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verend Corwin & Nellie Taylor Collection
http://www.usc.edu/libraries/archives/arc/libraries/eastasian/korea/resources/kda4.php
이화학당은 1886년(고종 23) 해외여성선교회에서 파견된 메리 F. 스크랜튼(Mary F. Scranton)이 서울 황화방(皇華坊), 지금의 중구(中區) 정동(貞洞)에 설립한 한국 최초의 사립여성교육기관이다. 제1대 당장인 스크랜튼의 교육이념은 기독교 교육을 통하여 한국여성들을 ‘더 나은 한국인으로 양성하는 것’, 즉 한국인의 긍지와 존엄성을 회복하고 진정한 한국인을 육성하는 것이었다.
이듬해인 1887년 2월에는 고종황제가 외아문을 통해 ‘이화학당(梨花學堂)’이라는 교명과 현판을 하사하였다. 이는 조선의 사액서원에 비견되는 것으로서 이화학당이 국가로부터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최초의 근대식 여학교임을 의미한다. 이화라는 교명은 ‘배꽃같이 순결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열매를 맺으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한 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이화학당은 점차 학제를 정비하여 1904년에는 중등과를, 1908년에는 보통과와 고등과를 신설함으로써 마침내 보통·중등·고등과정의 일관된 학제를 마련하였다. 이화가 중등과를 먼저 설치한 것은 이화의 교육이 여성의 고등교육을 지향해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교사 양성이 시급했던 당시의 사회적 요구를 수렴한 것이었다. 이화학당은 1908년 6월 5명의 제1회 중등과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1910년에는 4년제의 대학과를 설치하여 1914년 4월 신마실라·이화숙·김애식 등 한국 최초의 여대생을 배출하였다.
아울러 1914년에 이화유치원을, 1915년에 유치원사범과를 차례로 신설하고, 1917년에는 중등과를 대학예과로 개편하였다. 또한 1918년에 보통과와 고등과를 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로 분립개교하였고, 1925년에 대학과와 대학예과를 이화여자전문학교로 개편하였으며, 1928년에 유치원사범과를 이화보육학교로 독립하였다. 이렇듯 이화학당 내에 있던 각급 교육기관들이 독자적인 발전을 추구하면서 독립된 학제로 운영됨에 따라 1928년에 ‘이화학당’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폐기되었으나, 친근하고 익숙한 ‘학당’이란 칭호가 계속 사용되었다.
[출처] 이화학당 [梨花學堂 ] | 네이버 백과사전
Lower Grade Girls, Ewa Haktang School, Seoul
Higher Mathmatics
College Graduates, Ewa Haktang, 1914
Ewa Haktang Recitation Hall
Wreath Drill at Ewa Haktang
Girls of Ewa Haktang Girls' High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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