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1. 08:14

1919년 3·1운동 직후 김원봉을 주축으로 무장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義烈團)이 만들어졌다. 무력 수단에 의한 독립을 목표로 했던 의열단은 1921년 9월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하며 이름을 알렸으나 비밀결사 조직이었기 때문에 정확한 활동상은 지금껏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의열단의 규모와 활동 방식을 기록한 영국 정보국 SIS(Secret Intelligence Service)의 비밀문서가 28일 공개됐다. 문서는 영국 국가기록원이 관리하던 것을 우리 국가기록원이 수집해 2010년부터 보관해오던 것이다.

1923년 영국 정보국 극동 지부가 본국 외무성에 보낸 의열단 관련 보고 문서. 중국에서 활동하던 영국 첩보원이 작성한 문서라 ‘의열단’을 중국어 발음으로 표기하고 있다. 의열단이 국내외에 많은 지부를 두고 있다는 등의 활동상도 담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영국 본국에 보고된 SIS 극동지부의 1923년 8월 보고서는 의열단에 대해 "약 2000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한국인 비밀결사체로, 한국과 일본에 있는 일본인 관리들을 암살하는 것이 (의열단의) 목적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보고서는 "한 달 전에 이 단체 회원 한 명이 중국 청도에 있는 독일인이 만든 폭탄 160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가운데 100개가 한국으로 반입되었다. 현재 50여명의 회원이 도쿄에서 활동 중이다"라는 등 상세하게 기록했다.

SIS 문서는 임시정부의 활동상에 대해서도 기록을 남겼다. 1919년 10월에 작성된 SIS '대한민국 임시정부' 보고서에는 "상해 임시정부가 본국과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자금을 받았다. 임시정부는 현지 한국인들에게 세금을 부과했고, 대부분 한국인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냈다. 상해에서 발간된 독립신문이 일본인을 달래기 위해 프랑스(당시 상해를 조차했음) 당국에 의해 폐간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록했다.


1923년에 작성된 '한국 독립운동 초기 전개 과정'이라는 SIS 문서엔 3·1운동과 관련해 "서울의 한 식당에서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모여 독립선언을 발표한 후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신들을 체포하도록 요청했다. 모든 주요 도시와 읍내의 독립투사들이 시위를 조직했다. 수많은 젊은 여학생이 적극적으로 운동에 가담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김도형 독립기념관 박사는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영국의 관심을 반영하는 문서"라며 "SIS 극동지부는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첩보 내용을 본국에 지속적으로 보고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3·1운동이 전 세계에 전해지면서 영국 내에서도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여론이 하원 의원들을 중심으로 나타났다"며 "동시에 독립운동을 탄압한 일본에 대해선 비난 여론이 생겼다"고 말했다.


글의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01/2013030100215.html?news_Hea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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