들의 색출과 처단을 강조하였다.
이렇게 해서 오페르트 도굴사건은 아무런 성과 없이 끝을 내고 말았으나, 국제적으로도 물의을 일으켜서 미국인 젠킨스는 불법파렴치로 기소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 버렸다.
이들의 항해목적은 뒷날 젠킨스가 이 사건으로 법정에서 진술한 바에 의하면, ① 조선왕국과 통상조약의 체결을 교섭하는 것, ② 조선의 사신 1명을 배에 태워 세계일주여행을 시키자는 것, ③ 이와 같이 하여 은둔국인 조선을 세계에 소개하자는 것 등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들은 조선인이 시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을 알고 관을 미끼로 조약을 체결하려 했던 것 같다.
미국인 역사가 그리피스(1843-1928)의 저서 "은둔국 한국"에 보면 한국인들은 외국인이 이 땅에 침입하려는 주목적이 시체를 강탈하고 가장 신성시 하는 인간의 본성까지 유린하려는데 있다는 것을 목전에서 생생하게 확인하게 되었다. 결국 외국인은 모두 야만이요, 그들의 대부분은 절도나 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국인들은 믿게 되었다."로 기록되어 있다. 결국 오페르트의 도굴사건으로 인해 조선인들은 외국인들에 대한 증오가 커지게 되었고, 그들을 배척하는 사상은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A Forbidden Land: Voyages to the C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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