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 쓴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350건

  1. 2010.02.09 문화재 반환
  2. 2010.02.08 2.8 독립선언
  3. 2010.02.07 비꼬는 이야기
  4. 2010.02.06 숭례문
2010. 2. 9. 00:25

1910년 일본의 한국강점후 조선 총독부를 통해 일본에 유출된 것으로 보이는 조선왕실의궤(朝鮮王室儀軌), 역대왕의 경연(経筵)에 사용되었던 자료를 한국에 반환할지를 검토하고 있단다.


일본에 유출된 다른 한국의 문화재의 문제도 있어 신중하게 결론을 내릴 방침이란다.


11 일 서울에서 있을 한일 외교 장관 회담과 관련된 보도다.

http://www.asahi.com/international/update/0208/TKY201002080302.html


조선왕실의궤는 왕실의 주요의식과 행사의 준비과정 등을 상세하게 적고 그림으로 만든 문서이다.


의례가 되풀이되는 왕실에서 의례의 본보기를 만들고 후대에 전하고자 나라에서 직접 체계적으로 정리한 기록문서로서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자랑스런 한국민족의 문화유산이다.


이 의궤는 1913년 불법 반출된 조선왕조실록과 마찬가지로 오대산 사고에 보관돼 오다가 1922년 일본의 조선 점령 이후 조선총독부에 의해 일본으로 불법 반출됐다.


월정사가 참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일본을 대상으로 왕실의궤 반환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월정사에서는 일본국을 피고로 하여 의궤반환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


국회에서도 `일본 소장 의궤 반환 촉구 결의안'을 채택한 17대에 이어 이번에도 같은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는 2008년 한일외무회담을 통해 국내 사정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반환을 요구한 바 있다.



1970년 11월14일 제16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에는 “외국 군대에 의한 일국의 점령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강제적인 문화재의 반출과 소유권의 양도는 불법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 궁내청에 보관중인 왕실의궤는 이 유네스코 협약에 위반되는 불법 반출 문화재다.

http://www.kwnews.co.kr/nview.asp?s=601&aid=210020700154&t=

'옮겨 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편한 진실  (0) 2010.02.12
Greek Crisis  (0) 2010.02.12
2.8 독립선언  (0) 2010.02.08
비꼬는 이야기  (0) 2010.02.07
숭례문  (0) 2010.02.06
Posted by qlstnfp
2010. 2. 8. 19:23

동경유학생들은 이미 한말 때부터 대한흥학회를 조직하고, 학회지 ≪대한흥학보≫를 간행하여 국내에 배포하는 등 애국개화운동에 기여하였으며,

1910년 망국 이후에는 조선유학생학우회·조선기독교청년회·조선학회·조선여자친목회 등 자치단체를 조직하여 회원의 애국사상을 고취하였다.


특히 조선유학생학우회는 1912년 10월에 조직되어 동경유학생 전원이 자동 가입되었으며, 회지 ≪학지광(學之光)≫을 발간하는 한편, 웅변·토론·강연·졸업생축하회·신입생환영회 등의 모임을 열어 회원의 애국사상을 고취하여왔다.


재일유학생들이 한국의 독립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부터라고 하겠으나,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게 된 직접적인 자극은 1918년 1월 종전을 앞두고 미국 대통령 윌슨이 발표한 평화원칙 14조와 그 해 11월에 성립된 제1차세계대전의 휴전조약으로부터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유학생들에게 고무적이던 보도는 1918년 12월 15일자 ≪저팬 애드버타이저 The Japan Advertizer≫(神戶에서 영국인이 발간한 영자지)에, <한국인, 독립을 주장 Korea, Agitate for Independence>이라는 제하에 미국에 있는 한국인들이 독립운동에 대한 미국의 원조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미국정부에 제출하였다는 기사와, 12월 18일자 <약소민족들 발언권 인정을 요구>라는 기사에서 뉴욕에서 열린 세계약소민족동맹회의 2차연례총회가 파리강화회의 및 국제연맹에서 약소민족의 발언권을 인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보도였으며, 아울러 한국대표가 이에 포함된 사실까지 알려주었다.


