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2. 18:11

"은궤와 귀한 책들 실었으면 나머지는 전부 불태워라"

2014-04-16 14:07CBS노컷뉴스 임기상 기자


[임기상의 역사산책 ⑱]초토화된 강화도…의궤약탈 사실도 몰랐다

http://m.nocutnews.co.kr/news/4008197


◈ 강도로 돌변한 프랑스군, 강화도를 약탈하다 




1866년 10월 16일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군함 7척이 강화도 앞에 출현했다. 

프랑스군은 프랑스 신부 9명을 극형에 처했다는 이유로 보복하러 왔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내심 보물을 약탈하기 위해 침입한 것이다. 

먼저 선제 포격을 한 후 극동함대의 병력이 강화도에 상륙했다. 

이들은 큰 저항없이 관아와 행궁을 점령했으나 곧 자신들이 포위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점령했다는 보고를 받은 조선 조정은 먼저 이경하를 순무사로 삼아 강화도가 내려다보이는 문수산성에 병력을 집결했다. 

조선군 동태를 파악하러 온 프랑스군 정찰대는 공격을 받아 전사자 3명,부상자 2명을 내고 퇴각했다. 

조선군은 이어 강화도 정족산성으로 잠입해 전등사에 진을 쳤다. 

양헌수가 이끄는 강계 출신의 포수 500명이 프랑스군을 기다렸다. 

프랑스군은 다시 108명의 보병 정찰대를 보냈으나 매복에 걸려 맹렬한 사격을 받아 29명의 부상자를 내고 캠프로 돌아갔다. 

로즈 제독은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다음날인 11월 11일 강화도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문화강국의 국민이라는 프랑스인들이 떼강도로 돌변하게 된다. 

◈ 불타오르는 조선행궁과 관아건물...재로 변한 외규장각 도서 5천여책 






중국에 돌아온 뒤 로즈 제독은 해군성 장관에게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보낸다. 

"즉시 모든 국가 소유물을 파괴하기 시작했고,200여 척의 정크선박을 침몰시켰습니다. 
임금의 저택과 관아가 남아 있었는데,이 관아의 일부는 우리 군인들이 거처로 사용하고 있어 제일 마지막에 파괴했습니다. 
본인은 계획대로 10일과 11일 강화읍 관아의 파괴를 마치고 모두 선박에 올라 일상의 업무로 돌아왔습니다" 

프랑스군은 조선의 역사가 담긴 건물들을 불태우기 전에 금은보화를 찾기 위해 이잡듯이 뒤졌다. 

먼저 관아 건물 깊숙한 곳에 보관돼 있는 은괴 19상자를 찾았다. 

더 이상 보물이 나오지 않자 이번에는 외규장각의 서고도 뒤졌다. 

다시 로즈 제독의 보고서를 보자. 


"겉으로 보기에 꽤 가난해 보이는 강화읍은 각하에게 보내드릴 만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조선 국왕이 간혹 거처한다는 저택에는 아주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수많은 서적들로 가득 찬 도서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공들여 340권을 수집했는데, 기회가 되는대로 프랑스로 보내겠습니다" 

거의 해적 부하들이 두목에게 보내는 서신 수준이다. 

프랑스군은 은괴 상자와 외규장각의 중요 도서,족자 등을 배에 실은 뒤 관아 건물과 그 옆의 별궁,외규장각을 모조리 파괴하고 불을 질렀다. 

순조 때 기록에 따르면, 외규장각에 보관 중인 책이 약 1천여종,6천책이었다니,그들이 강탈한 200종 340책을 빼고는 모두 불길에 사라진 것이다. 


◈ 한 통의 편지...파리국립도서관에서 잠자는 외규장각 도서를 깨우다 





1990년 봄 규장각도서 관리실. 

아침에 출근한 이태진 관리실장은 책상 위에 한 장의 협조 공문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통령 비서실이 접수한 편지가 첨부되어 있었다. 

