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25. 10:33

2005년 3월 덕수궁 돈덕전(惇德殿) 모습을 담은 사진이발견됐다.(사진 1)

이 사진을 통해 그간 아관파천(1896년) 당시 고종이 평복에 갓을 쓰고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했을 때(사진 2) 일본군이 고종의 뒤를 쫓아 무력 시위하는 것(사진 3)으로 알려졌던 사진의 배경이 러시아공사관이 아니라 돈덕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시기도 1896년이 아니라 1907년 7월이며, 일제가 고종에게 황제 양위를 요구하며 궁궐 안마당까지 군사력을 동원, 무력 시위를 벌였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이 사진은 서울대 이태진(李泰鎭·근대사) 교수가 일본 가쿠쇼인(學習院)대학에 소장된 ‘한국사진첩’(1910년 통감부 발행)에서 발견, 21일 본지에 공개했다.

돈덕전은 1900년대 초반에 지은 서양식 건물로 덕수궁 석조전 뒤편 현 포덕문 북동쪽에 있었다. 순종이 이곳에서 즉위(1907년)했으며 1920년대 초반에 헐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진에서 돈덕전이 확인됨에 따라 이 건물에 대한제국의 상징이었던 오얏꽃 무늬가 기둥과 난간에 새겨져 있는 것 등을 알 수 있게 됐다.




러시아 공사관 앞에서 아관파천에 집단 항의하는 일본군(1896.2.11) 으로 알려 졌으나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늬가 기둥과 난간 등에 장식된 덕수궁 돈덕전. ③덕수궁 돈덕전에서 고종의 퇴위를 강요하며 무력 시위하는 일본군. 1907년 7월 22일 고종을 위한 친위 쿠데타를 시도하려던 대한제국 시위대를 제압한 뒤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집단 항의하는 일본군을 내려다 보는 고종황제
일본군을 내려다보고 있는 고종황제(2층 흰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중 오른쪽, 왼쪽은 황세자 순종)의 모습

www.diplomaticarchives.go.kr/bbs/board.php?bo...

이태진 교수는 아관파천 때 사진으로 알려졌던 사진 2, 3의 날짜를 1907년 7월 22일로 추정했다. 당시 일제는 고종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1907년 6월)에 이준·이상설·이위종 등 3인을 특사로 보내 일제의 대한제국 침탈을 호소하려 한 것을 빌미로 황제 퇴위를 강요했다.

7월 22일 새벽 덕수궁을 지키던 시위대 일부 병력이 친위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이완용 등 친일 대신들이 이를 먼저 감지해 일본군 1개 대대가 시위대를 진압하고 돈덕전 앞에서 고종의 황제 퇴위를 요구하는 무력 시위를 벌였다.

당시 사건을 현장 취재했던 오사카 매일신문 나라사키(楢崎桂園)기자는 ‘한국정미정변사(韓國丁未政變史)’라는 책에서, 이날(7월 22일) 일제는 황제 양위에 응하지 않는 고종과 황태자(순종)를 대신해 환관 2명을 대역(代役)으로 내세워 황제 양위식을 치렀다고 기록했다.

대한제국 군대도 그해 8월 1일 해산됐다. 무장 해제된 대한제국 군인들은 의병에 합류, 무장 항쟁을 벌였다.

http://blog.daum.net/kinhj4801/15959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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