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6. 05:41

두려움 때문에 갖는 존경심만큼 비열한 것은 없다.

(Nothing is more despicable than respect based on fear.)-까뮤

Pantheon과 알베르 까뮤



알제리의 오랑 시에 페스트가 만연하자

오랑 시는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된다. 모든 것이 봉쇄된 한계 상황 속에서 역병을 더욱 기승을 부리고 시내는 커다란 혼란에 빠진다. 이 혼란을 틈타 돈을 벌려는 무리도 날뛴다.


페스트는 죽음, 병, 고통 등 인간의 본질적인 원리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의 온갖 종류의 부조리한 제도나 일을 상징한다.

카뮈는 인간 사회의 부조리 모형인 오랑시를 배경으로 하여

부조리로 인해 희생되는 인물들, 맞서 싸우는 여러 유형의 인간을 제시하여 인간이 어떠한 행동을 보이는가를 실험하고 있다.


사람들은 별다른 이유없이 페스트에 전염되고 허무하게 죽어간다. 작자 카뮈는 이러한 한계상황을 '부조리(不條理)'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무의미하게 죽어가는 일이야 말로 허무한 일이며, 용기있는 인간은 이에 맞서 싸울 줄 알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의사 리외와 지식인 타루는 혼란에도 불구하고 질병과 싸움을 벌이며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파리에 아내를 남겨 둔 채 아랍인의 생활상을 취재하러 오랑 시에 들렀던 신문사 특파원 랑베르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리외와 함께 페스트 퇴치 작업을 벌인다.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를 신의 형벌로 생각하고 기도에 전념하지만 결국 페스트에 감염되어 사망한다. 그리고 타루도 페스트에 희생되고 만다. 이어서 리외는 그의 아내도 병사했다는 전보를 받는다. 드디어 목숨을 걸고 페스트와 싸운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페스트는 완전히 퇴치되고 오랑 시는 해방의 기쁨에 휩싸인다. 열차는 다시 들어오고 랑베르의 아내도 오랑 시를 찾아와 그와 플랫폼에서 감격의 재회를 한다.


알베르 까뮤의 '페스트'의 대강 줄거리다.


지난해 사르코지 대통령이 "프랑스를 빛낸 인물들이 묻혀 있는 팡테옹에

<이방인>, <시지프 신화>, <페스트> 등을 써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1960년 1월 자동차 사고로 숨진 카뮈의 시신을 팡테옹으로 이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팡테옹(Panthéon 혹은 Panthéon de Paris)은 프랑스 파리 카르티에 라탱(Quartier latin) 지역에 있는 건축물이다.

원래 이 건물은 루이 15세가 자신의 병이 치유된 것을 신에게 감사하기 위하여 생트 준비에브(Saint Jenevieve) 교회로 지었으나

1759년에 건물의 완성무렵 프랑스혁명세력은 그리스어로 '신들을 모시는 궁전'이라는 뜻의팡테옹(Pantheon)으로 이름도 바꾸고 건물 입구에 있는 삼각형 부조 아래 ‘조국이 위대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라는 황금빛 명문을 새겨 ‘공화국 위인들의 묘지’로 삼았다.



안장된 첫 인물은 프랑스 혁명가 H 미라보 백작이었다.

<인민의 벗>을 쓴 중농주의 경제학자 V 미라보 후작의 아들인 그는 1791년 파리 시민의 인기를 업고 팡테옹에 안치됐다가 이내 왕실과의 뒷거래 사실이 드러나 3년 뒤 쫓겨났다. 첫 단추는 이상하게 채워졌지만, 루소와 볼테르가 이장되고 문호 위고와 졸라를 받아들이며 ‘공화국 위인들의 묘지’의 모습을 갖췄다.

유럽통합의 아버지 장 모네와 점자(點字)의 발명가 루이 브리유가 영면을 취하고,

자크 시라크 대통령 집권 당시에는 앙드레 말로(1996년), 알렉상드르 뒤마(2002년)의 유해도 이곳으로 이장됐다.


좌파는 우파인 사르코지가 카뮈를 '반항적 인간'을 쓴 작가의 삶을 왜곡해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기억의 억압’ 술책이라고 반발하고 아들과 딸도 부정적 견해를 밝히는 모양이다.


프랑스 역사학자 모나 오주프는 팡테옹에 대해 “프랑스인들 간의 충돌의 장소”라고 했다. “프랑스 대혁명의 원천적인 꼬리표가 결코 지워지지 않는 장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시 신드롬>을 쓴 앙리 루소는 “팡테옹의 유해 안치는 언제나 기억을 두고 벌이는 싸움을 야기했다”며 “팡테옹은 여전히 망각의 장소라는 또 다른 문제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결국 카뮈의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망각할 것인가

“현실의 모든 부조리에 반항하되, 그 반항의 기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카뮈가 잊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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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