이 보도에 접한 재일유학생들은 1919년 1월 6일 동경 간다(神田)에 있는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웅변회를 열어 "오늘의 정세는 우리 조선민족의 독립운동에 가장 적당한 시기이며, 해외의 동포들도 이미 실행운동에 착수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마땅히 구체적 운동을 개시하여야 한다."고 결의하고 실행위원으로 최팔용·서춘·백관수·이종근·송계백·김도연 등 10명을 선출하였다. 실행위원들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이를 일본정부가 각국 대사공사 그리고 일본 귀족원·중의원 양의원에 보내기로 결의하고 1월 7일 청년회관에서 회원 약 200명을 모아 실행위원의 결의사항을 보고하고 만장일치의 동의를 얻었다.



실행위원 중 전영택이 신병으로 사퇴하자 북경으로부터 서울을 거쳐 동경으로 온 이광수·김철수를 새로 추가하여 11명의 실행위원이 먼저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고 독립선언서를 기초하였다. 기초위원으로는 백관수·김도연·이광수를 선출하였으나, 실제 문안작성은 이광수가 전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완성된 선언서 초안 한 부는 송계백과 최근우에 의하여 국내에 반입되었고, 중앙학교 현상윤·송진우·최남선·최린 등이 이를 받아보고 흥분하였다는 것이다. 최팔용은 1919년 2월 7일 일문으로 된 <민족대회소집 청원서>를 동경 시바구(芝區) 고야마정(小山町)에 있는 이토인쇄소에서 1,000부를 인쇄하고, <독립선언서 부(附)결의문>은 국문·일문·영문이 있었으므로 7일밤 김의술 집에서 국문·일문을 등사판으로 밀고 영문은 타자를 쳐서 이튿날 아침 10시 이들 청원서와 선언서를 먼저 우편으로 동경주재 각국 대사관·공사관과 일본정부의 각 대신, 일본 귀족원 중의원, 조선총독 및 각 신문사로 보내고, 오후2시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유학생대회를 열었다. 그리하여 600여 회원의 환호 속에 역사적인 <2·8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다. 동경유학생의 거의 전원이 모인 이날의 독립선언회의에서 유학생들은 독립실행방법을 토의하려 하였으나 관할 니시간다(西神田) 경찰서장이 강제해산을 명령하여 실행위원 10명이 붙잡혔다. 그러나 이광수는 이미 1월에 중국으로 떠난 상태였다. 2월 12일 유학생 1000여명이 다시 히비야공원에 모여 이달(李達)을 회장으로 추대하고 <독립선언서>를 재차 발표하려 하였으나 이달 등 13명이 붙잡혀 해산되고 말았다. 23일에는 또 변희용·최재우·장인환 등 5명이 조선청년독립단 민족대회촉진부 취지서를 인쇄하여 역시 히비야공원에 배포하고 시위운동을 벌이려 하였으나 배포 도중에 붙잡혔다. 3·1운동이 일어난 뒤에는 조선독립단 동맹휴학촉진부가 결성되어 유학생들이 동맹휴학운동을 벌였으며, 고국으로 돌아가 3·1운동에 참여하는 학생도 많았다. 일제의 통계에 따르면, 1919년 2월 8일부터 5월 15일까지 재일유학생 359명이 귀국하였다는 것이며, 그 중 127명이 서울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http://www.dalgu.net/55815/w-02.htm

http://unibelief.tistory.com/104






全朝鮮靑年獨立團은 我二千萬朝鮮民族을 代表하여 正義와 自由의 勝利를 得한 世界 萬國의 前에 獨立을 期成하기를 宣言하노라.


