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면 입양을 하겠다고 약속한 변호사 부부는 말을 바꿨다. 여자 아이가 아니어서다. 대학생 미혼모인 아이 어머니는 다른 양부모를 찾았다.
그러나 새로 찾은 양부모 부부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실을 알고는 생모는 입양을 거절했다.
양부모는 반드시 아이를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아이를 맡을 수 있었다.
호기심이 많아 구석에 놓인 바퀴벌레 약을 삼키던 말썽꾸러기는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위치한 리드 대학교에 등록하였으나 중퇴하였다.
친구 방 마루에서 자고, 빈 코카콜라 병을 팔며 생계를 이었다.
아이는 이후에 양부모님들이 비싼 학비를 내는 데 대해 부담스러웠다고 학교를 도중에 그만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오늘의 그를 만들게 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도덕적으로 나쁜 남자다.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소원이었던 어머니에게 ‘3학기 만의 중퇴’라는 상처를 안겼다. 첫 딸을 낳아 준 여자는, 임신시킨 채 무참히 버렸다. 친자확인 소송에도 불구, “내 딸이 아니다”라며 버티던 그가 딸을 자식으로 인정한 것은 10년이나 지난 후의 일이다.
이 우울한 주인공은 미국 애플사의 회장 스티브 잡스(Steve Jobs)다. 그는 20대에 세계 최초의 개인용 PC를 만들어 세상을 바꿔놓았지만
함께 일했던 동료 대부분은 그를 “폭군”이라 부르며 떠났다. 남들이 공들여 만든 알짜배기 작품들 빼앗기를 밥먹 듯 했다.
서른이 되던 해 자신이 세운 애플에서 쫓겨난다.
수치심에 한동안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시련도 축복이었다고 말한다.
"성공의 무거움은 다시 시작하는 가벼움으로 바뀌었다." 스스로 최고의 창조적인 시기라고 꼽는 이 시련기에 잡스는 세계최초 컴퓨터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만들어 대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10년 만에 애플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2004년 8월. 그는 췌장암에 걸려 3~6개월밖에 살지 못하는 판정을 받았다. 그는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죽음을 준비하며 신변 정리를 하라고 말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다시 '아이폰(iphone)'이란 혁신적 제품으로 세상을 흥분시키고 있다.
"Stay Hungry, Stay Foolish"(늘 배고파 하고, 늘 어리석어라).
잡스가 2005년 6월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한 연설의 끝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