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 9. 21:38
해외이주
(동아일보사, 사진으로 보는 한국백년, 1978, 259)
1930년대 말엽, 만주의 한국인은 100만명이 넘었다. 이 숫자의 절반이 정주한 간도 지방은 항일 빨치산의 근거지이며,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조선광복회와 보천보
(한길사,한국사-16, 1994, 46 )
오른쪽 - 보천보 전투를 보도한 {동아일보} 1937년 6월 5일자 호외.
왼쪽 - 재만 한국인 조국광복회의 지하공작원들.
조선의용대(1938)
(한겨레신문사, 발굴한국현대사인물 3, 1992, 167)
1939년 10월 10일 중국 광서 장족 자치구(광서성) 계림에서 찍은 조선의용대 창립 한 돌 기념사진. 가운뎃줄 왼쪽에서 열번째가 약산 김원봉. 오른쪽 위는 조선의용대 명찰.
중일전쟁이 한창인 1938년 10월 10일, 한구(漢口)에서 조선민족전선연맹의 무장부대로 조선의용대가 창설되어 대장에 김원봉, 부대장에 신악이 취임했다. 조선의용대는 약 300여 명의 대원이 3개 지대와 부녀대, 3.1소년단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조선민족전선연맹은 조선민족혁명당(김원봉), 조선민족해방운동자동맹(김성숙 등). 조선혁명자연맹(유자명, 유림), 조선청년전위동맹의 연합체였다.
광복군 (1940)
(서문당,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 하, 1987, 136)
1940년 9월 17일, 중경 '가능빈관'에서 개최된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 전례. 단상에 임정 김구 국무령과 김학규 총사령부 참모. 백범의 주례사, 선언문 낭독, 조소앙의 경과보고, 홍진.조완구의 축사, 중국요인의 격려사.축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일제항복
(서문당,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 하, 1987, 182)
1945년 9월 2일, 도쿄만에 정막한 '미조리'함상에서 연합군 총사령과 맥아더 장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일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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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