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鴨鷗亭
조선조 때 세도가 한명회(韓明會)의 정자 이름이다. 정확히 오늘날 압구정동 산 301번지 3호 언덕바지에 있었다. 동호대교 남쪽 끝자락의 뚝섬 쪽으로 돌출한 벼랑 위였으니 구정(鷗亭)초등학교 뒤쪽 현대아파트 74동자리쯤 될 것 같다.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를 옹립하는 데 공을 세운 한명회의 권세는 하늘을 찔렀다. 두 딸을 예종과 성종의 왕후로 만들고, 자신은 영의정까지 올랐다.
시체 말로 실세 중의 실세다.
한명회는 한강 가에 자신의 호를 딴 정자 압구정과 별장을 지었다. 한명회는 73세까지 이곳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여생을 보냈다.
‘친할 압(狎)’과 ‘갈매기 구(鷗)’ 곧, ‘벼슬을 버리고 강촌에 묻혀 갈매기와 친한다’는 뜻의 정자다.
압구정의 잔치에는 수령, 방백들이 보낸 선물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친해보고자 했던 갈매기는 한명회의 기심(欺心: 자기의 양심을 속임)을 알았던지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아 ‘친할 압(狎)’ 대신 ‘누를 압(押)’자를 써서 ‘압구정(押鷗亭)’으로 비아냥돼 불러지기도 했다.
이 압구정은 한명회의 의도대로 갈매기와 친하지도 못했고 또, 새가 날아오지도 않았으므로 ‘구(鷗)’자에서 새(鳥)를 빼면 ‘압구(狎區)’가 되었다.
‘임금이 하루에 세번씩/ 은근히 불러보아 총애가 흐뭇하나/ 정자가 있으되 와서 노는 주인 없구나/ 가슴 가운데 기심만 끊어졌다면/ 비록 벼슬바다 앞이라도/ 갈매기와 친압(親狎)할 수 있으려만’ 최경지(崔敬止)라는 선비가 한명회의 위선과 부귀를 풍자한 글이다.
한명회는 별장 현판에는 시를 적었단다.
‘청춘엔 사직을 붙들고, 늙어서는 강호에 누웠네.’(靑春扶社稷 白首臥江湖)
백성들에겐 눈꼴신 일이었지만, 목숨을 부지하려면 침묵할 도리밖에 없었다.
썩은 세상을 조롱하며 강호를 떠돌던 매월당 김시습의 눈에 어느 날 이 시구가 들어왔다.
그는 시구의 부(扶)를 危(위)로, 와(臥)를 오(汚)로 고쳐 써서
‘젊어서는 사직을 위태롭게 하고,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힌다’
(靑春危社稷 白首汚江湖)는 뜻으로 바꿔버렸다.
여론을 의식한 한명회는 김시습을 어찌하지 못하고 속만 끓이다가 결국 현판을 떼어버렸다.
할 말이 많아도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있다. 외길에서 불량배를 만났을 때처럼, 우리는 입이 주먹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알고 있다. 그건 몸이 아는 두려움이다.
요즈음은 한명회(韓明會)만큼의 인물도 그리울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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