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 9. 21:42
미군 진주 1 (1945. 9. 8)
(브루스커밍스.존할리데이, 한국전쟁의 전개과정, 태암, 1989, 22)
해방된 한국에서 정치적 폭력으로 인해 죽은 첫번째 한국인 희생자. 9월 8일 미군이 상륙할 때 일본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는데 피살자는 아마도 그날 죽은 노동조합 지도자인 권병권이거나 평화운동 활동가인 이석구 중 하나일 것이다.
미군진주 2
(조선일보사, 감격과 수난의 민족사,1988, 24)
열차편으로 서울역에 도착, 시내로 들어오고 있는 미 7사단 32보병 연대. 주위의 삼엄한 경계로 행인은 보이지 않는다.
일장기하강
(서문당,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 하, 1987, 185)
1945년 9월 9일, 아베총독의 통치이양문서 서명과 동시에 서울에 진주한 미 7사단 32보병 연대가 총독부 광장의 계양대에서 일장기를 끌어내리고 있다.

성조기게양

(조선일보사, 감격과 수난의 민족사,1988, 25)
총독부 건물 앞에 걸렸던 일본기가 내려지고 미군악대의 연주속에 미군기 게양.
임정귀국
(4.7언론인회, 기자 25시, 1984, 29)
임정 요인들은 미군정의 뜻에 따라 개인 자격으로 1진이 1945년 11월 23일 귀국하였고, 12월 2일 귀국하였다. 사진은 임정요인 2진 귀국 기념(12월 3일). 앞줄 왼쪽에서부터 두번째가 조완구, 이시영, 김구, 김규식, 조소앙, 신익희, 뒷줄 왼쪽 두번째 황학수, 성주식, 김성숙, 김상덕, 유림, 조경한, 김봉준, 유동열, 김원봉.
모스크바삼상회의 왜곡 보도(1945.12)
(역사학연구소, 바로보는 우리역사 2, 거름, 144)
모스크바삼상회의를 왜곡 보도한 동아일보 1945년 12월 27일자 기사. 동아일보는 소련이 모스크바 결정안을 주도하여 한국에 대해 신탁 통치를 결정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는 한국 현대사의 최대 왜곡 보도였다고 할 수 있다.
신탁통치반대
(서문당,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 하, 1987, 204)
모스크바 삼상회담 결정 지지
(한길사,한국사-17, 1994, 26)
소집점호시의 국립 경찰(1946)
(브루스커밍스.존할리데이, 한국전쟁의 전개과정, 태암, 1989, 33)
친일경찰도표(1946.11)
(브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 상, 청사, 1986,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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