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11. 16:17


http://www.euronews.net/nocomment/2010/04/13/warsaw-memorial-to-the-victims-of-the-presidential-plane-crash/

10일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과 정부 주요 관리들이 카틴 숲을 방문하려다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카틴 숲 사건'이 다시 한 번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됐다.

http://www.piedsnoirs-aujourdhui.com/avis0088.html



‘카틴 숲 학살사건’이란

the forest near the village of Gnezdovo, a short distance from Smolensk.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지난 1940년 독일과 비밀협정을 맺고 폴란드로 쳐들어간 러시아(옛 소련)의 비밀경찰(NKVD)이 폴란드인 전쟁포로와 시민들을 카틴 지역에서 대량학살한 사건을 가리킨다.

당시 소련 비밀경찰은 폴란드군 장교, 지식인, 예술가, 노동자, 성직자 등 사회지도층 인사 수천명을 살해한 뒤 암매장했다.


현재 가장 많이 받아들여지는 학살 인원은 2만2천명이다. 학살자들은 키틴 숲과 칼리닌, 카하라키브 교도소 등에서 처형됐다. 이 가운데 약 8천명 정도는 1939년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포로로 잡힌 병사들이다. 나머지 당시 처형된 폴란드인들은 “첩보원, 경찰관, 파괴활동가, 공장주, 법률가, 종교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학살사건은 1943년 수천여명에 이르는 폴란드인들의 사체가 카틴 숲 근처에 매장된 것을 밝혀내면서 알려졌다.

카틴 사건은 발생 당시에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으며 3년이 지난 1943년 당시 소련과 교전중이던 독일나치가 카틴 지역에서 4천100구의 시체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카틴 사건의 주동자인 스탈린은 "폴란드가 독립국으로 일어설 수 없도록 폴란드 엘리트의 씨를 말릴 것"을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http://www.piedsnoirs-aujourdhui.com/avis0088.html


독일은 당시 점령중이던 폴란드에서 이 학살 사건을 반소련 선전에 활용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서도 폴란드가 공산 소련 치하로 들어감에 따라 40여 년 간 폴란드와 소련에서는 카틴 사건에 대한 언급은 금기시돼 왔다.


2차대전 후 폴란드가 소련의 영향력 아래 놓였을 때, 소련은 이 학살사건이 독일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1989년 정권교체에 성공한 베웬사 정부는 이 학살이 소련에 의해 저질러진 것임을 분명히 했다. 1990년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이 이 학살에 대한 소련의 책임을 최초로 인정했고, 그 1년 뒤에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이 학살을 인정하는 공식문건을 공개했다.

러시아 당국은 카틴 사건과 관련해 보관 중인 문건 183건 가운데 67건 만을 폴란드 정부에 제공하겠다고 밝혔을 뿐 116건은 기밀을 이유로 공개를 꺼리고 있다.






미국도 1944년 카틴 숲 학살사건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조지 알 대위를 밀사로서 발칸반도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 대위는 이 학살사건이 소련이 저지른 것으로 결론을 냈으나,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이 조사결론을 공포하지 않았다. 알 대위는 자신의 조사를 공표할 수 있게 허가해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했으나,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것을 금지했다. 역사가들은 이에 대해 당시 미국이 소련과 함께 대 독일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상황이 프랭클린 대통령의 ‘은폐 결정’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2004년 러시아는 카틴 숲 사건과 관련해 보유하고 있는 기록을 폴란드에 제공하겠지만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이라 관련자 처벌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대량학살은 독일의 유대인 대량 학살을 일컫는 것이지 카틴 사건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폴란드는 대량 학살이 인류에 반한 범죄인 만큼 기소하는데 시효가 있을 수 없으며 살해 주동자를 색출해 법정에 세우겠다며 국가 기념 연구소(IPN)에서 진상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러시아 공산당은 카틴 숲 학살과 관련해 러시아 정부가 국가의 지정학적 이익과 역사적 진실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폴란드가 1920년 소련을 침공하고서 6만 명의 러시아 전쟁포로가 폴란드 감옥에서 숨진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역공격하며

의회 조사단을 통해 진상을 밝히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하면서 그 것이 사실이라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이라 관련자 처벌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폴란드는 러시아와의 진정한 협력을 위해서는 카틴 사건이 먼저 해결돼야 함을 강조해왔다.


특히 이번 사고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화해 모색을 위해 지난 7일 도널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를 카틴 숲 학살 사건 70주년 추모식에 초청한 지 3일 만에 발생한 것이어서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투스크 총리는 푸틴 총리가 카틴 숲 희생자를 함께 추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상징적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푸틴 총리는 러시아 정부를 강력히 비판해온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행사에 초대하지 않았다.


카친스키 대통령은 지난 2월 "폴란드의 최고 대표자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초대가 없더라도 카틴 숲을 방문할 것이라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이날 개별적으로 카틴 숲을 찾으려다 변을 당하고 말았다.


현재로선 단순 사고인 것으로 보이나 일각에서 음모론도 나오고 있는 것은 이러한 양국 관계와 특히 카친스키 대통령과 러시아와의 반목 때문이다.



학살현장 주변에는 몇 개의 폴란드인 공동묘지가 있지만, 상당수의 폴란드군 포로 무덤은 밝혀지지 않았거나, 파손된 채 방치돼 있다.


폴란드에서는 이 학살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가 2007년에 제작돼 이 사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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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