四千三百年의 長久한 歷史를 有하는 吾族은 實로 世界最古 文明民族의 一이라 비록 有時乎支那의 正祖을 奉한 事는 有하였으나 此는 朝鮮皇室과 支那皇室과의 形式的外交的關係에 不過하였고 朝鮮은 恒常 吾族의 朝鮮이오 一次도 統一한 國家를 失하고 異族의 實質的支配를 受한 事 無하도다. 日本은 朝鮮이 日本과 脣齒의 關係가 有함을 自覺함이라 하여 一千八百九十五年 日淸戰爭의 結果로 日本이 韓國의 獨立을 率先承認하였고 英·美·法·德·俄 等 諸國도 獨立을 承認할 뿐더러 此를 保全하기를 約束하였도다. 韓國은 그 恩義를 感하여 銳意로 諸般改革과 國力의 充實을 圖하였도다.


當時 俄國의 勢力이 南下하여 東洋의 平和와 韓國의 安寧을 威脅할 새 日本은 韓國과 攻守同盟을 締結하여 日俄戰爭을 開하니 東洋의 平和와 韓國의 獨立保全은 實로 此 同盟의 主旨와 韓國은 더욱 그 好誼에 感하여 陸海軍의 戰上援助는 不能하였으나 主權의 威嚴까지 犧牲하여 可能한 온갖 義務를 다하여서 東洋平和와 韓國獨立의 兩大 目的을 追求하였도다. 及其 戰爭이 終結되고 當時 美國大統領 루스벨트氏의 仲裁로 日俄間에 講和會議開設될 새 日本은 同盟國인 韓國의 參加를 不許하고 日俄兩國代表者間에 任意로 日本의 韓國에 對한 宗主權을 議定하였으며 日本은 優越한 兵力을 持하고 韓國의 獨立을 保全한다는 舊約을 違反하여 暗弱한 當時 韓國皇帝와 그 政府를 威脅하고 欺罔하여 「國力의 充實함이 足히 獨立을 得할 만한 時期까지라」는 條件으로 韓國의 外交權을 奪하여 此를 日本의 保護國을 作하여 韓國으로 하여금 直接으로 世界列國과 交涉할 道를 斷하고 因하여 「相當한 時期까지라」는 條件으로 司法, 警察權을 奪하고 更히 「徵兵今實施까지라」는 條件으로 軍隊를 解散하며 民間의 武器를 押收하고 日本軍隊와 憲兵警察을 各地에 遍置하며 甚至에 皇宮의 警備까지 日本警察을 使用하고 如此히 하여 韓國으로 하여금 全혀 無抵抗者를 作한 後에 多少 明哲의 稱이 有한 韓國皇帝를 放逐하고 皇太子를 擁立하고 日本의 走狗로 所謂合倂內閣을 組織하여 秘密과 武力에 裏에서 合倂條約을 締結하니 玆에 吾族은 建國以來 半萬年에 自己를 指導하고 援助하노라 하는 友邦의 軍國的野心에 犧牲되였도다.


實로 日本은 韓國에 對한 行爲는 詐欺와 暴力에서 出한 것이니 實上 如此히 偉大한 詐欺의 成功은 世界興亡史上에 特筆할 人類의 大辱恥辱이라 하노라. 保護條約을 締結할 時에 皇帝와 賊臣안인 幾個大臣들은 모든 反抗手段을 다하였고 發表後에도 全國民은 赤手로 可能한 온갖 反抗을 다하였으며 司法, 警察權의 被奪과 軍隊解散時에도 然하였고 合倂時를 當하여는 手中에 寸鐵이 無함을 不拘하고 可能한 온갖 反抗運動을 다하다가 精銳한 日本武器에 犧牲이 된 者가 不知其數며 以來 十年間 獨立을 恢復하려는 運動으로 犧牲된 者, 數十萬이며 慘酷한 憲兵政治下에 手足과 口舌의 箝制를 受하면서도 曾히 獨立運動이 絶한 적이 없나니 此로 權하여도 日韓合倂이 朝鮮民族의 意思가 아님을 可知할지라.


