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 9. 02:12
62세 생일 신미양요 아시아 함대 선상의 장병 1871 미국 아시아 함대는 군함5척 총병력 1,230명 함재 대포 85문을 장비하고 조선원정 (5월16일 ~ 7월3일) 을 단행했다. 명성황후 장례식 1897년 상복차림에 인산을 들고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모두가 침통한 표정들 이다, 장례행렬에 동원된 초롱등은 5천개나 되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민영찬과 명성황후의 가까운 관계를 생각할 때 이 사진 속 주인공이 명성황후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1930년 동아일보에 실린 사진이 틀렸다면 민영찬이 분명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고 그 경우 1933년에 같은 사진이 다시 게재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명성황후의 사진이 맞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학자 문일평(1888~1939)이 1920년대에 쓴 '사외이문'(史外異聞)이라는 책에서 '이 사진을 알만한 사람에게 보여주었더니 아니라고 대답했다'고 적은 것을 보면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또 한 종류는 주한 이탈리아 공사 카를로 로제티의 '꼬레아 꼬레아니'(1904), 우리나라에 왔던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1863~1949)의 '대한제국멸망사'(1906) 등에 실린 사진이다. '독립정신'의 사진보다 옷이 화려하고 머리도 말아올려 치장을 많이 한 것이 특징이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머리 장식 등을 보면 당시 사람의 신분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데 사진 속 여인은 일반 궁녀가 대개 비녀를 하나 꽂은 것과 달리, 비녀 두개를 꽂고 옷도 화려해 왕비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로 복식사를 전공한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됐다. 이들은 사진 속 여인의 옷이, '독립정신'의 그것보다 화려하다고는 하나 왕비의 의복으로는 초라하다고 말한다. 머리도 어느 정도 장식은 했지만 왕비의 그것은 이보다 훨씬 화려하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사진은 독일 출신 작가의 사진첩에서 나온 것이다. '시해된 왕비'라는 뜻의 독일어(Die Ermodete Konigin) 설명이 붙어 있고 대원군의 평상복 사진과 배경이 같아 일부에서는 명성황후로 추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1890년대 초반 발간된 미국 국립박물관 보고서, 영국 잡지화보 등에 '조선의 궁녀'라는 설명과 함께 실린 사실이 확인돼 일단 이 사진은 궁녀로 가닥이 잡힌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