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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01 일제 강점기 엽서
  2. 2011.05.01 일제 강점기 서울 조선인 마을
  3. 2011.05.01 조선호텔, 원구단,황궁우
  4. 2011.05.01 1930 창경원
2011. 5. 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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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5. 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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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5. 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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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
2011. 5. 1. 10:50

창경궁은 일찍이 중종이 대장금의 진료를 받았던 곳이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뒤주 비극’이 일어난 장소도 그곳이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기념으로 가난한 백성에게 쌀을 나눠주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당을 참배하려고 쪽문을 낸 곳 역시 창경궁이다. 수많은 왕과 왕비, 왕자, 공주의 생로병사가 이루어졌고 왕이 직접 농사 시범을 보인 곳 또한 창경궁이었다. 한마디로 조선왕조의 혼이 깃든 터였다.

일제는 조선왕조 말살의 삽을 떴다. 1907년부터 창경‘궁’(宮) 안 건물들을 헐어내고 동 식물원과 박물관을 지었다.

언덕과 뜰에 가득 벚나무를 심었다. 1911년엔 이름도 창경‘원’(苑)으로 격하했다. 백성들이 부담 없이 와서 보라고 순종이 궁을 원으로 낮췄다지만 일제 정책에 굴복한 것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1924년 봄, 창경원에 처음으로 색등을 밝히고 밤 벚꽃놀이가 벌어졌다. 일본의 그것을 본뜬 것이었다.

1920∼30년대 옛날신문과 소설에도 창경원은 벚꽃 유락과 현란한 소풍의 명소로 등장한다. 1936년 4월25일 동아일보는 창경원 봄소식을 전하며 “금년도 시설로는 춘당지에 직경 약 12메틀(미터)의 장려한 네온사인 분수탑을 건립하야 오채(五彩)의 광파를 못 속에 비치게 할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이상 김유정의 작품들엔 맥고모자 쓰고 꽃잎이 꽃비가 돼 날리는 창경원을 거닌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일본이 패망하자 일본 곳곳에선 군국주의 상징처럼 된 벚나무를 베며 항의하는 소동이 일었다.

1980년대에 정부에서 '창경궁 복원 계획'을 세워 1983년 7월 1일부터 복원공사를 위하여 일반공개를 중단하였고, 그해 12월 30일에는 원래의 명칭인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1984년부터 1986년 8월까지 동물원과 식물원 시설 및 일본식 건물을 철거하고 문정전 등을 복원하였으며, 벚꽃나무도 소나무·느티나무·단풍나무 등으로 교체하고 한국 전통의 원림()을 조성하는 등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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