如此히 吾族은 日本軍國主義的 野心의 詐欺暴力下에 吾族의 意思에 反하는 運命을 當하였으니 正義로 世界를 改造하는 此時에 當然히 匡正을 世界에 求할 權利가 有하며 또 世界改造에 主人되는 美와 英은 保護와 合倂을 率先承認한 理由로 此時에 過去의 舊惡을 贖할 義務가 有하다 하노라. 또 合倂以來 日本의 朝鮮統治政策을 보건대 合倂時의 宣言에 反하여 吾族의 幸福과 利益을 無視하고 征服者가 被征服者에게 對하는 古代의 非人道的政策을 應用하여 吾族에게는 大小政權, 集會結社의 自由, 言論出版의 自由를 不許하며 甚至어 信敎의 自由, 企業의 自由까지도 不少하고 拘束하며 行政 司法 警察 等 諸機關이 朝鮮民族의 人權을 侵害하며


公利에 吾族과 日本人間에 優劣의 差別을 設하며 日本人에 比하여 劣等한 敎育을 施하여써 吾族으로 하여금 永遠히 日本人의 被使役者를 成하게 하며 歷史를 改造하여 吾族의 神聖한 歷史的, 民族的 傳統과 威嚴을 破壞하고 凌侮하며 小數의 官吏를 除한 外에 政府의 諸機關과 交通, 通信, 兵備諸機關에 全部 或은 大部分 日本人만 使用하여 吾族으로 하여금 永遠히 國家生活의 智能과 經驗을 得할 機會를 不得케 하니 吾族은 決코 如此한 武斷專制不正不平等한 政治下에서 生存과 發展을 亨受키 不能한 지라 그뿐더러 元來 人口過剩한 朝鮮에 無制限으로 移民을 奬勵하고 補助하여 土着한 吾族은 海外에 流離함을 不免하여 國家의 諸機關은 勿論이오 私設의 諸機關에까지 日本人을 使用하여 一邊 朝鮮人으로 職業을 失케 하며 一邊 朝鮮人의 富를 日本으로 流出케 하고 商工業에 日本人에게는 特殊한 便益을 典하여 朝鮮人으로 하여금 産業的 發興의 機會를 失케 하도다. 如此히 何方面으로 觀하여도 吾族과 日本人과의 利害를 互相背馳하며 背馳하면 그 害를 受하는 者는 吾族이 吾族은 生存의 權利를 爲하여 獨立을 主張하노라.


最後에 東洋平和의 見地로 보건대 그 威脅者이던 俄國은 이의 軍國主義的 野心을 抛棄하고 正義와 自由와 博受를 基礎로한 新國家를 建設하려 하는 中이며 中華民國도 亦然하며 兼하여 此次 國際聯盟이 實現되면 다시 軍國主義的 侵畧을 敢行할 强國이 無할 것이라. 그러할진대 韓國을 合倂한 最大理由가 이미 消滅되얏을 뿐더러 徒比로 朝鮮民族이 無數한 革命亂을 起한다 하면 日本의 合倂된 朝鮮은 反하여 東洋平和를 攪亂할 禍源이 될지라. 吾族은 正當한 方法으로 吾族의 自由를 追求할지나 萬一 此로써 成功치 못하면 吾族은 生存의 權利를 爲하여 온갖 自由行動을 取하여 最後의 一人까지 自由를 爲하는 熱血을 遺할지니 어찌 東洋平和의 禍源이 아니리오. 吾族은 一兵이 無호라. 吾族은 兵力으로써 日本을 抵抗할 實力이 無호라. 然하나 日本이 萬一 吾族의 正當한 要求에서 不應할진대 吾族은 日本에 對하여 永遠의 血戰을 宣하리라.


