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iti’s Earthquake: A Photo Gallery
http://www.nytimes.com/packages/html/photo/2010-haiti/index.html?hp#/0
http://news.sky.com/skynews/Home/video/Haiti-Many-Still-Without-Food-And-Water/Video/201001315529744?lpos=video_Article_Body_Copy_Region_0&lid=VIDEO_15529744_Haiti%3A_Many_Still_Without_Food_And_Water아라와크어로 '산이 많은 땅'이라는 아이티의 역사
1492년 컬럼버스가 그 땅에 오기전의 역사는 기록 없다.
16세기초 스페인 정복자가 들어 오면서 원주민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흑인 노예가 메운다.
1627년 이 땅을 차지한 프랑스는'생 도미니크'라 이름 붙였다. 18세기 말에는 50만의 노예가 봉사하는 프랑스 가장 부유한 식민지가 된다.
1804년 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독립을 쟁취한다.
흑인 노예들의 국가라는 이유로
국가 승인을 거부했던 미국은 19세기말부터 개입으로 정책을 바꿔 1888년 미 해병대가 군부 반란을 지원했다. 미국은 1915년 결국 아이티를 점령해, 1934년까지 통치했다.
2차대전 이후 아이티가 겪은 참상은 더욱 끔찍했다.
1957년부터 1971년까지 ‘파파 독’이라고 불린 프랑수아 두발리에 대통령 독재 치하에서 3만명이 살해됐다. 그의 사후에도 19살 아들인 ‘베이비 독’ 장클로드 두발리에가 세습해, 아버지의 공포정치를 이어갔다.
아이티에 군사·경제적 지원을 하던 미국은 결국 1986년 레이건 행정부 시절 베이비 독에압력을 넣어 하야시켰다.
1990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는 취임 몇달만에 쿠데타로 망명에 올랐고, 이 와중에서 1500명이 살해됐다. 미국으로 보트를 타고 가는 대규모 망명사태가 벌어져, 미국 정부가 봉쇄령을 내리기도 했다.
결국 미국의 주도하에 다국적군이 파견돼 군사정부를 축출하고 아리스티드를 다시 복위시켰다. 1년만인 2004년 다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수도로 진격하는데도, 미국은 아리스티드의 실각을 묵인했다.
빌 클린턴 시절 복위시켰던 아리스티드를 조지 부시 정권은 퇴짜를 놓은 것이다.
2008년에도 한달만에 4차례의 허리케인으로 아이티 국토 전역을 폐허로 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아이티에 대해서는 지속적이고 훌륭한 친선 정책의 역사가 없었다”는 폴 파머 주아이티 부대사를 인용하며, 미국이 구호에 손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이번 지진이 아이티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399425.html
.....
http://www.telegraph.co.uk/news/newsvideo/?bcpid=4464161001&bctid=61890872001
재앙의 순간
[##_1C|FEHOVVNILWKCTUXTUGWNWHKMBILACJ.|[##_1C|LYODWVAEOKPEVFZSCAYHOQOUKSIG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