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29. 11:07


[광복 70주년 특별기획 - 김호기·박태균의 논쟁으로 읽는 70년]


(6) 해방전후사 해석 논쟁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505122220025&code=210100&med_id=khan



1980년대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세력이 ‘학문적 시민권’을 획득한 시기였다.

 대학원을 졸업한 소장 연구자들이 기성 진보적 학자들과 함께 사회구성체 논쟁을 벌임으로써 한국전쟁 이후 냉전분단체제 아래서 위축된 진보적 인문·사회과학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가운데 한 축을 이룬 것은 해방 전후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이었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전 6권으로 나온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은 바로 이러한 연구들이 집약돼 있다. 

이 시리즈의 필자들로는 

고(故) 박현채(조선대 교수·경제학),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역사학), 최장집(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 등 당시 진보를 대표하는 중견 학자들부터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정해구(성공회대 교수·정치학), 이종석(전 통일부 장관) 등 패기만만했던 소장 연구자들을 망라했다.



고 박현채 조선대 교수·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왼쪽부터)


■ <인식> 대 <재인식>의 논쟁

<인식>에 참여한 학자와 연구자들 사이의 견해가 늘 일치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광복·미군정·정부수립·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사회변동을 분단체제의 형성 과정으로 파악하고, 이 과정 속에 냉전의 구조화라는 국제적 상황은 물론, 좌우합작·농민운동·노동운동 등의 국내적 변동을 ‘민중적·민족적 관점’에서 일관되게 분석하고자 했다.

민중적·민족적 관점이란 

지배계급과 외세에 맞서는 ‘민중’과 ‘민족’을 중시하는 진보적 역사관을 함축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해방 8년사(1945~1953) 한국 현대사야말로 세계질서 재편기 국제적 수준의 갈등과, 혁명과 반혁명의 국내적 갈등이 총체적으로 맞물려 돌아간 시기”라는 박명림의 주장은 <인식>에 담긴 새로운 역사인식을 생생히 보여준다. 


<인식>은 출간되자마자 학계와 시민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87년 6월항쟁으로 열린 민주화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결합됐기 때문이다. 

<인식>은 특히 당시 큰 화제를 모은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으로 보였는데, 

두 책 모두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닌 이들에게 현대사 학습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인식>의 역사인식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은 

2006년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을 통해 이뤄졌다. 

<재인식>은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1950년대까지 우리 현대사를 새롭게 해석한 논문들을 모은 책이다. 


민족주의를 비판해온 탈근대 성향의 박지향(서울대 교수·역사학), 김철(연세대 교수·국문학)이 뉴라이트 학자들이라 할 수 있는 이영훈(서울대 교수·경제학), 고(故) 김일영(성균관대 교수·정치학)과 함께 편집한 저작이다. 

<재인식>이 큰 관심을 모은 까닭은 책 제목에 담긴 상징성에 있다. 

다시 말해 <재인식>은 <인식>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을 겨냥했다. 

<재인식>은 머리말에서 지난 20여년간 학계의 부단한 연구로 <인식>에서 제기된 주장의 잘못이 지적되고 수정되어 왔음에 주목해 그동안 진척된 수준 높은 학술 논문을 선정해 대중에게 알기 쉽게 제시해 주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재인식>은 

<인식>에 담긴 민족 지상주의와 민중혁명 필연론이 우리 현대사 해석에 끼친 폐해를 우려하고, 편협하지 않고 균형 잡힌 역사 이해를 요구했다. 

이러한 우려와 요구는 2006년 당시 진행된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청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학문적 연구에서 시작됐으나 정치·사회 현실 문제에 직접 개입했다는 점에서 당시 <인식>과 <재인식>을 둘러싼 토론은 학계 안팎에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영훈 서울대 교수·박지향 서울대 교수·김철 연세대 교수(왼쪽부터)


■ <인식>과 <재인식>의 한계

<재인식>에 대한 비판은 두 방향에서 제시됐다. 


하나는 <인식>에 가까운 진보적 역사학자들의 비판이었다. 

