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7. 05:06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범죄의 하나로 기록된 르완다 대학살


한반도의 1/9밖에 안 되는 영토와 인구 7백만 명에 불과한 아프리카의 소국(小國) 르완다.


94년 내전의 발발로 1백만 명이 학살되고 2백만 명의 난민을 떠돌게 된 르완다의 비극


그러면 왜 이런 끔찍한 일이 르완다에서 일어났을까.

게다가 학살이 강행돼 100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동안 국제사회는 도대체 무엇을 했을까.


서유럽 제국들이 앞 다퉈 과자 조각 나눠먹듯 아프리카를 탈취하던 시절,

르완다는 1899년 독일, 1919년부터는 벨기에 식민지였다.

식민통치 이전까지 투치족이 왕족을 형성하고 있긴 했어도 ‘투치’와 ‘후투’는 역사상 공존하며 같은 문화와 같은 언어를 사용해왔다.


식민통치 기간 벨기에는 통치정책의 하나로 신분증에 종족명을 명기하면서까지 소수족인 투치족에겐 특권과 지배를 보장해준 반면, 다수족인 후투족에 대해선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는 등 철저한 분리 통치 정책을 펼쳤다.

투치족은 부유하고 엘리트층, 그렇지 않은 후투족


1950년대 말 아프리카 식민지 나라들의 독립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이미 엘리트층을 형성하고 있던 투치족 사이에는 독립을 획득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벨기에는 독립을 외치는 투치족을 억누르기 위해 기존 정책을 바꿔 이번에는 후투족을 부추겨, ‘반투치’ 를 지원했다.


1959년 수많은 투치족들이 살해되거나 이웃나라로 떠나게 되고, 1962년 7월 결국 다수인 후투족이 권좌를 차지한 독립국가로 거듭 태어난다.

후투족 85%, 투치족 14% 그리고 극소수의 트와족으로 구성돼 있었다.



무릇 탈식민지 나라들 대부분이 그렇듯, 독립 뒤 르완다의 상황은 한마디로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다.


1973년 쿠데타로 집권한 후투족인 하비아리마나 대통령


타국에 망명해 군사세력의 기반을 닦으면서 르완다 재탈취의 꿈을 키워가는 투치 군사·정치단체인 르완다애국전선(FPR)이 1987년 이웃나라 우간다에서 정식으로 창립되기에 이른다.


1990년 르완다 북쪽 우간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에서 FPR의 공격이 개시된다. 내전이다.

하비아리마나의 독재에 불만을 느낀 후투족의 일부도 애국 전선에 참가하게 되었고, 내전은 단순한 종족간 분쟁을 넘어 독재 정부에 대한 저항이라는 정치적 색채를 띠게 된다.

대통령 지지자들은 온건파 후투족들이 투치족 반군에 동정적이라고 비난한다.



하비아리마나는 후투의 결집을 위해 ‘투치족보다 우월한 후투족’을 내세우며 감성적 자극을 한다.


1990년 발표된 ‘후투 10계명’ 내용을 살펴보자. “후투족은 투치족보다 훨씬 우월하기 때문에 모든 지배계층은 후투족이 장악해야 하고, 후투족은 투치족과 결혼을 해서도, 또 투치족을 고용해서도 안 되며, 투치족에게 동정심을 가져서도 안 된다.”


1993년 UN의 개입으로 FPR의 국내 복귀 조건인 평화협약이 체결되지만 그것은 현실을 외면한 국제기구의 환상일 뿐이었다.


1994년 4월6일,

항공기 격추로 자기 부족 출신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암살되자 복수에 나선 후투족은 불과 100여일 만에 투치족, 온건 후투 80만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것은 1일당 1만명, 1시간당 400명, 1분당 7명이 살해당한것과 같다.

수많은 무리를 이룬 살인자들이 다른 무리를 쫓아가며 머리를 내리쳤고, 나무를 자르듯 사람들의 사지를 잘랐으며, 살인을 하기 위해 마치 출근이라도 하듯 아침부터 저녁까지 3개월 동안 학살작업을 이어갔다. 그런 지옥 속에서 모든 가족이 주검으로 변한 장소에서 살아남은 자는 오히려 죽기를 갈망했다고 한다.


1994년 7월4일 대학살은 폴 카가메 현 대통령이 이끄는 투치족 FPR가 수도를 점령하면서 학살은 끝이 났고, 그와 함께 투치족이 다시 권좌에 올라 지금에 이르고 있다.


