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바 - はんば(飯場)
토목, 건설현장에는 아직도 일제시대 때 쓰던 말이 많이 남아 있는데, 함바도 그런 말 중에 하나이다. 원래의 뜻은 "토목 공사장, 광산의 현장에 있는 노무자 합숙소"의 의미지만, 우리는 주로 가건물로 지어 놓은 현장 식당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고 있다.
“…수당을 챙겨 넣을지라도 잊지 말거라/장마통 함바의 소주잔으로 막걸리 잔으로/뜨겁게 주고받은 노가다…”(김해화 시인의 ‘인부수첩29’)
건설현장 간이식당을 뜻하는 ‘함바식당’은 건설 근로자들에게 밥을 먹는 장소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손맛 좋은 식당 주인이 퍼주는 밥과 막걸리는 오직 몸으로 일하는 이들에게 힘든 일상을 잠시 잊게 하는 역할까지 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함바식당이 회사 구내식당처럼 변하고 있다.
특히 대형 건설업체를 중심으로 급식업체가 공사 기간에 현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재 수도권 건설현장의 30%는 전문 급식업체가 함바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추정이다.
○ 식단 과학화되다
지난달 30일 오전 11시 반 재건축 현장 내 함바식당.
겉은 허름했지만 실내는 깔끔했다. 조리반원 6명은 가운에 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근로자들은 지급받은 카드를 인식기에 대 밥값(한 끼 3300원)을 계산했다.
“매일 메뉴가 바뀌니까 가끔은 마누라가 해 주는 밥보다 낫지.”
급식업체가 운영하는 이 식당에서 만난 경력 12년의 굴착기 기사 함모 씨는 제육볶음을 밥 위에 수북하게 얹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예전에 아줌마 몇 명이 함바식당을 운영할 때는 메뉴가 아줌마 마음대로였다”며 “같은 반찬이 연달아 나오면 짜증났는데 급식업체가 하면서 그런 일이 사라졌다”고 했다.
급식업체 관계자는 “전국 29개 건설현장 함바식당에 파견된 영양사들이 조사한 근로자들의 취향을 바탕으로 2주 단위로 식단을 짠다”고 설명했다.
밥을 먹어 보니 맛은 있지만 짠 편이었다.
이현경 영양사는 “근로자들이 땀을 많이 흘려 겨울에도 염도를 조금 높인다”며 “식판 옆에는 아예 소금과 양념장 고추장을 담은 통을 늘 놓아둔다”고 말했다.
○ 낭만은 사라져
이 식당에는 밥과 반찬은 많지만 소주나 막걸리는 없다.
작업 때 안전을 고려해 퇴근 전 음주는 금지돼 있다. 음주로 적발되면 즉시 현장에서 퇴출된다.
“반주(飯酒)를 즐겼던 일부 고참은 종종 현장 밖 식당에서 음주를 ‘시도’했지만 올해 초부터 음주측정기를 구입해 현장 출입구에서 불심검문을 시작한 이후로는 더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찬을 담당하는 경력 20년의 조리사는 “시끄럽지 않아 좋지만 사람 사는 냄새는 덜 난다”며 “이전에는 십장들이 밥 먹으면서 부하 근로자들에게 노래도 시키고 했는데 지금은 조용히 밥만 먹는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근로자 70여 명은 대부분 7∼10분 만에 점심식사를 마쳤다.
“술도 못 마시게 하니 다들 빨리 밥 먹고 남은 시간에 낮잠 자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현장 근로자들은 대부분 작업이 없는 일요일에 몰아서 폭음을 한다.
그래서 많은 근로자가 월요일에 해장국을 찾아 주로 콩나물국이나 북엇국을 준비한단다.
늙어가는 함바집 / 공광규
멈춘 시계가 5시 53분을 가리키고 있는 저녁
폐자재가 굴러다니는 강변 목련나무 아래 함바집은
판자를 덧댄 문을 헌 입처럼 가끔 벌려서
개나리나무에 음표를 매달고 있습니다
멀리서 기차는 시간을 토막 내며 철교를 지나고
술병을 세운 탁자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얼굴에 팬 주름을 악기처럼 연주하며
뽕짝으로 지르박으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없는 날에도 기차는 녹슨 철교 위에서
여전히 시간을 토막 내며 지나고
자동차는 요란한 청춘처럼 잘못 살고 있는 중년처럼
속도를 몸을 위반하며 지날 것입니다
강물은 길이를 잴 수 없을 만큼 흘러가고
풀잎은 수없이 시들고 또 새 풀잎을 낼 것입니다
사랑도 몸도 연꽃처럼 시들고 구겨지고
전등은 여전히 인생을 측은하게 바라볼 것입니다
우리가 없는 날에도 목련나무 아래 함바집
녹슨 난로 옆엔 사람들이 따뜻하게 늙어갈 것입니다
종교처럼 늙어가는 술집의 멈춘 시계는
여전히 저녁 5시 53분을 가리키고 있겠지요
귀향
윤인구
낮술 한 잔 걸치고 무슨 생각 하시는가
할 일 없는 누렁이도 비켜 가는구나
꽃잎이 눈처럼 내리는 청매실농원
하얀 이 층 양옥집 흔들거리는 의자에 앉아
저무는 노을을 바라보며 늙어가고 싶은 꿈
일장춘몽 이었던가
그래도 한양건설 노가다 십장 시절이 좋았다
더러운 성질머리 때문에 툭하면 내팽개쳐서
여러 번 혼절하기도 하고 심심하면 망치대신
들고 다니며 삐져나온 못꼬챙이 같은 것들을
처박아 대기도 했다 공사판 시멘트 바닥에
뭉개고 깔고 앉아 대접으로 막소주를 상한속에
퍼마시며 한물간 사우디 얘기나 아이엠에프때 몽땅
말아먹은 사연을 자랑처럼 핏대를 올려가며 해댔지
노가다 십장이 무슨 벼슬이라고 목에다 잔뜩 힘주고
함바집 여편내와 탕진해버린 좋았던 시간도 있었다만
지난여름 미아리 뉴타운 공사판에서 떨어져
골병든 몸으로 귀향을 결심했는데
시골집 뒷간 담벼락에
졸고 있는 똥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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