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이주 (동아일보사, 사진으로 보는 한국백년, 1978, 259) | | 1930년대 말엽, 만주의 한국인은 100만명이 넘었다. 이 숫자의 절반이 정주한 간도 지방은 항일 빨치산의 근거지이며,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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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광복회와 보천보 (한길사,한국사-16, 1994, 46 ) | | 오른쪽 - 보천보 전투를 보도한 {동아일보} 1937년 6월 5일자 호외. 왼쪽 - 재만 한국인 조국광복회의 지하공작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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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대(1938) (한겨레신문사, 발굴한국현대사인물 3, 1992, 167) | | 1939년 10월 10일 중국 광서 장족 자치구(광서성) 계림에서 찍은 조선의용대 창립 한 돌 기념사진. 가운뎃줄 왼쪽에서 열번째가 약산 김원봉. 오른쪽 위는 조선의용대 명찰. 중일전쟁이 한창인 1938년 10월 10일, 한구(漢口)에서 조선민족전선연맹의 무장부대로 조선의용대가 창설되어 대장에 김원봉, 부대장에 신악이 취임했다. 조선의용대는 약 300여 명의 대원이 3개 지대와 부녀대, 3.1소년단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조선민족전선연맹은 조선민족혁명당(김원봉), 조선민족해방운동자동맹(김성숙 등). 조선혁명자연맹(유자명, 유림), 조선청년전위동맹의 연합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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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 (1940) (서문당,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 하, 1987, 136) | | 1940년 9월 17일, 중경 '가능빈관'에서 개최된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 전례. 단상에 임정 김구 국무령과 김학규 총사령부 참모. 백범의 주례사, 선언문 낭독, 조소앙의 경과보고, 홍진.조완구의 축사, 중국요인의 격려사.축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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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항복 (서문당,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 하, 1987, 182) | | 1945년 9월 2일, 도쿄만에 정막한 '미조리'함상에서 연합군 총사령과 맥아더 장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일본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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