후투족들은 대거 국외를 떠도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유엔 르완다 전범재판소는 대량 학살에 책임이 있는 자들을 사법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대량 학살 당시 르완다 정부의 총리였던 진 캄반다를 포함해 수십명의 전 르완다 지도자들에게 유죄가 선고됐습니다. 그러나 수백명의 용의자들이 아직 검거되지 않고 있다.

당시 대학살은 투치족 반군과의 권력 분점에 반대하는 대통령의 측근인 후투족 강경세력들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르완다내의 투치족에 대한 학살 준비는 정부차원에서 널리 준비가 됬었다. 학실 개시 당시, 이미 르완다 내에서는 3만여명이 AK-47과 수류탄등으로 무장이 되어 있었고, 비무장 후투족도 간단한 서류작성 후에 위 무기들을 공급 받았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Jean Kambanda는 르완다전범재판소에서 당시 정부 각료회의에서도 투치족 말살론이 공공연히 논의 됬었고, 한 각료는 "개인적으로도 투치족들을 말살시키는데 찬성한다. 투치족이 없다면 르완다가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없어질것이다" 라고 주장을 했었다고 증언했다. 재판 당시, 지역정부차원에서도 시장들과 경찰관들이 학살에 대해 논의하고 또 그것을 이행했다는것이 밝혀졌다.


르완다 정부는 프랑스 주요 정치인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을 비롯해 에두아르 발라뒤르 전 총리, 도미니크 드 빌팽 전 총리, 알랭 쥐페 전 외무장관 등 13명과 군인 20명이 1994년 대학살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며 이들의 사법 처리를 촉구했다.


미테랑 전 대통령이 대학살 1년 전인 1993년부터 대량 학살 조짐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영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해 프랑스가 대학살에 연루된 후투족 민병대의 무장을 지원했다고 주장이다.


르완다 법무부는 “프랑스 군이 투치족, 투치족을 숨겨준 온건파 후투족을 직접 살해했다”며 “프랑스군은 또한 투치족 생존자들을 성폭행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외무부 대변인은 “르완다 정부로부터 아직 보고서를 전달받지 못해 답변하기 곤란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동안 프랑스는 ‘르완다에서 실수가 있었다’는 표현을 써왔으나, 학살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해왔다.


이에 앞서 2006년 11월, 프랑스 법원이 지난 1994년 르완다에서 발생한 항공기 격추 사건과 관련해 르완다 군 장성들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다. 투치족 출신인 폴 카가메 현 대통령이 연루돼 있다는게 프랑스 법원의 판단이었다.

프랑스 법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르완다 대학살의 원죄는 항공기를 격추시킨 현 카가메 대통령에게 돌아가는 셈이 된다.

이 때문에 르완다 정부는 프랑스 법원의 체포영장에 반발했고, 결국 외교관계 단절로 이어졌다.


프랑스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지난주 르완다를 방문해 카가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프랑스의 잘못을 인정한다.


르완다 정부에 의해 1994년 르완다 대학살을 지원한 혐의로 고발돼 수배를 받아왔던하비아리마나 전 대통령의 부인 아가테 하비아리마나가 프랑스 당국에 체포됐다.


그녀는 대학살 초기에 프랑스 군인들에 의해 르완다를 빠져나와 프랑스에 거주하며 정치적 망명을 요구해왔다.


르완다 정부는 이번 조치에 환영을 표명하고 국내 법정에 인도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아가토 씨의 변호인은 "르완다 법정 중립성을 믿을 수 없다"고 전달을 거부하고 프랑스 국내에서 재판을 주장하고있다.

프랑스 당국이 그녀를 르완다로 송환할지는 불투명하다고 BBC는 전했다.


프랑스 법원은 최근 르완다에서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들어 3명의 용의자를 르완다로 보내지 않고 탄자니아에 있는 르완다 전범 재판소로 넘긴 바 있다.


1998년 클린턴 행정부는 인종학살을 방치한 무책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2000년 벨기에 총리는 6돌 추모식에서 식민통치와 인종학살 외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했다. 같은해 UN도 학살을 막지 못한 잘못을 반성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흘렀다.

어떤 이는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기억으로, 어떤 이는 그때 당한 성폭행으로 자신에게 남겨진 자식을 바라보면서, 또 어떤 이는 밤마다 허덕이는 악몽으로 그날을 되새기고 있다. 그러면서 오늘도 스스로 묻고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까.” 그 동안 수 없이 되묻고 있지만, 아무도 속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이는 없다.


'세상에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제 우리가 강의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0) 2010.03.09
파판드레우 (Papandreu)의 고민  (0) 2010.03.08
이라크 선거  (0) 2010.03.06
어디서나 말조심, 몸조심  (0) 2010.03.06
배분남(裵粉南)  (0) 2010.03.03
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