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30. 06:11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 Ernest Thomas Bethel, 한국명: 배설, 裵說, 1872년 ~ 1909년 5월 1일)은 영국 출신의 기자이다.
그는 열여섯부터 서른둘까지 16년을 일본에서 살면서 무역상을 하다 1904년 3월 10일 러일전쟁이 터지자 런던 데일리 크로니클 특파원으로 대한제국에 왔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해 보도하던 그는 데일리 크로니클을 사직하고 1904년 7월 18일부터 한국인 양기탁과 함께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영문판)를 발행하고, 1905년 국한문한을 발행하였다.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던 대한매일신보에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등이 모여들어 일본을 통렬히 비판했다. 1907년 대한매일신보의 발행부수는 1만부를 넘어 최대 신문사가 되었다.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1910년까지 여섯 해 동안 일본에게 침략당하는 조선의 실상을 알렸다.
통감부는 동맹국이던 영국에 압력을 가하여 베델은 1907년 10월과 이듬해 6월 두 차례나 재판정에 서야했다. 두 번째 재판에서 영국 판사 본(F.S.A Bourne)에 의해 3주 금고형을 선고받은 그는 상하이로 압송되었고 그 곳에서 형기를 마쳤다. 평소 독한 브랜디와 담배를 즐기던 베델은 재판 스트레스가 겹쳐 건강이 나빠졌고 1909년 5월 1일 심장확장증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죽으면서 양기탁의 손을 잡고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1904년 7월18일 창간 당시 〈대한매일신보〉 편집국에서 일하고 있는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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