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16. 09:17


을축년 대홍수는 1925년 7월 7일부터 9월 초에 걸친 집중호우로 일어난 4차례의 큰 홍수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에 해당하는 약 1억300만원의 피해액을 냈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4회에 걸친 호우로 인하여 전국에서 사망자 647명, 가옥 유실 6363호, 붕괴 1만 7045호, 침수 4만 6813호의 피해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논 약 3200헥타르, 밭 약 6700헥타르 등이 유실돼 기상관측 이후 가장 피해가 큰 대홍수였다.


을축년 대홍수는 짧은 기간에 1년 치 강수량의 80%인 700-900mm의 비가 퍼부어 최대의 피해를 가져왔다.  당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호외를 발행했으며, 서울 송파구 근린공원에 1926년 희생자들을 추모한 을축년 대홍수비가 있다.

용산의 철도청 관사는 1층 천장까지 물이 찼고, 용산역의 열차가 물에 잠겼다. 또한 뚝섬의 제방이 무너지고 샛강이 생겨 신천(新川)이라는 지명이 생겼고,


http://www.focus.kr/view.php?key=2016081600083526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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