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냥'에 해당되는 글 486건

  1. 2010.02.24 2012 현상
  2. 2010.02.22 나눔에서 출발하자.
  3. 2010.02.14 복 많이 받으십시오.
  4. 2010.02.10 위기 마케팅
2010. 2. 24. 00:48

‘2012 현상’

EBS의 마야문명의 다큐를 보다 갑자기 요즈음 회자되는 종말론이 생각나 옮겨본다.


‘고대 마야문명의 달력이 기원 전 3114년 8월에 시작해 2012년 12월21일 끝난다’

‘태양계의 감춰진 행성 엑스(X)가 2012년 지구와 충돌한다’,

‘초강력 태양폭풍으로 지구의 급격한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을 재해석하면 종말은 1999년이 아니라 2012년이다.

최근 ‘2012'와 관련된 종말론이다.


최근 들어 자주 일어나는 기상이변과 지진, 테러, 경제위기 등 지구촌 차원의 재해들도 종말론 기승을 부추기고 있다. 무턱대고 믿을 수도, 그렇다고 안 믿기도 힘든 게 종말론이지만 뚜렷한 해답을 얻기도 어렵다.


미국에서는 지구 종말을 대비하기 위한 각종 콘퍼런스와 행사가 열리는가 하면, 휴대용 식수 정화기 등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단다.


미 항공우주국(NASA)가 이례적으로 지구 멸망설을 공식반박하는 성명까지 냈으나 효과는 별로 없다는 소식이다.


“종말론은 단지 우리 스스로가 현실화시키는 자기충족적인 예언에 불과하다.”며

지구 종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종말론도 지금까지 실현된 것은 없다.


차동엽 미래사목연구소 신부는 “기독교의 종말은 제한돼 있던 우주 질서가 새로운 차원으로 완성되는 때”라면서 “그 순간의 장면은 선인과 악인 간에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세간에 떠도는 종말론은 고통의 장면만을 흥미에 따라 확대한다고 차 신부는 지적했다.

그는 이를 “세상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낳은 파괴 욕망” 또는 “지구온난화, 이상기후 등 천재지변에 대한 확장적 상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독교 교리에 따른 올바른 종말 이해는 “그 날에 깨어 있으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전했다.


불교계에서는 종말론 유행 현상을 “도덕성 파괴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이해한다.


조계종 불학연구소 원철 스님은 종말론 유행이 지구 멸망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사후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현재 우리 삶에 충실해지자는 반성” 또는 “지적 문명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위기의식”이라고 분석했다.


김윤성 한신대 교수는 최근의 종말론은 일종의 ‘놀이’ 성격이 짙다고 했다.

그는 “종말은 여러 종교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지만 각 교단에서 주장하는 종말에 대한 반응은 다 다르다.”면서

“2000년 이전의 종말론은 세기 말과 얽혀 보편적 전환의식을 유발했지만, 최근에는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소비되고 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김 교수는 “종교가 현대사회에서 필수가 아닌 일종의 선택지 중 하나가 되면서 그 교리조차도 대중적 소비문화의 대상이 됐다.”면서 “종말론 유행은 현대사회의 종교 위상 변화를 보여주는 극단적 예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Planet X Nibiru Nasa 2012 Doomsday Info Leaked


Super Solar Storm 2012

Mayan Prophecy

'그저 그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념일인가?...  (0) 2010.02.28
내 이웃을 한 번 더 돌아보자.  (0) 2010.02.25
나눔에서 출발하자.  (0) 2010.02.22
복 많이 받으십시오.  (0) 2010.02.14
위기 마케팅  (0) 2010.02.10
Posted by qlstnfp
2010. 2. 22. 16:09

분노의 포도(영어: The Grapes of Wrath)


뉴욕 타임스 기자이자 소설가였던 존 스타인벡의 대표작이다.


1929년 10월에 미국의 주식 가격은 대폭락.

이어서 1930년대에는 ‘대공황’이라 불리는 극도의 경제적 불황이 미국 전역을 강타.

실업자가 양산(量産), 굶주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 난다.

1933년부터 2년 동안 거대한 모래바람이 미국 중서부와 서남부를 휩쓸어 대부분의 농경지와 곡물이 모래와 먼지로 뒤덮여 버렸다.


조드 일가는 가난한 생활을 깨끗이 청산해 버리고 물자가 풍부하다는 캘리포니아로 이주 아닌 패주를 한다.

다 망가진 고물 자동차를 끌고 일가의 열두 명 일행이....


탐욕스러운 할아버지와 병든 할머니는 이주해 가는 도중에 죽고 말지만, 매장할 경황도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캘리포니아에 도착했으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평화로운 생활이 아니었다.

질곡의 삶은 계속 된다.

용감하고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 마아조차도 이런 상황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절규할 만큼 그들의 생활은 비참한 것이었다.


그들이 거처하는 집이 홍수가 나는 바람에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아이를 사산한 딸 로저샨을 데리고....


"어서 가야지."

"자, 가긴 가는데 어디로 간다는 거지?"