吾族은 久遠히 高等한 文化를 有하였고 半萬年間 國家生活의 經驗을 有한 者―라 비록 多年專制政治의 害毒과 境遇의 不幸이 吾族의 今日을 致하였다 하더라도 正義와 自由를 基礎로 한 民主主義의 上에 先進國의 範을 隨하여 新國家를 建設한 後에는 建國以來文化와 正義와 平和를 愛護하는 吾族은 반드시 世界의 平和와 人類의 文化에 貢獻함이 有할지라.


玆에 吾族은 日本이나 或은 世界各國이 吾族에게 民族自決의 機會를 典하기를 要求하며 萬一 不然하면 吾族은 生存을 爲하여 自由行動을 取하여써 吾族의 獨立을 期成하기를 宣言하노라.


決 議 文


一. 本團은 日韓合倂이 吾族의 自由意思에 出하지 아니하고 吾族의 生存과 發展을 威脅하고 또 東洋의 平和를 攪亂하는 原因이 된다는 理由로 獨立을 主張함.


二. 本團은 日本議會 及 政府에 朝鮮民族大會를 招集하여 該會의 決議로 吾族의 運命을 決할 機會를 集하기를 要求함.


三. 本團은 萬國講和會議에 民族自決主義를 吾族에게도 適用하게 하기를 請求함. 右 目的을 達成하기 爲하여 日本에 駐在한 各國大公使에게 本國의 主義를 各其 政府에 傳達하기를 依賴하고 同時에 委員 二人을 萬國講和會議에 派遣함. 右 委員은 旣히 派遣한 吾族의 委員과 一致行動을 取함.


四. 前項의 要求가 失敗될 時는 吾族은 日本에 對하여 永遠의 血戰을 宣함. 此로써 生하는 慘禍는 吾族이 그 責에 任치 아니함.


朝鮮靑年獨立團


右 代表者 崔八鏞(최팔용), 李琮根(이종근), 金度演(김도연), 宋繼白(송계백), 李光洙(이광수), 崔謹愚(최근우), 金喆壽(김철수), 金尙德(김상덕), 白寬洙(백관수), 徐椿(서춘), 尹昌錫(윤창석)


http://blog.daum.net/bonanza123/55


'옮겨 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Greek Crisis  (0) 2010.02.12
문화재 반환  (0) 2010.02.09
비꼬는 이야기  (0) 2010.02.07
숭례문  (0) 2010.02.06
南北 정상회담-일본 언론의 보도  (0) 2010.02.04
Posted by qlstnfp
2010. 2. 7. 03:23

도요타 자동차의 대량 리콜 문제에 한국이 괴상한 정도의 관심을 보이고있다.


뉴스 량은 당사자 일본보다 훨씬 많다.

난파선 사이렌을 밤에도 잘 수없는 일본 열도"

"상위 신화 품질 하락 - 일본 기업 추락 "

"흔들리는 일본 열도 ""일본 열도 침몰- 일본의"몰락 "


"일본의 실패"를 환영 쾌감을 기억하는 특유의 대일 감정,

도요타의 실패는 "한국 차의 점유율 확대를위한 절호의 기회"라고하는 강한 기대감도있다.


해외 생산에 "귀중한 교훈"이라고 보는 견해도 나름대로 나오고있다 .

http://sankei.jp.msn.com/economy/business/100204/biz1002041902032-n1.htm


정작 관심사는 외신을 통해 보는 세상인데....

'옮겨 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화재 반환  (0) 2010.02.09
2.8 독립선언  (0) 2010.02.08
숭례문  (0) 2010.02.06
南北 정상회담-일본 언론의 보도  (0) 2010.02.04
한국말 마사지 한국어통역  (0) 2010.02.01
Posted by qlstnfp
2010. 2. 6. 06:18

'옮겨 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8 독립선언  (0) 2010.02.08
비꼬는 이야기  (0) 2010.02.07
南北 정상회담-일본 언론의 보도  (0) 2010.02.04
한국말 마사지 한국어통역  (0) 2010.02.01
오니(汚泥: 오염된 진흙층)  (0) 2010.01.30
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