프랑스에 있는 박병선 박사가 노태우 대통령 앞으로 보낸 편지였다. 

파리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인 외규장각 도서 중 의궤 자료들에 대한 연구작업을 마쳤는데 국내 출판을 도와달라는 건의서였다. 

외규장각과 의궤가 무엇인가? 

외규장각은 정조대왕이 1782년 강화도에 설치한, 왕립도서관 격인 규장각의 부속건물인데,아쉽게도 프랑스군이 태워버렸다. 

의궤는 왕실에서 열린 각종 행사나 궁궐의 신축과 보수가 있을 때마다 자초지종을 기록해 후세에 같은 일이 열리면 참고하도록 편찬한 저서이다. 

이태진 실장은 이 일은 규장각 도서를 관리하는 서울대가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다. 


박병선 박사가 정리한 외규장각 도서 현황은 서울대의 지원으로 국내에 출판되었고, 이 책을 토대로 반환운동이 시작되었다. 

◈대통령이 도서 반환을 지시하고, 국립도서관과 사서들은 집단 반발하고.... 


1993년 9월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방한할 때 2권의 조선왕실의궤를 들고 왔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에게는 '맛보기'로 1권의 의궤만 전달되었다. 

수행한 도서관 사서 2명의 반발에 부딪쳐 1권은 주지 못한 것이다. 





환영 만찬에서 미테랑 대통령은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 고문서는 프랑스 해군이 전쟁 중에 가져왔는데,이제 한국으로 되돌려주는데도 전쟁을 해야 할 형편입니다" 

불길한 전조였다. 

프랑스는 비싼 값에 TGB(떼제베 고속열차)를 팔고도 거래가 끝나자 태도를 돌변했다. 

사서 두명은 귀국하자마자 사표를 제출하고, 국립도서관들은 의궤 반환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집단 휴관하고... 

이들은 한국이 반환을 요청한 299권의 외규장각 도서를 문제삼은 게 아니라 대통령이 전달한 단 한권의 책 때문이었다. 

명분은 문화재는 어디에 있든 잘 관리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를 지켜 본 박병선 박사는 분노했다. 

"관리는 무슨... 내가 책들을 찾았을 때는 중국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100년 가까이 도서관 파손 창고에 나딩굴고 있었다. 
내가 그 중요성을 보고하자 그제서야 창고에서 꺼내 수리하고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연구도 145년 동안 박병선 박사가 출간한 두 권의 책 외에는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양국 정부간의 지리한 협상 끝에 '소유권은 프랑스가 갖되 5년간 빌려주면서 기간을 연장한다'는 어정쩡한 방식으로 마무리했다. 

우리 것이 아니니 소장인도 못 찍고 지방전시도 할 수 없다. 

프랑스가 관리를 소홀히 한다고 기간 연장을 거부하면 속수무책으로 뺏기게 된다. 

프랑스가 약탈한 도서는 340책이다. 

이번에 돌아온 것이 297책이니 나머지 43권은 어디에 있나? 

◈ 145년만의 귀환...그 높은 문화수준에 반하다 




우여곡절 끝에 외규장각 도서가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1년 7월 19일부터 9월 18일까지 으뜸홀에서 '145년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을 열었다. 

이날 처음 공개된 의궤를 본 시민들은 특히 그 재질의 우수성에 감탄했다. 




의궤들을 처음 보았을 때 모두 금방 만들어진 것처럼 깨끗해서 놀랐다. 

흰 종이의 질감이 빳빳해 그 위에 찍힌 붉은 괘선이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최고급의 종이에 정성 들여 글씨를 쓰고 아름다운 색깔의 그림을 그린 다음 암녹색 비단으로 표지를 싸서 놋쇠 물림으로 묶은 이 조성 왕실 어람용 의궤는 세계 출판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프랑스가 소유권을 갖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 340책은 언젠가 우리 소유로 돌아올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기록물은 소유권이 변동될 수 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