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 11. 22:54

졸업증서

1909년 일본제국주의 침탈로 조선의 운명이 다하고, 일본이 세운 학교에서 공부했던 학생의 졸업증서이다.
그러나이 증서에는 일제의 명치,대정,소화의 연호가 아닌 조선의 개국 연호(개국494년:1885년생)와 대한 제국의 연호(융희3년:1909년)를 사용하고 있어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조선의 흔적을 보는 듯 하다.

만국지리대요(萬國地理大要)

1902년에 발행되어 개항과 더불어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현 학교 교육제도로 개혁될 당시 개화기의 소학교에서 사용하였던 세계 지리교과서로서 최초의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초등소학(初等小學)

융희2년(純宗2년, 1908) 정인호가 편찬한 국한문 혼용 소학독본(小學讀本)이다. 대한제국이 문명국임을 내세우면서 역사.인물.지리.사회.과학.교양 등 다양한 주제로 내용을 해설하고 있다. 개화기 열강, 특히 일제 침탈로 조선 멸망의 직전에도 태극기를 날리며 대한제국의 위세를 떨치는 내용이 많은 것처럼 위의 대한전도에도 동해가 조선해로 표기되어 있다. 일제가 넘보지 못할 자긍심이 곳곳에 등등하다.

소년 (少年) 창간호

1908년 11월 l일 창간된 한국 최초의 월간 잡지이다. 한성(漢城) 신문관(新文館) 발행. 편집 겸 발행인인 최남선(崔南善)이 일본 유학의 꿈을 맺지 못하고 귀국하여 소년을 교도하기 위해 이 잡지를 창간하였다. 당시 사람들의 인식부족으로 창간호의 독자는 겨우 6명, 2호는 14명, 1년이 지났어도 200명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1909년 3월 1일 발행된 제2권 제3호에 실린 ‘이런 말삼을 들어 보게’가 국권회복에 관한 기사로 압수되는 등 여러 차례에 압수,발행금지가 되었고, 1911년 5월 15일 발행 제4권 제2호에 실린 박은식(朴殷植)의 <왕양명선생실기(王陽明先生實記)>로 인해 압수, 일제는 결국 《소년》지의 발행을 정지시켰다. 통권 23호로 끝난 이 잡지는 근대적 형식을 갖춘 잡지로는 한국 최초의 것이며, 톨스토이, 바이런 등 외국문학의 번역 소개하였다. 특히 창간호에 실린 최남선의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는 신체시의 효시로서 문학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자료 사진은 소년지의 겉표지,목차,광고,왕세자 이은과 이등박문 사진, 해에게서 소년에게 등 잡지의 앞부분에 실린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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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