"물이 안 차는 곳으로..... 이틀 동안이나 벌써 젖은 옷만 입고 있지 않았수?"

"어서 빨리 가야지."


길에서 비에 젖어서 꺼멓게 보이는 헛간 한 채를 본다.

"헛간 주인한테 내쫓기게 되면 그 땐 어떡한다?"면서도 갈 곳 없는 그들은 헛간을 향한다.


그 와중에도 들판에 홀로 피어 쪼글쪼글 시들어 비에 두들겨 맞은 제라늄 한 송이를 가지고 다툼을 한다.

"나에게도 하나 줘."하며 꽃을 뺏어 채려는 손이 빗나가는 순간 손바닥이 뺨을 후려친다.


"저 새끼가 내 꽃을 빼앗으려고 했지 뭐야. 자기가 찾으면 되잖아. 이건 내 거야."

주위의 강요에 꽃잎을 한 장 나누어 준다.


헛간에는 먹을 것을 아들에게만 먹여 굶어죽어 가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로저샨은 지친 몸을 간신히 일으켜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쇠잔하고 겁먹은 큰 눈을 한 사나이의 곁에 드러눕는다.


유방을 내놓으며 “먹어야 해요.”

사나이가 느릿느릿 고개를 가로저었다.

몸을 꿈틀거리며 더 가까이 다가가서 사나이의 머리를 끌어당겼다.

“자요 !”

“자 !”

그녀의 손이 사나이의 머리 뒤로 돌아가서 그것을 받쳤다. 손가락이 가만가만 사나이의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그녀는 눈을 들어 헛간 안을 들러보았다.


어떠한 고난이 닥치더라도 살아남는다는 줄기찬 생명력,

극한 상황에서도 위기의 극복과는 무관한 사소함에서의 내분,


결국 위기의 극복은 있는 자의 적선이 아니라 우리끼리의 나눔의 따뜻함에서 출발해야한다.

http://www.curtviews.com/2009/02/depression-era-movie-review-grapes-of_02.html


'Grapes of Wrath's' 'Beatific' ending at Pittsburgh Opera

http://community.post-gazette.com/blogs/classical/archive/2008/11/13/grapes-of-wrath-s-beatific-ending.aspx

'그저 그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이웃을 한 번 더 돌아보자.  (0) 2010.02.25
2012 현상  (0) 2010.02.24
복 많이 받으십시오.  (0) 2010.02.14
위기 마케팅  (0) 2010.02.10
정직 [正直]  (0) 2010.02.06
Posted by qlstnfp
2010. 2. 14. 00:51


'그저 그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 현상  (0) 2010.02.24
나눔에서 출발하자.  (0) 2010.02.22
위기 마케팅  (0) 2010.02.10
정직 [正直]  (0) 2010.02.06
Pantheon과 알베르 까뮤  (0) 2010.02.06
Posted by qlstnfp
2010. 2. 10. 22:57

흔들릴 때

조직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위기'라는 것을 사용하는 것을 '위기 마케팅'이라 하자.


외부에서 몰아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내부에서는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위기 극복시 까지 불만의 표출을 잠시 연기하자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공동체가 와해될 위기에서 반찬이 한 가지 줄었다고 불만을 표출하면 철없는 소리다.

위기극복에서는 '효율성', ' 위대한 결단'이 특효약으로 믿는 관습 아닌 신앙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까닭이다.


실제 위기의 징조가 있다면 위기를 미리 예방하거나 위기의 위협정도를 원천적으로 감소 시켜줄 수 있고 많은 경우 조직이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는 잇점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위기와 관련이 없는 사안까지 위기극복의 명분으로 이견의 표출을 봉쇄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실상 정치가들은 자신의 지위가 흔들릴 때 '위기'를 즐긴다.

없는 위기도 만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고 싶은 데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다는 겁박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말한 위기와 관련이 없는 것을 하고 싶은 데로 하고자 한다.

위기를 빌미로 모든 사안에 대한 반론의 표출이 힘든 틈을 이용하는 것이다.

반론을 이야기하면 '위기 탈출'을 방해한 반사회적 범죄가 되기 십상이다.


실제 위기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미한 것이었으면 지나고 나서 내가 위기를 극복했노라 자랑하면 되고

심각해서, 대처를 잘못해서 위기가 증폭했으면

상대의 비협조 탓이라 하거나

'최선을 다했음'을 강조하며 '불가항력'이라 주장하면 된다.

손해 볼것이 없다는 심산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거기에 내부결속을 강조하며 강압의 통치를 정당화, 장기집권의 필요성을 강조한 역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항상 위기 속에서 살아 온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기도 하다.



http://www.morganmclintic.com/pr/marketing/

http://beingyogendra.blogspot.com/2008/10/financial-crisis-cartoons.html

'그저 그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눔에서 출발하자.  (0) 2010.02.22
복 많이 받으십시오.  (0) 2010.02.14
정직 [正直]  (0) 2010.02.06
Pantheon과 알베르 까뮤  (0) 2010.02.06
당신 옆에 이런 사람이 있습니까?  (0) 2010.02.03
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