당시 ‘역사비평’의 주간을 맡고 있던 임대식(역사학자)은 <재인식>이 뉴라이트와 탈근대의 기묘한 연대라고 지적하고, 이러한 ‘이종 연대’가 개혁이라는 시대정신에 역방향으로 작용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다른 하나는 상대적으로 젊은 탈근대 역사학자들의 비판이었다. 

윤해동(한양대 교수·역사학) 등은 

2006년 <근대를 다시 읽는다>를 펴내 <인식>과 <재인식>을 동시에 비판했다. 

이들은 <인식>과 <재인식> 모두 철 지난 진영적 대립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인식>의 민족주의나 민중주의가 현실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낡은 역사인식에 머물러 있다면, <재인식>의 경우 일부 예외적인 글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 ‘보수우익’의 정치적 이해에 복무하면서 시대착오적인 좌우 대립에 편승하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인식>과 <재인식>을 둘러싼 논쟁은 광복 직후 역사적 사실과 집단적 기억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과연 우리는 광복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시기의 역사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그것은 <인식>의 일부 필자들이 주장하듯 제국주의의 지배에 따른 비극적인 분단국가의 형성 과정인가, 아니면 <재인식>의 일부 필자들이 강조하듯 훌륭한 선택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서의 대한민국 성립 과정인가. 


좌파 민족주의 대 뉴라이트의 역사 해석이라 할 수 있는 <인식> 대 <재인식>의 이런 상반된 역사관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돌아보면 

<인식>의 역사관에는 1980년대의 민족해방과 민중해방에 대한 염원이 깃들어 있었다.

 당대의 관점에서 <인식>이 그동안 한쪽으로 편향된 역사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고,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밝히는 데 기여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인식>에서 제시된 사실 복원 및 해석은 민중적·민족적 관점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재인식>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근대를 다시 읽는다>의 편자들이 적절히 지적하듯이 <재인식>의 논리에는 ‘국가=문명, 민족=야만’이라는 낡은 이분법이 깔려 있고, 

우익적 ‘대한민국 국가주의’의 강화라는 이념적 목표가 도사리고 있었다.

<인식>과 <재인식>을 둘러싼 논쟁은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면 <인식>과 <재인식>은 역사 해석을 여전히 이념투쟁의 한 수단으로 보려는 정치적 독법(讀法)의 위험을 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느 나라이건 역사 해석에서 하나의 시각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실의 복원과 평가 또한 고정돼 있지 않다.

요컨대, 역사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과 기억의 복원으로 재구성되며 재해석된다. 

역사 해석이란 본디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강제와 경로의존성의 출발점이 된, 광복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현대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됐다고 봐도 좋다. 

어떤 사실과 기억이 이 시대를 정직하게 반영하는지를 분석하고, 그것이 현재에 어떤 함의를 안겨주는지를 성찰하는 것은 우리 현대사를 연구하는 인문·사회과학자에게는 더없이 중대한 과제다.

▲ 조정래의 ‘태백산맥’
역사책 뺨친 소설… 현대사 시야 넓혀



1987년 이후 열린 민주화 시대의 해방 전후사에 대한 역사적 이해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텍스트 중 하나는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1989년 전 10권 완간)이다. 

<태백산맥>은 여순사건이 일어난 1948년부터 빨치산 토벌이 끝나가는 1953년까지 전남 벌교를 중심으로 진행된 비극적인 현대사를 다룬 대하소설이다. 

<태백산맥>은 ‘혁명의 시대’라는 198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염상진, 김범우, 하대치, 소화, 외서댁, 들몰댁, 그리고 염상구까지 <태백산맥>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해방 전후를 살아온 민중과 지식인의 전형적 인물들이었기에 그만큼 감동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태백산맥>의 내용 때문에 조정래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됐지만 2005년 11년 만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이 보여주듯 <태백산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뜨거웠고, 우리 현대사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태백산맥>은 250쇄 정도를 찍었다고 한다. 총 850만권이 팔렸고, 매년 10만권가량 나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설 속의 주 무대인 벌교는 1980년대의 추억을 가진 386세대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곳으로 꼽힌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