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중도가 각광을 받는다. 중도 개혁세력 통합론, 신중도론, 혁신적 중도 통합론, 중도통합 실용주의, 심지어 평화양심 중도통합이란 깃발도 오른다.
성철 스님은 중도란
연기(緣起)의 이치로 바라본 사물의 실상이라고 했다. 인연에 따라 풍수지화(風水地火)가 뭉치면 사물이 되고, 인연이 다하면 풍수지화로 돌아간다. 정신적 작용 역시 인연에 따라 쌓인 것이 습관이 되고, ‘자아’ 정체성이 된다. 그것이 흩어지면 나도 정체성도 사라진다. 이렇듯 존재란 생사와 유무 등 극단을 초월하여 있다.
김지하씨는
중도를 이변비중(離邊非中)이라고 설명했다. 양 극단을 떠나되 중간은 아니라고 한다.
요즘 정치판의 '중도'는 위와 같은 철학 선문답은 아닌것 같고
아래와 같은 것의 아류일 터이다.
1929년 미국의 주식값 대폭락과 함께 폭발한 대공황은 공업 생산량의 추락과 농산물 가격 폭락, 유럽의 금융공황, 그리고 대량 실업사태를 불러왔다. 각국은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전면 개입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극좌(공산주의), 극우(파시즘 국가독점자본주의) 극단주의가 확산됐다. 독일이나 이탈리아는 파시즘을 선택했다.
각국이 극단주의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스웨덴의 사민당은 양단을 피해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국가 계획의 안정성을 결합하려 했다. 그 결과 노동자 자본가 정부 삼자의 대타협으로 이른바 ‘스웨덴 모델’이 탄생했다.
1936년 미국의 언론인 마르퀴스 차일즈는 지금은 한국의 보수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좌파 정책의 상징이라 비꼬는는 스웨덴 복지국가제도에 붙인 이름이 바로 중도였다.
‘중도’는 90년대 중반 서유럽에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영국의 노동당은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주창한, 좌파와 우파를 넘어선 ‘제3의 길’을 깃발로 내걸었고, 독일 사민당은 자신을 새로운 중도정당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들의 중도는 신자유주의로의 우선회를 뜻했다.
요즘의 중도는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국가 계획의 안정성을 결합하되 신 자유주의로 우선회한 '중도'를 자처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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