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전 미국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조지프 퓰리처가 경영하는 뉴욕월드의 사설을 “전국 최고”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신문이 루스벨트 정권의 ‘파나마 운하 건설 뇌물 수수와 독직 사건’을 보도하며, 루스벨트를 ‘거짓말쟁이’라고 비판한 뒤 사정은 급변했다.
검찰이 뉴욕월드의 사주 퓰리처와 편집 간부들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했다.
조지프 퓰리처는 분노했다. 그는 감옥에 갈 각오를 했고, 뉴욕월드의 후속보도는 이어졌다.
1909년 2월 18일 ‘뉴욕월드’ 지에 프랭크 콥 논설실장이 쓴 사설이다.
“이 명예훼손 소송의 목적은 ‘대통령’이 정부기관을 이용해, 보복을 위한 개인적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게 해 주는 것뿐이다. 대통령이 ‘신문사’를, 혹은 신문사 ‘사주’를, 혹은 신문사 편집 간부들을 어떤 죄목으로 고발하든 우리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은 잠시 지나가는 인물이고, 신문사는 공공기관이다.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도, 사주나 현재의 신문사 편집 간부들이 세상을 뜬 후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신문사는 여전히 재갈이 물리지도 않고, 기죽지도 않고, 겁을 먹지도 않은 위대하고 독립적인 신문으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소송이 진행되는 가운데 뉴욕월드 기자들은 미행을 당하고 우편물을 검열당하기도 했다. 고난의 세월이었다.
1911년 1월 미국 대법원은 대법관 만장일치로 퓰리처의 승소와 루스벨트의 패소를 결정했다.
대통령은 이미 태프트로 바뀌어 있었다.
뉴욕월드는 이해 1월 7일자 기사에서 시카고의 한 신문 보도를 인용했다. “루스벨트의 아첨꾼 법률가들은 언론과 시민의 자유를 파괴하기 위해 이 독재의 엔진(권력)을 이용했다.”
대한민국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도 어쩐지 우리에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조지프 퓰리처 (Joseph Pulitzer, 1847년 4월 10일 ~ 1911년 10월 29일) 는 미국의 언론인이자 신문 경영자이다.
조지프 퓰리처는 현대 저널리즘의 창시자로 꼽힌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가치가 있는 선정적인 기사는 최대한 밀어붙여야 한다”며 상업성도 도외시하지 않았기에 ‘황색 저널리즘’의 시조라 불리우기도한다.
그러나 퓰리처는 자신의 신문에 게재됐던 과장 소문 거짓말 등을 후회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말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형태의 선정주의를 피해야 한다. 시시한 범죄를 가져다가 지면에서 크게 키워서는 안 된다. 신문에 대서특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사는 최대한 밀어붙여야 하지만, 기사를 꾸며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그가 죽은 뒤 그의 유언에 따라 1917년 퓰리처상이 제정되었다.
퓰리처의 어록을 들여다보면 그가 언론과 언론인의 정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무엇을 쓰든 짧게 써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
명료하게 써라. 그러면 이해될 것이다.
그림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 속에 머물 것이다."
“우리 정부와 언론은 그 흥망성쇠를 함께한다. …지적으로 훈련되고, 불편부당하며 공공심이 있는 언론만이 개별 정권의 속임수로부터 공공선을 지켜낼 수 있다.”
“언론인은 다리 위에서 국가라는 배를 감시하는 사람이고 그 자신의 임금이나 고용한 사람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신문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르치는 도덕 교사다.”
“신문에 폭로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그 어떤 법률과 도덕보다도 더 많은 범죄를 예방한다.”
“이 나라에서 금권의 성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굉장한 것이었으며, 금권이 정부와 연계되어 정부에 이해관계를 갖게 된 것은 심상치 않은 일입니다. …… 수백만 명의 뜻이 아니라 백만장자들의 힘에 의지해서 스스로를 유지하는 정부가 워싱턴에 절대로 들어서지 못하게 합시다.”(Denis Brian의 『퓰리처: 현대 저널리즘의 창시자, 혹은 신문왕』-김승욱 옮김- 16쪽)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가져라. 항상 대중의 복지에 헌신하라. 단순히 뉴스를 인쇄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일을 공격하는 걸 두려워해서는 된다."
‘무엇이든 잘못된 것을 공격하는 데 두려워해선 안 된다’는 퓰리처 정신은 여전히 언론계에 숨쉬고 있다.
우리는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보다, 어떤 점을 닮고 따라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퓰리처에게 정확하고 제대로 된 언론인의 상을 배우고, 남들과 다른 방법으로 시장을 선점하고, 사업을 강하게 추진하는 경영 방법을 익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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