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1. 19:41

어떤 사람의 생애를 만나러 가는 길, 먹구름이 몰려다니다가 간혹 비를 뿌린다. 그의 집 마당이 천천히 젖는다. 그 사람이 태어난 집에 그는 없고, 집은 아득하게 홀로 서 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웃음이 가슴을 먹먹하게 적신다. 꼭 한 번쯤은 풍경의 깊이가 아닌 사람의 내면을 대면하러 떠나는 길도 괜찮겠다.


 밥이 하늘이었던 시절 숟가락으로 깡통을 치며 낮은 자리의 장단을 완성했던 사람이 있다. 그 장단 안에는 때로 분노가 담겼고, 삶의 역설 같은 풍자가 스몄다. 사실 그 장단이 진정으로 겨냥했던 것은 가슴 뭉클한 해학이었다. ‘천사들의 웃음’이었던 장단의 시초가 전남 무안군 일로읍 의산리에 있다. 일로역에서 동남쪽으로 무안 중학교를 지나 인의산을 가는 길목인 밤나무골 공동묘지 아래가 天使村(일명 걸인촌)이다.



어느해인가 한해가 들었는데 이곳 일로에만 유독히 걸인들이 모여들어 주민 대표들이 모여 "어찌 한해가 들었는데 이곳으로만 모여드느냐?"고 불평했더니, "타향에서 괄세 받고, 푸대접 받다가 이곳 일로에 오니 문전박대 않고 한 끼니만 있어도 나누엊는 지라, 고향에 온 기분으로 떠나지 않고 눌러 앉았다."고 걸인들이 대답하니 주민들은 오히려 그들의 사정을 불쌍히 여겨 더욱더 도와준 후로 천사촌이 이루어졌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품바’는 무안 일로읍 의산리 천사촌에서 시작한다. 그 땅에서 판자를 잇대고 거적때기로 지붕을 덮어 살았던 걸인들의 삶이 ‘품바’다. 그 걸인들의 아버지였던 사람 천장근은 연극 ‘품바’의 근원이다.



 천사촌의 하늘이었던 사람 천장근. 그의 본명은 천팔만이었고, 김작은이나 천작은으로도 불렸다. 많은 이름은 심상치 않은 이력 탓이다. 그는 일제 때 목포에서 부두 노동자로 일하다가 일본으로 실려 나가는 공출미에 반발하며 파업의 배후가 됐다. 그 사건으로 수배를 받아 도망자로 살았으며 이름을 수없이 바꿨다. 걸인 복장으로 곳곳을 떠돌다 그는 일로 천사촌에 자리를 잡았다. 왜 거기였을까?


 “옛날부텀 원래 일로가 인심이 좋아. 걸인들을 괄시하지 않고 한 끼니만 있어도 나눠주고 했제. 근께 천장근이 그 냥반이 거지꼴로 일본 순사들 피해 댕기다가 일로를 고향 삼아 눌러 앉저분 것이제.”


천장근. 그가 천사촌에 터를 잡자 수많은 걸인들이 그를 중심으로 뭉쳤다. 걸인들은 제 입만 구하지 않았다. 동냥한 음식으로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나 병든 노인을 데려와 보살피는 일로 나눔을 실천했다. 천장근의 동냥 철학은 아름다웠고, 천사촌의 규모는 자꾸 늘어났다. 100명도 넘는 걸인들이 자리를 구했고, 천사촌은 걸인들의 나눔 공동체가 됐다.


 천장근의 철학은 엄격한 규율을 세우는 것으로 완성됐다. 그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동냥을 하지 못하도록 했고, 부녀자를 희롱하는 자는 얼굴만 내놓고 모래에 묻었다. 반대로 인심을 얻지 못한 부자집이나 양반네들은 가시 담긴 타령으로 비꼬았다. 동냥으로 아름답게 세월을 건너갔던 천사촌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은 박정희 정권 때다. 주민등록법이 발효되면서 걸인들이 어쩔 수 없이 연고지를 찾아 떠났다. 그 무렵 구걸도 금지되면서 천사들은 소멸했다.

천장근...그도 땅꾼, 막노동꾼으로 지내며 1972년 60여세로 타계하였으며 현재 외동딸과 외손자 7명만이 있으며 직계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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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